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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운명 같은 사랑

남편과의 첫 만남

by 파랑새의숲


정말, 아주 작은 균열로부터 시작되었다.


평범한 주말이었다.
남편이 무심히 던진 그 한마디,

“넌 러닝 안 해봐서, 잘 모르는 거야.”


아무 뜻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늘 그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안에서는 오래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왜 이렇게 작은 말에도 흔들리는 걸까?
사람이란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존재가 아닐 텐데.

아마도 미세한 틈이 이미 내 안에 자라 있었던 걸까.


애초부터 스스로 단단히 서지도 못한 채,
나는 그에게 의존하며 기댔던 건 아닐까.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정말로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 믿어왔다.
남들이 무슨 말을 해도
내 생각과 주관에 단단히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남편의 인정과 평가에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미칠 듯이 몰려드는 서러움, 분함, 분노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내 자존감은 언제부터 이렇게 약해진 걸까.
왜 이 말이 이토록 아프게 파고드는 걸까.

그 물음이 나를 그와의 만남 그 첫 장면의 과거로 데려갔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흘러왔는지

찬찬히 다시 더듬어봐야만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운명적인 사랑


사실, 우리 사랑은 조금 특별하고 화려한 면이 있었다.


나는 남편과 프랑스 파리에서 사랑에 빠졌다.

그때 나는 모두가 좋다 하는 반짝반짝한 회사를 그만두고,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훌쩍 혼자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살기 위해 떠난 여행.
처음 밟아보는 낯선 세계와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생기 넘치고 발랄했다.


핸드폰도 없이, 이전의 삶과 연결 고리조차 완전히 사라졌던 시절.
온전히 ‘나 자신’으로 돌아간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떠오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단 세 번 만났던 사람.
고등학교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은근한 호감을 남긴 채 헤어졌던 그 남자였다.


이상하게 생각이 났다.

전화하고 싶어졌다.


나는 여행지마다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

그의 번호를 눌렀다.

여기, 이스탄불이에요! 너무 좋아요!

이탈리아 왔더니 콜로세움 엄청 크네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은 공사 중이에요

요트 크루즈 중인데 물빛이 미쳤어요!


그렇게 매일같이, 유럽 특파원처럼 내 생생한 여행기를 그에게 전했다.


그때의 감정은 아직 ‘사랑’이라기보다,
내 안의 생동감과 자유를 함께 누군가에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 시절 그는 여의도의 빌딩 숲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만 두드리고 있었다.
그 답답한 현실 속에서,
매일같이 들려오는 내 목소리는 신선한 활력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내 전화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재미없는 현실에서 유일한 즐거운 소식이었다고.


그러다 어느 날, 농담처럼 던진 내 말이 현실이 되었다.


“여름휴가에 유럽으로 와요. 내가 어디든 맞춰 갈게요.

뭐 어차피 자유여행 중이니까. 대충 날짜랑 오고 싶은 곳 정해봐요 ”


사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휴가를 내고 비싼 성수기 비행기 표를 사서 프랑스 파리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순간,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에게 나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외국에서 자기 삶을 즐기는 멋진 여자였고

나에게 그는,

나와 고작 4박 5일을 보내기 위해 지구 반바퀴를 돌아 날아온 열정적인 남자였다.


단 며칠 만에, 내 인생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 독신주의자였던 나는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 남은 삶을 누군가와 함께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내가 어렵게 되찾은 이 발랄함과 생기 있음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좋아하며 응원해 주는 모습에서
그와 함께라면, 남은 인생은 장밋빛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약 없이 떠돌던 여행자는,

결국 그와 미래를 꿈꾸기 위해 한국으로 바삐 돌아왔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잃었던 걸까.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

하지만 지금,

그의 작은 말 한마디에 무너져버린 내 마음 앞에서
나는 다시 묻고 있었다.


그 사랑의 시작은 그렇지 않았을진대,

그동안 어쩌다 나를 이렇게 약하게 만들었을까.
내가 처음부터 그에게 걸었던 기대와 의존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언제부터
나 자신으로 서는 법을 또다시 잊어버린 걸까.


우리는 사랑한 걸까, 아니면 의존한 걸까.


사랑은 자기 안의 결핍을 메워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기를 대신 지탱해 줄 타인을 찾는다.”

— 하인츠 코헛(Heinz Kohut), 자기 심리학(Self Psyc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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