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로그아웃, 이제 아들이 접속합니다
남편과 나의 결혼식 날,
우리는 주례 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동시 입장했다.
서로를 향한 선언문을 읽으며 부모에게 독립을 고하고,
양가를 오가는 예단도, 예물도 없이
소박한 커플링과 함께
결혼 전 쓰던 침대와 살림을 그대로 가져왔다.
화려한 의식 대신, 우리의 예산 안에서 집을 구해
‘둘의 독립’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새로운 가정의 출발로서의 결혼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상하게 우리 결혼식의 가치가 무색해져 갔다.
명절 아침, 시댁 거실엔 남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TV를 보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이면 술상에 앉아
세상 사는 얘기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며느리인 내가 끼기엔 눈치가 너무 보인다.
부엌은 전쟁터다.
뜨거운 기름 냄새, 쏟아지는 주문, 바삐 움직이는 손과 발.
그곳에서 ‘며느리의 자리’는 하나다.
앉는 자리가 아니라 일하는 자리.
전 부치고, 나물 무치고, 국물 간 맞추고…
설거지와 상차림까지 끊임없이 돌아간다.
쉬려고 앉으면, 누군가의 시선이 날 훑는다.
‘아직 어머니가 서 계신데, 며느리가 왜 앉아 있지?’
그것이 남편의 눈짓일 때도 있고,
시어머니의 불편한 표정일 때도 있다.
명절은 단순한 가족 모임이 아니다.
시댁 서열 구조의 총집합이다.
나이, 성별, 결혼 순서에 따라
‘자리’와 ‘역할’이 자동 배정된다.
장남 며느리는 부엌의 중간 관리자,
차남 며느리는 신입 사원, 미혼 여성들은 보조 인력.
그 서열에서 며느리는 손님이 아니라,
말없이 움직이는 하급 인력이다.
나는 처음 그 구조에 발을 들였을 때,
그냥 가족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도와야지 라며
별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어머니 혼자 일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리가 내 몫의 ‘자리’라기보다,
‘자기 존재를 지우고 기능만 수행하는 자리’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호의로 어머니를 돕는 것이었는데, 그건 내 착각일 뿐.
그건 원래 ‘며느리’인 내 역할이라 선택권이 없었다.
안 하면 비난받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내 선택이 아닌,
나와는 합의되지 않은,
시대상에 한참 어긋난 어떤 '여자로서의 의무'가
나를 묶는 자리
그것이 내게 명절의 의미였다.
좀 불편해지긴 했지만, 나도 한때는 생각했다.
“뭐, 1년에 몇 번인데. 며느리라면 기꺼이 도와드리자.”
그러나 곧 알게 됐다.
명절의 ‘자리’는 단순히 몇 번 견디면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더 위인지, 누가 더 아래인지 각인시키는 자리라는 걸.
횟수보다 중요한 건,
그 구조 속에서 내가 ‘누구로’ 존재하는가였다.
명절 아침, 시계는 6시.
먼저 일어나 시어머니를 돕는 것이 예의라 배웠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 종일 내려온 피로도 잊고,
제사상 차리기에 동참해야 했다.
사실, 친정은 딱히 제사가 없는 터라
결혼 전 설 연휴와 추석 연휴는 내게 자유였다.
결혼해도 며느리에게 제사는 절대 안 물려줄 거라는
상견례장에서의 시어머니 말을 기억하는 터라
나는 그래도 고생하시는 시어머니 도와드린다는 개념에서
적극 돕던 제사 일이, 이상하게 나의 의무처럼 강요되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면
시어머니의 무언의 눈치가 나를 따라다녔다.
직접적인 말은 없으셨지만,
화가 나신 듯 내가 자고 있는 뒷 베란다에서
무언가를 하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새벽 일찍 잠이 깨어 눈 비비며 나가는 명절이
점점 싫어지고 있었다.
매년 반복되는 서열 의식과 암묵적 업무 분담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건 왜 하는 거지? 이게 왜 내 의무가 된 거지?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면
왜 잘못한 듯 눈치를 봐야 하지?
나는 결혼할 때 시댁 제사 문화에 동의한 적이 없다.
예전처럼 친정을 떠나, 이 가문에 시집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손을 잡고 각자의 가정에서 ‘독립’하는 거였다.
애써 결혼 자체도 동시 입장에, 예물 예단 이런 것 없이
우리가 벌어놓은, 가진 돈으로만 예식을 전부 치르는
과감한 결혼식을 시도했던 부부였다.
그러나, 그런 결혼식 후에도
이상하게 전통적인 가부장 문화가
나를 계속 뒤로 잡아끄는 느낌이었다.
친정에서는 사위가 극진히 대접받고,
시댁에서는 아들과 손주가 우선이었다.
내 목소리와 기분, 컨디션은 어디에도 없었고,
명절이면 나는 오직 시어머니 옆 ‘조수’로 존재했다.
그건 1년에 겨우 몇 번만 참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홀대하는 기회를 매년 정기적으로 만들어
내 ‘며느리’라는 위치를 재확인하는 구조였다.
게다가 내 아들과 두 딸은 그 장면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시댁에 갈 때면 큰 아들 손주와 두 딸 손주가 미묘하게 다른 대접을 받는 것도 신경 쓰였다.
가족 대화는 과거 부재중이었던 시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지난날 성토로 채워졌고,
제사 준비 후엔 과도한 어머니의 업무 후
화풀이가 여기저기 튈 때도 있었다.
나도 자유롭지 못했고, 좌불안석이었다.
