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나: 혹시 저 이 집 서열 꼴찌인가요?

며느리 고장 알림 : 슬픔과 상처의 기록

by 파랑새의숲


격한 분노 뒤에는 늘,

이름 없이 사라진 존재의 슬픔이 숨어 있다.


시댁이 싫다며 화를 내는 며느리는,

사실 화가 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깊은 상처와 존재적인 슬픔을 입고,

괜찮은 척 분노로 그 상처를 덮고 있을 뿐일지도.
그들의 관계에서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붙잡기 위해서 , 살아남기 위해

'분노'라는 선명한 감정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 중일지 모른다.


슬픔의 고리


난 시어머니가 참 좋았다. 결혼해서 한참 후까지도.
우리 엄마보다 더 살갑고, 더 다정하다고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래서 다른 집에 고부갈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부딪히는,
그저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결혼 초, 시댁에 갈 때마다 웃음이 많았다.
유쾌한 어머님과 말이 잘 통했고,
나는 도대체 왜 고부갈등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결혼생활의 시간이 쌓이자
내 안에 이상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더니,
슬프게도 나는 어느새

‘어리석은 자’들의 대표주자가 되어 있었다.


나에게 걸려온, ‘내’가 없는 안부전화


시어머니는 늘 아들 안부를 내게 물으셨다.
손주들 이야기도, 집안 사소한 일도, 요즘 부부간 사이도
내 입을 통해 들으려 하셨다.


오늘 아들 밥상에 뭐가 올라갔는지,
손주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김치를 포함한 당신의 반찬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연락은 주기적으로, 끊이지 않게 내게 왔다.


언제부턴가, 전화를 끊고 나면 허무했다.

마치, 매번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정작 우리 이야기는 한마디도 못한 채
누군가의 우리 주변 근황만 잔뜩 주고받은 기분이었다.


겉으로는 관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시댁과 남편을 잇는 메신저,
보이지 않는 통로에 불과한 나.



한 가족 내, 서열 꼴찌라는 설움


식탁에서 내 자리는 어느새 끝쪽으로 옮겨졌다.
결혼 초엔 손님 대접을 받았지만,

아이들을 낳고 이 가족의 ‘진짜’ 일원이 된 뒤,

묘하게 위치가 바뀌었다.


시댁에 가면 이제 나는 대접받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지시 아래 가족들 수발을 드는 어머니 조수였다.
남편과 아이들의 밥과 국은 정성스레 놓였지만,
내 밥은 맨 나중이거나 스스로 떠다 먹어야 했다.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아들과 손주들 수저만 챙겼고,
내 것은 직접 주방에서 가져오라 하셨다.

처음엔 ‘친밀해져서 편해진 건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밀함은 푸대접과 맞닿아 있었다.


웃음과 대화의 중심엔 남편과 아이들이 있었고,
나는 늘 그 바깥에서 움직였다.
누가 먼저 먹고, 쉬고, 일어나는지
보이지 않는 순서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먹고 남은 밥에 모자라면

직접 떠다 더해 먹는 것이 당연한 듯 굳어졌다.

어머니를 주방에 혼자 두면

못된 며느리가 되는 듯한 압박,
그 옆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늘 있었다.

그 대화 속에서 오가는 건

아이들 이야기, 남편의 안부, 살림살이 얘기뿐이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순간, 슬픈 감각이 밀려왔다.

아, 나는 이 집에서 어머니 보조, 남편 대리인, 손주 보모.
그 세 가지 기능만 수행하면 되는구나.


이제야 그들의 진정한 가족이 된 것 같았지만,

알고 보니 그 집 서열 꼴찌였다.
보고 싶고 반가운 귀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필요한 기능을 채우는 존재 말이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나는 다른 집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들이 나눈 세월과 추억에 비해,
내가 가진 그들과의 에피소드는 형편없이 빈약했다.


그런데도 며느리는, 생경한 그들 사이에서
오래된 가족처럼 끈끈한 척을 해야 했다.

그 ‘척’이 쌓이자 마음이 서서히 식어갔다.
누구의 의도도 아니었는데도,
우린 그렇게 ‘가짜 친밀함’에 묶여 있었다.



‘며느리’는 없는 며느리 경유제


시어머니와의 대화가 왜 그리 싫어진 걸까.

돌이켜보니, 시어머니와 나의 대화에는 ‘나’가 없었다.


“아들 바쁘지?”, “손주는 밥 잘 먹나?”같은 안부는

처음엔 겉으론 관심과 다정함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해졌다.


"김치 있나?" "반찬 좀 보내주까?"라는 반찬 공세는

호의와 감사를 의무처럼 느껴야 했지만,

필요 없다는데도 굳이 보내주시는 완고함에

이상하게 내 역할에 대한 침범으로 느껴졌다.


주기적으로 울리는 전화벨은,

‘또 나를 연락책으로 쓰려는구나’ 하는 생각에

받기 전 한숨부터 나와서 도망가고 싶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인간 대 인간으로 연결된 적이 없었다.
서로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달랐다.
특히 ‘전업주부’와 ‘아이 기르기’

그리고 '가족 보살피기'가 삶의 전부였던 시어머니는,

가족 테두리 밖의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발견되면,

본인의 아들과 손주를 보살피는 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기는 듯했고,

며느리도 본인처럼 ’ 아들의 대변인, 손주의 보모‘

역할에 한정되기를 바라시는 듯했다.


그녀는 원할 때마다 나를 경유해 아들과 손주에게 닿았다.
그리고 반찬과 김치라는 호의로 나를 붙들었다.


언젠가부터 시어머니의 반찬이 싫어졌다.
이 집 반찬을 하는 건 내 역할이었다. 역할이 계속 겹쳤다.

