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나: 어머니,아들은 남편 대용품이 아닙니다

역할 혼동 · 대리배우자 그리고 정신적 삼각관계

by 파랑새의숲


타인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폭력을 행하는 가장 교묘한 방법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도움’이라 부르지만,
그 순간 이미 상대의 자주권을 줄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 데보라 아델, <야마 니야마> 중에서


시어머니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에는
‘내’가 없는 기능적인 만남이라는 이유 외에도,
더 뿌리 깊은 곳에 ‘근본적인 역할 혼동’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호의라는 동전의 뒷면


그것이 은밀한 침범인 줄 알면서도, 왜 나는
시어머니가 선을 넘어 들어오시는 것을

완곡히 거절하지 못했을까?


우리 부부의 냉장고를 가득 채우는 반찬과 김치,
내가 드린 용돈으로 사 오신 넘치는 손주들의 옷들,
살림을 가르쳐주시며 주방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모습,
내 남편 속옷과 아이 물건을 대신 챙기는 일들….


그 모든 행동은 애정과 정성으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나의 역할을

나의 가정에서 흐릿하게 지우는 침범으로 작용했다.


약해진 나의 역할 대신,

시어머니의 역할과 존재가 더 크게 강화되고 있었는데

이 모든 건 ‘어머니의 사랑’, ‘모성애’라 불렸다.


남편과 우리 가정의 바운더리가 합의되지 않았던 터라,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역할 혼동’을 허용해 왔다.



선한 의도, 그렇지 못한 결과


그러나 선한 의도로 행해지는 선 넘은 역할 혼동은
가정에 큰 갈등과 혼란, 며느리의 억울함을 만들고,
심하면 관계의 파국까지 불러온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시아버지의 생활 습관이나 무심한 태도에 대해

속상함을 털어놓는다.


아들은 엄마의 그 긴 푸념을 들어주며

“엄마 마음 이해한다”라고 위로한다.

며칠 뒤,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은행에 가서 재정 상담을 하고,
집수리나 이사 같은 큰 결정을 함께 내린다.
여행 계획이나 경조사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먼저 의논해 예산과 일정을 잡는다.


겉으로 보면 너무나 ‘착한 아들’이다.
하지만 구조와 그 파장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들이 어머니의 정서적 지지자이자

경제·의사결정 파트너로서
어머니의 ‘남편 자리’를 이미 대신하고 있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역할 혼동(Role Confusion)’ 그리고 ’ 대리배우자 (Surrogate Spouse)‘, 그에 따른 삼각관계(Triangulation)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역할 혼동(Role Confusion)


아들은 아들, 남편은 남편이어야 한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아들을 남편처럼 대하고,
아들이 그 자리를 받아들이면 부모-자식의 경계가 무너진다.


진짜 아버지는 관계에서 소외되고,
어머니는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남편 대신 아들에게 그 역할을 요구하며
정서적 유착 관계를 시작한다.

어머니의 이 요구를 수행하는 아들은,

그 결과 어머니의 생활 습관과 취향, 정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남편의 역할을 대신하는

‘대리배우자(Surrogate Spouse)’로 자라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자식과의 관계에서

항상 유의해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깊이 연결되어야 할 대상은

‘자식이 아니라 배우자’라는 점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삶을 시시콜콜 알리며

그들로부터 깊이 이해받을 필요가 없다.
그저 사랑과 보살핌으로 지켜주는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이 보살핌과 애틋함이 거꾸로 부모에게로 향하면,
즉, 부모가 자식에게서 정서적 위로와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
관계의 축이 흔들리고 결국 가족 내 경계가 무너진다.

(이 역할 혼동과 경계 무너짐의 폐해에 대해서는 후에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아들이 어머니의 남편의 역할을 하게 되며

부모-자식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구조는
아버지의 부재, 부모 갈등,
그리고 어머니가 아들에게서 감정적 지지를 구하는 습관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후에 아들의 삶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결혼 후에도 아들은 어머니와의 결속을

아내와의 친밀감과 비슷한 종류로 느끼며,
이후 아내에게 내어줄 정서적 자리도 줄어들 수 있어서다.


이미 '어머니'라는 한 여자의 힘든 일생이

아들의 일생을 잠식하고 있기에,

다른 새로운 사람과 관계 맺고 싶어도

잘 안되거나 힘들 수 있다.


더욱이 시어머니가 아들의 결혼 후

자신의 자리를 며느리에게 내어주지 않으려 하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이 겹쳐,
그 아들이자 남편은 결국 ‘두 아내를 가진 남자’가 되고 만다.


이렇게, 정신적 삼각관계(Triangulation)가 완성되며

후에 고부갈등의 주요한 씨앗이 된다.


아들은 어머니의 외로움과 아내의 불안을

동시에 달래려 애쓰다가 소진되기 쉽고,
겉보기엔 중립을 지키는 공정한 중재자 같지만,
실상은 양쪽 모두에게 충분히 서지 못하는 애매한 자리에서

결국 후퇴하여 갈등의 뒤편에서 뒷짐 지고 서 있기 쉽다.


시어머니 - 아내의 역할 충돌로 인한 갈등


-그건 원래 내 자리였어. 아들은 나와 제일 가깝다고!

자신의 행동이 며느리에 대한 침범이라 느끼지 않는 어머니


-너무 불편한데, 말하자니 내가 못된 사람 같아..

자신의 '아내로서의 경계'가 침범당했는데

도덕적인 프레임에 발목 잡혀 반격하기 힘든 며느리


-난 아들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한데 어쩌라는 거야.

두 여자의 남편 자리를

모두 자신의 책무이자 의무로 착각하는 아들.


이렇게 세 사람의 힘든 정신적 삼각관계가

결국 고부갈등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 문제는 ‘모성애’·‘효’·‘자식의 의무’등

사회적으로 선한 가치에 본질이 가려져 있다 보니
더더욱 풀기 힘든 난제가 된다.
특히 우리 문화처럼

자식과 부모의 경계에 허용적인 가치관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성격 싸움이 아니다.
이 문제는 개인인 여자들의 속성에 의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 심리, 문화구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접근하지 않으면,
고부 관계는 불편함에서 갈등으로,

갈등에서 단절로 흘러간다.


해결의 첫 단추는 각자의 자리를 되찾는 것이다.


그러려면 ‘걱정, 보살핌, 효, 모성애, 도움’처럼
겉으로는 선하게만 보이는 것들의 뒷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부모, 남편, 자식 각각의 자리가 어디인지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역할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는 자신의 가정의 바운더리 및

서로의 역할의 경계가 분명해야 하며,
그럴 때 고부갈등이라는 불씨를 함께 꺼뜨릴 수 있다.


남을 걱정하는 것은,
보살핌을 가장한 폭력의 또 다른 방식이다.
걱정은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며,
사랑과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데보라 아델, 책 <야마, 니야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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