어머니 곁에서 뭔가 도와야 한다는 압박감에 서성였고
남편도 불편해했지만 “어쩔 수 없지”라며 넘어갔다.
아버님은 며느리는 이제 이리 와 편히 쉬라며
가뜩이나 심기 불편하신 시어머니 기분에
기름을 부어버리셨다.
이건 너무 힘들고 모두에게 소모적인데..
이제는 우리 모두가 즐겁게 만날 수 있는 명절로
바꿀 수 없을까?
남편은 내 요구에 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이제껏 해왔던 루틴을 반복하며
아무 문제도 만들고 싶지 않아 했다.
어머니도, 난 제사가 힘들지 않다 시며
똑같은 명절 패턴을 이어가셨다.
아버님은 물론, 그걸 당연하다 여기시는 듯
결국 1년에 몇 번,
똑같은 ‘비디오테이프 같은 명절’이 계속됐다.
아쉽게도 그건 나만 원한 변화였다.
나만 조용히 있으면,
그들은 이대로 아무 문제 없이 괜찮았다.
이번에도 바꿀 수 있는 건, 나와 나의 행동과 반응들.
나의 태도, 그것밖에 없었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었다.
많은 남편들은 평소에도, 명절이 되면 더더욱
‘아내를 통해 효도’하는 습관을 드러낸다.
전화, 선물 준비, 부모 챙김까지
모두 아내에게 ‘대리’로 맡긴다.
결혼 후에는 자신이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여성 어머니와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여자 아내가
가장 친한 친구처럼 지내길 은근히 바란다.
그리고 그 관계를 잘 수행하는 아내를
‘좋은 아내’로 평가하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명절은 그 ‘아들 역할’에 방점을 찍는 연례행사다.
장성한 아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이끌고,
‘잘 자란 아들’로서 부모에게 귀환하는 자리.
문제는 효도의 주체가 아들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에서는 너무 쉽게 무너진다는 점이다.
며느리가 남편 대신 효도를 수행하는 구조가
너무도 당연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유교시대가 아니다.
결혼이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 아니라,
한 세대가 독립해 새로운 둥지를 만드는 시대다.
새로이 이룬 가정을
종속적인 대가족 체계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가족과 추억을 공유한 애틋한 관계는 유지하되,
서로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시대는
이제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정작 깊게 연결되어야 할 관계,
즉 ‘자신의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아내에게 ‘대리’시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편이 그 관계를 회피하고 있다는 증거로 느껴졌다.
물론 이유는 다양하다.
힘들어서, 불편해서, 바빠서,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그러나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이 관계의 중심에 서야 할 사람은 남편 본인이다.
그래서 몇 년 전 명절,
나는 효도의 IP 주소를 원래 주인에게 반환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물었다.
“이 구조가 우리 아들·딸에게 전승되어도 괜찮을까?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해도 해롭지 않을까?”
질문할수록, 대답은 명확했다.
아내를 통한 효도는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어머니, 저 이번 추석에 안 내려갑니다.
며느리가 왜 안 오냐는 이어진 질문에,
나는 짧고 단호하게 전달했다.
“아들하고 손주들이 갑니다”
이 한 마디에 담긴 건, 변명도 장황한 설명도 아닌
‘원래부터 아들과 손주들이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들러리로서의 며느리는 이제 퇴장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남편의 첫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불편함, 당황, 분노, 그리고 약간의 억울함.
“뭐야, 그럼 내가 너무 난처하고, 다 해야 하잖아”라는 표정.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불편함은 그가 자기 몫을 배우는 성장의 통증이라는 걸.
그동안 내가 대신 짊어져온 몫이,
이제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는 나 없이,
자신의 부모님과 연결되는 그 중심에 서야 했다.
내가 중간에 서 있으면 있을수록,
어머니가 나를 중간 경유지로 사용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아들이 그 관계의 중심에 서는 과정이 계속 방해받았다.
그리고 또한 이제 내 남편은 그의 부모님 앞에서도
새로운 가족의 동반자인 '나의 동반자' 로서 역할을
이제는 기능해야 했다.
내 아내가 내 부모님 집에 오기 싫은 이유,
그 마음을 나의 배우자로서 충분히 이해하고
나의 그 요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은 아내 편'이라는 점을
분명히 그들 앞에서 밝힐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고부갈등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킬
시금석이 될 터였다.
관계의 균형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먼저 구조를 흔들어야,
비로소 무게 중심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 명절, 나는 그 ‘흔드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대신 나 자신에게 오래도록 누려보지 못한
긴 휴가를 주기로 했다.
드디어 명절의 ‘며느리의 자리’에서 로그아웃하는 것이다.
대신, 그들의 아들, 남편이 접속한다.
자신 본연의 역할을 자기 자리에서 수행한다.
부모님 댁 연락, 인사, 선물 준비, 식사 자리 동석, 뒷정리,
그 모든 아들의 몫을 그대로 그에게 돌려주었다.
효도의 IP 주소를 원래 주인에게 반환한 셈이다.
물론, 내가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돕는 역할에 한정될 것이다.
처음 이 결정을 말했을 때 모두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관계를 재구성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증이라는 것을.
나의 결석은 ‘의무 방기’가 아니다.
오히려, 관계 재구성을 위한 선언이다.
며느리가 사라져도 명절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끈끈한, 그들만의 리그가 이어질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굳이 ‘멤버십 유지’를 위해 내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제 명절은,
아들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부모와 진정한 관계를 맺는 연습의 장이 될 것이다.
그 자리에 나는 굳이 '대리로' '며느리의 이름으로'
그 어색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
이 선택은 단절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와 역할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회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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