언젠가부터 시어머니의 전화가 싫어졌다.

어차피 나에 대해 묻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나는 기능적으로는 아직 잘 움직였지만,

마음은 서서히 고장 나고 있었다.


겉으로는 관심과 정성 같아 보여도,

사실은 역할 혼동에 의한 경계 침범이라는 것.

반복해서 경험하는 며느리에겐

소속 속의 고립감과 마음의 고장이 찾아온다는 것.

심리학은 아프게 말해주었다.



심리학으로 본 며느리 번아웃


나를 ‘사람’이 아니라 ‘역할’로만 대하는 관계는,

나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다.


내가 느낀 시댁에 대한 불쾌감과 분노는,
성격 나쁜 시어머니와 속 좁은 며느리가 벌이는
여자 대 여자의 감정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세계와 경계가
지속적으로 침범당하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며느리 경유제 같은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

역할 구조, 경계, 그리고 감정 에너지의 흐름이 얽힌 문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심리학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1. 역할 갈등과 역할 과부하

(Role Conflict & Role Overload)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조직심리학자인 로버트 L. 칸(Robert L. Kahn, 1964) 은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역할의 요구를 받을 때,
그 기대가 서로 충돌하면 ‘역할 갈등’이,
그 기대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역할 과부하’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며느리였다.
세 방향에서 동시에, 그리고 수직적으로 요구가 내려왔다.
무엇을 먼저 내려놓을지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 속에서 나는 가장 먼저 내 감정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2. 인간의 도구화(Objectification)

미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 은
‘타인을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경험’을 인간의 도구화라고 설명한다.


나는 ‘아들과 손주에게 닿기 위한 통로’로만 다뤄졌다.
시댁의 호의와 관심은 악의가 아니었지만,

반복될수록, 내 존재는 기능으로 축소되었다.
나는 사람 대신 메신저가 된 기분이었다.


3. 경계 침범과 심리적 계약의 혼선

심리학에서는 ‘심리적 계약’ 이란 말로
공식적으로 합의한 적 없는 역할과 기대를 설명한다.

시댁의 며느리의 역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조항이
마치 이 결혼의 당연한 약속처럼 작동했다.


나는 그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위반자가 되었고,
그때마다 죄책감이 생겼다.
죄책감은 나를 더 잘 움직이게 했고,
그럴수록 경계는 더 흐려졌다.


결국, ‘며느리 번아웃'의 문제, 고부 갈등의 문제는

사소한 오해나 성격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것은 구조적이고 반복적이며,
경계와 에너지 흐름이 무너진 관계 시스템의 문제다.


내 불쾌감과 분노는,

결국 이름 없이 사라진 ‘나’의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슬픔은, 나 이전에 시어머니의 것이기도 했다.

그 존재의 상처가, 대를 건너 나에게 전이되고 있는 중이었다


요구와 묵살, 그리고 내가 정한 경계


“어머니, 이제는 아들에게 직접 전화해 주시면 좋겠어요.

반찬은 필요할 때 제가 먼저 부탁드릴게요.

지금은 제가 친정, 세 아이 학교·학원 전화만으로도

너무 숨이 가빠요. 아들 목소리도 들을 겸, 이제 아들에게 전화 부탁드려요."


나는 조심스럽게 내 경계를 드러냈다.


그리고 ‘며느리’라는 자리에서 내려와,

사람 대 사람, 여자 대 여자로 서보기로 했다.


그러나 실패였다.

즉각적인 어머니의 공감은 있었으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아들과 손주를 향한 ‘경유지’였다.


어머니는 오래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셨고,
스스로도 ‘기능을 다하는 사람’으로 길러진 탓에

그로 인한 폐해를 인식하지 못하셨다.

분명 본인도 이런 일로 상처받아왔겠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내 요청은 쉽게 묵살됐고,
이내 전화와 문자는 더 노골적으로

다시 아들과 손주 안부로 시작됐다.


나의 요청이 자신을 밀어내기 위함이라고 느끼셨는지,

나는 묘하게 더욱더 무시당하고 소외된 채

거의 ‘투명인간’에 가까운 메신저가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과 가장 친한 사람이 되긴 어렵다.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이를 향해 억지로 웃는 것도

이제 더 이상은 어려웠다.


반복되는 희생의 고리를 끊으며


시어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녀도 한때는, 모두가 그러했듯 며느리였다.
'자신'은 지운 채,
오직 역할만 남은 채 살아야 했던 시간들.


그 안에서 쌓인 서러움과 외로움을,
결국 아들과 손주에게서 받는 보상으로 겨우 달래며
그 힘든 시간 버텨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존재감을 가족을 통해 보상받는 방식이,
슬픔의 고리가 되어 다음 세대 며느리에게,

또 그다음 며느리에게 전승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빠지는 착각이 있다.

“나는 그렇게 힘들었으니,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면,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하지만 일생을 통해 학습된 관계 방식과 습관들은,
단순한 굳은 결심과 의지로는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시집살이해본 며느리가 더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불편한 말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 문제는 한 개인의 성격 탓이나 속 좁은 여자들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과감히 수정되어야 할 낡은 사회적 규범의 문제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관계를 끊는 대신, 관계의 모양을 바꾸는 방식으로

이 고리를 내 세대에서 멈추겠다고.


관계의 모양을 바꾼다는 것은,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를 세우는 일이었다.

납득보다 저항을 더 불러오는 이 일은,

오랜 시간과 수많은 성장통을 견뎌야만 가능한 작업이었다.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나는 나아가 보기로 했다.

내 삶, 그리고 내 뒤에 이어질 내 두 딸의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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