두 여자, 두 개의 다른 삶
난 엄마 인형이 아니라고
제발 좀 뭐든 엄마 마음대로 하려 하지 말라고!!
제발 내 살림은 내가 할테니,
우리 집에서 냉장고 열지 마시고,
내가 해야 할 일 대신 해주지 마시고,
놀러와서 쉬며 수다떨다 가시라는 내 부탁은
번번히 묵살되었다.
어느 날, 난 폭발했다.
내 집, 내 살림이야.
내 결혼이고, 내 남편이고, 내 아이들이라고.
이 가정의 아내이자 아이들 엄마는, 바로 나라고.
결혼 후, 집안 살림을 도와주시던 엄마와의 충돌은
그렇게 시작됐다.
엄마는 심각한 ‘역할 혼동’을 하고 계셨다.
내 남편 미역국을 엄마가 끓여오시며
그것이 마땅히 본인이 해야 할 일이라 느꼈고,
내 아들을 손주가 아니라 자신의 아들처럼 여기며
육아 문제로 나와 시시콜콜 다투었다.
“넌 아무것도 몰라. 네 직장 일이나 해.
이건 엄마가 더 잘 알아."
엄마는 내 역할을 직장에만 한정시켰다.
요청하지 않은 살림까지 간섭하는 일도 잦아졌다.
나는 밖에서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처럼 보였지만,
정작 내 결혼, 내 가정, 내 아이로부터는
엄마에게 전권을 맡긴 채,
내가 지켜야 할 ‘베이스캠프’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건 결혼을 통한 독립이 아니라,
엄마라는 컨트롤 타워 밑에
나와 남편, 내 아이까지 모두 편입된 상황이었다.
결혼하여 꾸린 나의 가정은 내가 주인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엄마의 새로운 가정안의
새로운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20여 년 전, 큰아들을 사고로 먼저 보내고
아직 어린 딸을 안고 살던 엄마.
그 품은 처음엔 포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숨 막히는 작은 감옥이 되었다.
엄마의 손길은 분명 보호 같았지만,
그 안에는 나를 위한 공간보다
엄마의 불안과 슬픔을 달래는 벽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어느 날,
그렇게 또 사소한 살림 살이 문제로 엄마와 다투던 날,
마치 오래전부터 예정된 듯한 결심이 들었다.
이제는 더는 안 되겠다.
엄마와 분리된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
독립된 나의 가정을 세워야겠다.
그 생각이 스치자,
분노와 공포,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날부터 엄마를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어졌다.
예전처럼 말을 잘 듣던 ‘착한 딸’은 완전히 사라졌다.
엄마는 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살림에서 철수해달라는 내 요구를
자신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였다.
화를 내고, 애원하고, 협박하고, 기다려셨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yes만 외치는 딸’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심리 상담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 엄마의 사랑 방식이 너무 숨 막혀요.
그리고 제 안에서 그런 엄마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견딜 수 없이 싫고 두려워요.“
그 때, 상담 선생님의 대답이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엄마와 비슷하면 어때요. 엄마와 똑같아도 돼요.
다만 둘이 분리되어 살아야죠.
‘나’를 찾으면 자연히 해결되지만,
문제는 거기 있어야 할 ‘내’가 없네요.
엄마와 똑같은 자아를 가지고 있어요.
‘나’만드는 동안은,
당분간 어머니와 이별의 시간이 필요하겠어요.
그렇게 시작된 거리두기가 2년 넘게 지속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엄마의 요구에 예전처럼 응하지 않았다.
엄마는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고,
우회적으로 소식을 전하며,
때로는 싸움을 걸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신호에 예전처럼 응답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70년을 그런 방식으로 살아온 엄마를
감히 내가 바꿀 수는 없다는 걸.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단 하나,
엄마에 대한 '나의 반응' 뿐이라는 것을.
이전까지 나는 엄마의 반응에 맞서 싸우거나,
또는 사과하거나, 그러지 말라고 설득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맞대응을 내려놓았다.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그 패턴이 소용없어지도록,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의 흐름에 맡겼다.
놀랍게도, 그 단순한 변화가 진짜 변화를 만들었다.
엄마의 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화를 누그러졌고,
내가 ‘착한 딸’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놓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나도 변했다.
엄마가 ‘나의 엄마’라는 껍질을 벗고,
한 사람의 여자, 한 명의 인간으로 보였다.
그녀의 삶에 길에 있었던 사랑과 갈등,
고통과 애환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제야 보였다.
단점만 있어 보였던 그녀의 사랑 방식에도
삶의 지혜와 단단함이 어느정도 있었음을.
그리고 그 방법이 내게 최선이 아니었더라도,
그건 분명 그녀가 내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요즘 엄마는 어린 딸 대신
유기 강아지와 길고양이들을 보살피고 계신다.
그 뒷모습에는 예전보다 훨씬 너그러워진 표정이 있다.
불안과 짜증에서 한결 벗어나,
자신의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한다.
나도 내가 싫어하는 것은 거절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며,
내 고통을 내 선택의 결과로
기꺼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나는 이제까지 항상 엄마가 나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건 내가 엄마를 붙들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서로 기생하는 삶 대신,
각자 자기 삶을 살기로 했다.
문득 과거의 그 날이 생각났다.
엄마와의 이별을 결심하던 날,
나는 무척 슬퍼할 엄마가 너무 걱정되어 상담실을 찾았다.
그 때, 상담 선생님의 말씀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딸의 새로운 반응에 어머니가 어떤 선택을 하시든,
그건 어머님의 삶이자 선택이에요.
어머니 감정들과 행동들까지 책임지려 하는 건
엄마 인생에 대한 월권이자 침범입니다.
지금, 그 방식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말을 품고, 오래된 베이스캠프를 떠났고,
한동안의 이별을 지나,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전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어린 딸과 어머니가 아니라,
각기 독립한 가정을 지닌 두 여성으로.
이제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두 여자다.
나는 엄마의 평온한 노년을 응원하고,
엄마는 한동안 시끄러울 육아의 현장을
버텨내며 성숙해나갈 딸을 응원한다.
우리는 이제,
엄마와 딸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고
각자의 하늘과 햇살을 향해 걷고 있다.
그 만남이, 얼마나 한결 가볍고 유쾌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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