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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일상의 연애

그의 '옆자리'에 앉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by 파랑새의숲


우리의 파리에서의 만남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지만,

한국에서 이어진 연애는 의외로 담백했다.


그는 굉장히 성실했고, 하루하루를 큰 기복 없이 살아갔다.
큰 감정의 파동도 없고, 특별한 이벤트는 더더욱 없었다.
우리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다기보다,

그저 그의 차분한 일상에 내가 더해진 느낌이었다.


그의 친구들을 만나봐도,

파리로 나를 만나러 선뜻 간 것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했다.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일탈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현실로 한국에 돌아와서 하는 연애는

프랑스에서만큼 낭만적이지도, 특별하지도,

무언가 굉장한 임팩트가 있지도 않았다.


그의 여자친구라는 자리


그렇게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연애를 하루하루 하다보니

마음 한켠에서 설명하기 힘든 허전함이 스며들었다.

그의 곁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어느 순간 그 옆의 ‘여자친구라는 자리’를 메우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이 자리가 꼭 ‘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옆자리에 앉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마치 악세서리, 혹은 트로피 같은 존재로?


그렇게 생각하면 슬퍼지는 일이고,

왜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드는지도 그 당시는 몰랐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내가 '부품' 같다는 생각이 스멀 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사랑이라 믿고 선택한 이 길이 단지 누군가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만큼 허무한 일도 없었기에, 나는 그 당시 깊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진실한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 관계의 공허함


왜 그랬을까.
그는 너무도 다정하고 젠틀했다.

부드러웠고, 상냥했으며 항상 예의 바르게 나를 존중했다.


그런 그에게서,

나는 왜 ‘사랑받는 여자’가 아닌, ‘부품으로서의 옆자리’라고 느낀 것일까.


어찌 보면 내가 느낀 가장 큰 결핍은 진실한 교류의 부재였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주변 친구들에게 하는 이야기와 내게 하는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자친구이기에 들을 수 있는 그의 진짜 속마음,
숨겨둔 두려움이나 바람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 감정들은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솔직하게 내보였다.
사건과 사고들 역시 친구들이 알고 있는 만큼만,

딱 그만큼 나도 알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지속되었다.


결국 그는 나와만 맺는 고유한 연결고리는 없는

어떤 ‘공공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묻게 되었다.

“나는 지금 한 인간과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그의 여자친구라는 역할과만 연결되어 있는가?”


심리학자 해리 스택 설리번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친밀감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낼 때만 가능하다.
— Harry Stack Sullivan, The Interpersonal Theory of Psychiatry (1953)


우리의 만남 속에는 진정한 자기노출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최대한 진심을 다해 하고 있는데,

그에게 필요하지 않는 어떤 얼굴을 만들어서

남들과는 다른 친밀감을 나와 쌓자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


난 그에게 뭔가 가깝다는 느낌을 갖기가 어려웠고,

그는 지금 이 상태로 여기 저기 그저

‘나를 데리고 다니는' 지금 이 관계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그 무언가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나는 그의 ‘여자친구’라는 이름표만 달고 있었을 뿐,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한다는 감각은 점점 흐려졌고

그것이 나의 관계에 있어서 공허함의 주된 원인이었다.


맞는 말, 그러나 굉장히 아픈 말


그는 늘 교과서에 나올 법한 올바른 말을 했다.


내가 너에게 특별한 존재야?

아니면 내가 그냥 여자친구니까 데리고 다니는 거야?

라고 어느 날, 물었다.


이런 유치한 질문을 정말 싫어하지만,

관계에서 뭔가 중요한 것이 빠졌다고 느끼고 있는데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특별하냐' 고 물은 나의 질문에

그는 여느때처럼 차분하게 답했다.


사랑은 우리가 지금부터 시작하는 거야.
시간을 쌓으면서 점점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 가는 거지.
지금부터 니가 너무 좋아서 너 없다고 못살거나
그런 이상한 강렬한 감정을 지금 느끼는 게 말이 돼?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하는 말로는 빵점이었다.

사탕발린 헛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한 이 관계의 구멍을 확인하자 내 마음은 더 쓸쓸해졌다.


나는 아마 그런 도덕책 같은 설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존재가 '너'에게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정말 그에게 특별하다는 확인을 원했다.


역할 속에서 머무는 교류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는 경험을 갈망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그에게 있다는 착각


그랬다.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는 ‘진정한 친밀감’,

그것을 원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과는 불가능한,

나만이 채울 수 있는 종류의 친밀감을 그와 나눔으로써,
그에게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나의 존재감을 타인에게서 찾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됨으로써', 누군가에게 중요해지려 애쓰고 있었다.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지만,
그것은 결국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내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정한 친밀감은 그런 방식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정한 자기 자신의 얼굴을 드러낼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마음을 채우는 인간 대 인간의 연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에는 많은 시간과,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나의 존재감을 타인에게서 찾으려 했다는 것,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됨으로써,

사랑받는다는 느낌 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찾고자 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존재감을 타인에게 맡기는 순간,

관계는 무겁게 변하고

서로를 옭아매는 굴레가 된다는 것 또한

그 당시엔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그는 내가 원하는 그것을 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 또한.


사실, 그것은 애초에 어떤 사람도 내게 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상대가 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내게 필요하니 내놓으라고 조르는

세 살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는 입구에 서 있었다.

아마 그것이, 결혼의 또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 이외에는 풀 수 없는 '나만의 문제'였다.

존재감을 내 안에서 되찾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는 최적의 상대이자 나의 인생의 배우자였다.


아마도, 우리는 서로의 인생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상대를 배우자로 고르는 경향이 있다.
We tend to choose as a spouse the person who seems most suited to help us resolve our life’s unfinished tasks.

— 카를 융, Carl Gustav Jung , 분석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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