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며느리, 서로를 향해 걷는 중입니다
대한민국 많은 며느리들이
시댁에서 겪은 부당함에 상처와 분노를 안고 산다.
'시'자 붙은 팀의 공격이 그리 치명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여성으로서 우리가 가장 약할 때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직 살림이 서툴던 때,
아기를 낳아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있던 때,
남편과 애정을 주고받는 것도 서툴던 때,
내 몸이 망가지고 마음마저 바닥을 치고 있던 때
몸도 마음도 여자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바로 그때 시어머니가 최고의 활약(?)을 하신 경우가 많다.
사람이 약할 때면,
가벼운 쨉도 강력한 스트라이크로 여겨질 때가 많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남편의 사랑이 굳건했다면
가벼이 넘겨버렸을지도 모르는 일들이
홀로 삶과 투쟁하느라, 가슴에 박제되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상처와 억울함을
세월이 가도 쉽게 잊지 못한다.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는 분노의 말은
내가 무시당하는 감정, 그 깊은 슬픔
거기서부터 왔는지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버겁고,
살아내느라 하루하루가 벅찼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가끔 나를 뼈아프게
그 암울한 날들로 끌어간다.
이제는 며느리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명절인데도,
그때의 심장 쿵쾅거림과 불안함이
날짜와 함께 째깍째깍 아직도 찾아온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시어머니가 아니다.
비난의 화살들이
반드시 그들을 향해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들 또한 대대로 내려오는 삶의 피해자였으니.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강요된 희생, 억눌린 욕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버텨야 했던 세월 속에서 살아온
한 외로운 여성.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반복을 끊기 위해,
나는 남편이 아무리 미워도 포기할 수 없었다.
기어코 그가 제 자리를 찾아 내 곁에 서도록
온 힘을 다해 잡아끌었다.
올바로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남편으로 내 곁에 설 수 있도록
내 삶을 그에게 공유하며 생을 함께 하는 긴 여행을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야 내 아이들을
또 다른 '대리배우자'로 만들지 않을 것이므로.
내 삶의 최종 동반자는 나의 아이들이 아닌
‘나의 배우자'일 것이므로.
“원래 엄마의 사랑은 그런 거야”라는 말로
침범을 정당화하지 않기 위해,
내 삶에서 각자의 위치를 바로 세우기에
총력을 다하는 중이다.
어머니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삶의 의미를 직시하는 순간,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마주할 힘이 생긴다.
돌아보면 나 역시 어머니를 한 명의 ‘여자’가 아닌
‘시어머니’라는 틀에 가두고 있었다.
그 틀 안에서는 어머니의 기쁨도, 슬픔도, 한계도
온전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아닌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 만날 준비를 하려 한다.
거기에는 '엄마와의 분리' 과정에서도 필요했던
그 관계의 공백,
각자의 삶을 만들 수 있는 분리된 삶으로서의 시간이
우리에게 또 한 번 필요할 것이다.
“걱정돼서 그랬다, 보살피려 그랬다”라는 호의의 말에
내 경계를 맡기지 않기로 했다.
선의는 감사히 받되, 행동은 정중히 거절한다.
며느리라는 ‘역할’보다 남편의 ‘여자’로 행동하며,
내가 ‘다른 여자의 고운 딸’로서
독립적인 가정을 꾸릴 의무가 있는 성인 여성임을
내가 먼저 인정하고 직시하기로 했다.
“가족이 됐으니 편하게” “내 딸처럼 생각한다”는 말은
경계를 허무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역할로 묶인 관계에서 벗어나야 진짜 대화가 가능하다.
내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세우고,
그 안에서만 서로의 존중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어머니도, 나도 자기만의 우선순위와 생활이 있어야 한다.
각자의 삶이 탄탄할수록 관계는 부담 없이 자연스러워진다.
어머니를 자식의 삶이 아닌,
본인 여성의 삶 속으로 다시 돌려드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우리 집이 아닌
본인의 삶에서 찾을 수 있도록 돕되,
우리 가정 안에서 존재감을 채우려는 시도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남편의 어머니’나 ‘권위자’라는 단일한 역할 대신,
역사와 상처, 욕망을 지닌 한 여성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보면 관계는 덜 경직되고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분노보다는, 같은 욕망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되,
나의 역할을 침범하는 것은 단호히 경계하려고 한다.
서로를 향해 걷는 길은 느리고 멀다.
그러나 방향을 바꾸는 순간, 이미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편안한 만남은 그렇게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 보다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
시어머니, 그녀 역시 나처럼 아무 영문 모른 채,
같은 구조 속에서
모두가 가리키는 길을 성실히 살아온 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 반복을 끝내기로 했다.
그걸 끝낼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우리 사회, 문화, 그리고 나의 남편이
나의 시도를 허락할 정도로 발전한
운 좋은 시대를 만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는 성장통을 동반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유로운 삶을
기꺼이 선물할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세울 때,
비로소 편안하게 마주할 그날도 찾아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짜 서로의 삶을 궁금해하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머니,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고부갈등
#시어머니
#시댁
#심리적독립
#경계세우기
#여성의삶
#세대간이해
#가족관계
#명절문화
#며느리의자유
#대물림끊기
#정서적분리
#관계회복
#세대공감
#시어머니와며느리
#가족심리
#관계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