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대물림 종착역입니다
— 앨버트 반두라, 사회학습이론
내가 엄마의 사랑 방식이 싫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으레 이렇게 말했다.
너도 나중에 엄마 돼봐야 그 맘 안다.
너도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야 이해하지
그땐 니 엄마 그 마음 이해할 걸?
엄마 계실 때 잘해.
날 위로하려는 그 말들 속에는
보이지 않는 전제가 있었다.
지금의 엄마는 자신에 행동에 대해 선택권이 없었고,
딸의 불편은 철 모르는 사치라는 전제.
그 침범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될 것이며,
그리고 너 역시 언젠가 그녀가 되어,
내가 아닌 그녀를 먼저 이해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섬뜩한 예언.
난 그런 사랑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그 말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같은 길을 걸으며,
뒤늦게 그건 어쩔 수 없었던 사랑이었다고 이해하는 척,
연민과 미안함 뒤에 숨겨, 그 사랑이라는 행동들을
절대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가 언젠가 자라서
나의 고통을 애틋하게 이해하고,
나를 불쌍히 여기고,
내 수고에 미안해하며,
나에 대한 연민을 무겁게 품는 존재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감정이 ‘사랑’이라고 절대 배우게 하고 싶지 않다.
사랑은 가볍고, 따뜻하며,
유쾌한 정서가 깃든 어떤 것이길 바랐다.
그러려면 내 의지나 결심만으로는 부족했다.
환경을 바꿔야 했다.
우리들의 엄마와 똑같은 환경—
희생하고, 참고, 나를 죽이고,
타인을 위해 기능하는 그 역할에서
반드시 물러서야만 했다.
우리 부모들처럼, 아이들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을 가꾸는 노력부터 시작되어야 할 터였다.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 과감히 덜어내고,
하기 싫은 부당한 일은 하지 않는—
유쾌한 삶을 내가 먼저 살아야 했다.
아이들이 언젠가 이해해줘야 할
‘고통스럽고 희생적인 엄마’가
처음부터 내 안에 존재하지 않도록.
내가 먼저 깃털처럼 가볍고 즐거운 삶을 살아낼 때,
아이들은 그 삶을 보고 따라올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안에는 여전히 엄마의 말투가 살아 있었고,
엄마가 쓰던 걱정의 방식, 감정 처리의 패턴,
심지어 불안해하는 눈빛마저도
어느 날 불쑥불쑥 내 몸을 통해 흘러나왔다.
사회학습이론과 애착의 내재 작동모델이론 등
많은 심리학 이론들이 말한다.
부모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 감정 처리 방식, 관계 맺는 방식들은 아이에게 무의식적으로 ‘삶의 기본값’으로 복사된다고.
그렇게 무의식은 익숙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것이 바로 무의식,
삶 전체로 학습된 패턴을 쉽게 벗어나기 힘든 이유다.
우리가 ‘원래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 부모와 맺었던 관계와 그때 경험한 감정은 ‘내재화(Internalization)’되어 성인의 무의식 속에 남는다. 이때 내재화된 패턴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감정 반응·언어 습관·몸의 반응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거부하더라도, 그 익숙한 방식이 필요할 때마다 무심코 몸과 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학습된 무의식이 반복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심리학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중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육아가 힘겨울 때면,
나도 모르게, 나의 예전 엄마처럼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를 통제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 속에 내 욕망을 숨기고,
때로는 착한 아이 프레임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육아가 힘들고 짜증나는 건
온전히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나의 우울, 나의 결핍, 나의 외로움 속에서 발화된
짜증 섞인 분노와 신세 한탄, 그것들의 비중이 훨씬 컸다.
즉, 거의 모든 것이 나의 상황과 감정의 문제였을 뿐,
아이가 직접적인 원인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아이에게 잘못된 화살이 가지 않도록
내 행동과 감정을 다시 억압했다.
아이가 자율적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기 전까지는,
부모의 정서 상태가 곧 아이의 내면 풍경이 된다.
부모가 슬픔과 외로움을 조절하지 못하면,
아이는 그것을 ‘자기 탓’으로 오인한다.
