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의 역설 (feat.줄탁동시)

by 실루엣


희생정신이 강하고 다정다감하다.
매사에 도와주려 하고 베푼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참 이상하고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난 이런 사람들이 불편할 때가 참 많다. 특히 내가 주는 것보다 항상 더 많이 주려하며 내가 주는 것은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사람을 만날 때 그러하다.


처음에는 고맙다.

그 다음에는 부담스럽다.

그리고 점점 뭔가 무기력해진다.


이게 내 사이클이고, 나는 뭔가 '과하게 돕는' 사람들 앞에서 느끼는 이 사이클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들의 호의와 도움이 너무 고맙다. 그런데 인간관계라는 것이 뭔가 주고 받는 것이 일정해야 원만하게 흘러간다. 지속적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의 균형이다. 한쪽으로만 흐르게 되면 분명 문제가 생긴다.


또한, 계속 '돕고자' 하는 사람과, 계속 '받아야 하는' 사람 간에 보이지 않는 권력구조가 생긴다.


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야.
난 너를 도울 수 있는 존재야.


라는 무의식적 권력구조가 싹트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끝이다. 받는 쪽에서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항상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적 갈등이 만든다. 겉으로 선의로 '도와주는 사람' 에게 버럭 화를 낼 명분도 없고, 그가 내게 저렇게 '넌 도움을 계속 받기만 해야 하는 나보다 약하거나 못한 존재' 라고 말을 한 적도 없다. 그러니 그 관계에서 무기력해지거나 그 관계 자체를 표면적으로는 알 수 없는 다른 이유로 파기하게 된다.


자기 몸 하나 다 바쳐 뒷바라지 했더니 성공해서 여자를 버렸다는 둥, 엄마가 평생을 뒷바라지 했더니 아이가 자라서 남몰라라 도망갔다는 둥, 기껏 매번 도와줬더니 쌩깐다는 둥... 이런 '억울한' 사례들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과연 그 도움이 받는 사람에게 '적절했는가' 이다.


참, 말하기 조심스럽고, 그 선을 조금 규정하기 뭣하지만, 도움의 역설은 참 보이지 않는 독으로 관계를 해친다. 우리는 얼마나 '도와준다' 라는 명목으로 상대를 통제하려 들고 그들의 우위에 서고자 발버둥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당하는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안다. 그것이 '도움' 이 아니고, 다른 가면을 쓴 '통제' 임을. 그리고 그것에 대항할 방법은 순응과 무기력이라는 자기파괴 이거나, 좀 더 용감하다면 관계파기처럼 극단적인 것이 될 수도 있음을 말이다.


도와준다는 것.


도와준다는 것은,

상대가 필요로 하는가,

혹시 상대를 침범하지는 않는가,

호의를 가장하여 상대를 통제하지는 않는가

이 세 가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도와주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려면 내가 '돕고 싶어서' 돕는게 아니어야 한다. 상대방이 언제 도움이 필요한지 잘 살필 수 있는 눈과 진짜 '관심', 그리고 적절한 도움을 통해 개입할 수 있는 조심스런 행동과 통찰력도 필요하다.


알에서 깨고 나오는 병아리를 도와주는 어미닭처럼 말이다. 아무때나 도와주겠다고 알을 깨면 병아리는 죽는것처럼, 섣부른 '내' 가 하고 싶어 돕는 행위는 남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언제나.


난 호의로 그런건데 상대가 서운하게 한다?

그건 당신이 섣부르게 나선 탓이다.

상대가 당신의 도움에 행복할 때, 비로소 그것을 '도움' 이라 부를 수 있다.

나머지는 전부 오지랖에 불과하다.


IMG_5330.jpg?type=w773

<그림 출처: 네이버 이미지>


#무기력

#도움의역설

#줄탁동시



keyword
이전 03화고아, 아니면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