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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그 장엄한 결합

- 일심동체? 아니 동상이몽

by 파랑새의숲


원래 결혼이 그런 것일까?

왜 나는 몰랐던 걸까?


나는 결혼을 통해 우리가 하나가 되는 줄 알았다.
세상에서 든든한 나의 편을 만난 것이고,
이제 외롭지 않은 세상에서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결혼의 실제 속 모습은 동상이몽이었다.
사실, 그가 나의 편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우리는 거의 ‘같은 사람’이어야만 했다.


다른 사람, 다른 생각, 다른 가치관, 다른 역사를 살아온 사람에게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편,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상대라는 것은 원래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 유아기적 환상은 애초부터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 속 신기루 같은 것임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게다가 그 신기루를 서로에게 고집하면
갈등만 커진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혼은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길 위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풍경을 보고,
서로 다른 지도를 들고,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일이었다.

그 같은 언어 뒤에 숨은 구체적 현실의 차이들을 극복해내는 일,

그것이 바로 결혼이었다.


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우리만의 둥지”를 꿈꾸었지만,
그는 “두 집안이 엮여 있는 커다란 울타리”를 그렸다.

나는 ‘나의 부모들에게서의 독립에서 오는 안정’을 원했지만,
그는 ‘변치 않는 자리에서 오는 안정’을 믿었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단어 하나를 두고도 달랐다.
나에게 가족은 서로의 독립을 지켜주는 '우리 부부'라는 새로운 울타리였지만,
그에게 가족은 부모와 친척, 모든 이들이 끈끈하게 얽혀 사는 대가족의 개념이었다.


‘안정감’이라는 말도 다르게 이해했다.
나는 새로운 둥지를 만들려면
먼저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믿었지만,
그는 변치 않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안정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결혼’이라는 단어조차 달랐다.
나에게는 두 사람이 함께 새로운 세계를 세우는 시작이었지만,
그에게는 양가가 이어지는 합류점이었다.


우리가 같은 단어를 쓴다고 해서
같은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차이가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우리 사이의 갈등을 자라게 했다.


결혼식마저 그랬다.
우리는 주례 없는 선언문 낭독, 동시 입장으로 파격을 선택했다.
하지만 식장의 한켠, 양가 어른들에겐 그 장면이
“두 사람의 약속”이 아니라
“두 집안의 합류”로 읽히고 있었다.


시작점부터 달랐던 결혼 후의 삶은, 그 미세한 틈이 조금씩 벌어지는 과정이었다.
일정과 의례, 경조사와 살림의 결정에서
우리는 늘 같은 문장을 쓰지만, 다른 언어로 이해했다.


물론, 나는 그에게 기대기도 했다.
같은 편이 있다는 든든함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속삭였다.


‘의지와 의존은 다르다’고.


나는 정말로 마음 속으로는 바라고 있었다.
서로 기대어 서 있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 발로 서서 만들어가는 길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사는 게 바쁘고, 아이가 태어나고, 생활이 이어지면서
그 작은 차이를 매번 들춰내는 일은
내게 너무나도 큰 부담이 되었다.


결국 나는 어느 순간 힘이 빠져,
그 끈을 놓아버렸다.
그 갈등을 끝까지 붙잡고 있기엔
내 안에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진짜. 그냥 흘러가게 두자.”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방치했고,
그 방치한 자리에서 조금씩 나의 색깔을 잃어갔다.


하루하루를 쳐내기 바쁜 삶 속에서
내가 바쁘면 바쁠수록,

적극적으로 나를 의식하지 못하면 할 수록,
내 존재는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려 하지만,
독립하지 못한 두 사람은 서로를 삼키거나, 서로에게 삼켜진다.

- 머레이 보웬, 현대 가족치료학(family therapy)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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