부모가 평온하면, 아이도 평온해진다.
결국 아이의 감정 안정은, 부모가 자기 감정을 책임지는 힘에서 비롯된다.
-정서 공동조절(Co-regulation) 이론 중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표정, 감정의 결, 몸의 반응을 따라 배운다.
갈등을 다루는 태도, 자기 삶을 대하는 자세는
말없이 아이의 뇌에 각인된다.
이 전이는 말보다 깊고 빠르며,
아이는 말이 진심이 아닌 경우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거울 뉴런(Mirror Neuron) 이론 중
하지만 육아란 한 여자를 그리 우아하게 놔두지 않는다.
만만치 않은 극한 상황에 나를 자주 데려다놓기에,
내 감정을 조절하거나 평온하게 대응하는
그런 초월적 경지에 이르기는 아예 불가능했다.
나는 나의 감정과 행동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완벽을 목표로 하고 실패에 좌절하는 대신
그저 힘들고 화가 나는 나의 모습도 온전히 인정하되,
그 원인을 아이 탓으로 돌리지 않는 쪽을 택했다.
짜증을 멈출 수 없다면,
그 나이대 자연스러운 발달을 하느라 나름 고군분투중인
나의 아이에게서 찾지 않기로 했다.
화를 멈출 수 없다면,
그 화가 사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내 현실 때문임을 자각하기로 했다.
아이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날 때면,
“너를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내 욕심” 때문에
화가 난다고 솔직히 인정하기로 했다.
나의 행동이나 감정은 완전히 컨트롤할 수 없지만,
그 원인을 아이에게 돌리지 않기 위해
내 삶과 감정을 더 치열하게 들여다봤다.
나와의 진실한 대화를 시작했다.
난 남편과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게 아니고,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낳은 게 아니며,
회사를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게 아니다.
그 모든 건 남이 아닌 나 자신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들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내 삶에 책임이 없다.
그러니 그들은 굳이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자신들의 삶을 향해
가볍고 환한 마음으로 걸어가면 된다.
나의 삶을 등에 업고 힘들어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담을 가방만 짊어지고,
원하는 것들을 주워담으며
자기 길을 가는 것.
나에게 사랑이란,
사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주체이고, 삶의 작가이며,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의 과거를 자기 연민 없이,
그저 지나간 추억이자 사건들로 바라보며
여전히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려 노력한다.
말뿐이 아닌 내 삶 전체를 통해.
넌 나를 보살필 필요 없어
엄마는 괜찮고 즐거워.
그러니, 너는 너의 삶에 집중해도 돼
이 메시지는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축복이며,
감정적으로 아이와 분리되어 사랑할 수 부모만이 줄 수 있는 진짜 자유라고 믿는다.
희생의 얼굴로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미덕을 위해 너 자신을 죽이라고 말하기 않기 위해서
지금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최대한 삶에서 덜어내고,
지금 내가 웃을 일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그들에게 삶이 기본적으로 유쾌함이라는 것을 선물할 수 있을테니.
나는 결심했다.
진심으로 내 삶을 살아야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삶으로 배운 무의식의 법칙은 집요하게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 패턴을 끊기 위해서는,
결심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 즉 과감한 실행이 필요하다.
가짜 사랑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
아이에게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삶의 모델이 직접 되기 위해서.
그 삶이야말로, 아이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선명한 유산이 될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뿐인 내 삶을 위해서.
주체적으로 웃고, 선택하며,
실패해도 괜찮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의 삶으로 남을 옥죄지 않고 그저 나란히 서서
따스한 온기와 유쾌함을 나누다 각자 자기 길을 가는 것.
그것이 나의 새로운 사랑의 방식이다.
#심리적독립
#부모와자녀
#감정대물림
#모녀갈등
#애착이론
#사회학습이론
#정서공동조절
#자기회복
#내면아이
#양육방식
#가족심리
#자율성
#가스라이팅
#거울뉴런
#자기연민없는회복
#부모교육
#사랑의기술
#심리학글쓰기
#브런치북
#중년여성에세이
#딸의심리학
#엄마의유산
#육아심리
#브런치공모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