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아니면 어른.

-부모의 마음까지 돌봐야 하는 아이

by 실루엣

요가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친정 엄마가 울면서 전화를 거셨다. 아빠랑 이혼할거라고, 집 내놓으러 간다고. 집 급매로 팔아서 시골 내려갈 거라고 자기는 확고하다고 알고 있으라 흥분해서 말씀하셨다.안 봐도 비디오, 그리고 나도 요즘 안 그래도 맘 복잡한데 성질이 빡 났다.


두 분 일은 이제 좀 두 분이 알아서 하세요
왜 나한테 허락을 받아?! 부부간의 일을!


85세 아빠와 77세 엄마.

아빠 철없는 태도에 매번 맘 상해 기댈 곳 없고 맘 터놓을 때 없어 하나뿐인 어린 외동딸에게 울먹이며 전화한 엄마.


요는, 엄마가 지금 너무 아픈데 다정하게 물어봐주지도, 엄마 밥을 챙겨주지도 않고 아빠 혼자 라면 끓여먹을테니 들어가 누워있으라고 쌀쌀맞게 대했다는 건데 .. 자기가 경제력 없고 연금도 아빠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무시한다는 건데 ..


같은 여자로서 10년 넘게 살아보니, 그 마음과 서러움이 뭔지 진짜 이해가 처음으로 갔다. 그녀는 또 따뜻하게 자기 편 들어주고 서러움 알아줄 ‘엄마’ 가 필요한 거다. 그녀도 마음의 고아처럼 평생 남의 마음만 돌보며 살아온지라, 가끔 지치면 나를 찾아와 아프다고 울어댔다. 나는 또 내 엄마의 ‘엄마’ 가 되어야 하는 시간인 거다.


일단 그 집에서 당장 나와.
집을 왜 팔아? 나 물려줘야지. 나 살기 힘든데
방 잡아주께 아빠 밥하지 말고 일단 나와.


예전에는 그냥 이래 저래 달래기 바빴다면, 이번엔 진짜 내 마음이었다. 충격요법으로 나가니 엄마가 의외로 진정이 된다. 물론 한 시간 걸렸지만.


여자 아플 때 다정하게 아프냐고 물어주는 남자? 대한민국에 없어. 아프겠다 배고프지? 다정하게 밥 차려주면서 걱정해주는 남자? 없어 없어! 아빠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 다! 그 나이 또래 다.


지금 내 또래도 그런 남자 거의 없어. 지금 내 남편 다정해 보이지? 똑같애. 다들 집안에서 아들 아들 귀하게만 커서, 자라면서 평생 남의 비위를 안맞춰본 사람들이라, 엄마가 자기 비위 맞춰주고 좋아라만 하니 불편함 하나 없이 커서,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다들 여자한테 자기 비위 맞춰달라 하지 먼저 사과하거나 다정하게 말걸거나 이런 거 할 줄 아는 남자가 대한민국에 아예 없다고 생각하라니까! 85년 동안 없었던게 오늘 갑자기 생기겠냐고 그렇게 생겨먹은 걸. 그런거 기대하지 말고 일단 빨리 당장 그 집에서 나와서 엄마 먹고 싶은 맛있는 거 사먹고, 그 집은 절대 팔 생각 하지마. 나한테 물려줘야지 왜 급매로 팔아?? 애도 셋이라 내가 얼마나 힘든데 나중에 그 집 하나 물려 받을 생각하고 살 거니까 절대 팔지마. 엄마 주택연금 할 거면 몰라도.


그지같은 남편한테 인정 못받는다고 울지 말고, 그냥 버려. 냅두고 나와서 엄마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거 해. 나중에 돌아가시면 텃밭 있는 집 구해주께, 밭 가꾸고 재밌게 살면 되잖아. 그리고 아빠 너무 잘 해 먹이지 말고 정성 들이지 마. 그런 남편 받들어 모셔놨더니 고마운 것도 모르고 아파트에 갇혀 살고 아들도 나가 죽고 홧병이 얼마나 심하겠어! 일단 아빠 밥 하지 말고 그 집에서 당장 나와서 맛있는 거 사먹어.


울먹이던 엄마가 조금 진정되었는지, 일단 밥을 해먹어야겠다고 하시더니 끊었다.


.....................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끝내고 결국 엄마는 또 힘내서 아빠 밥을 지으러 가셨다.


나는 남편이랑 아무리 싸우고, 아이 키우거나 행여 다른 일로 무슨 속이 썩어도 친정 엄마한테 전화걸어 하소연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내 감정을 자기 것이라 느끼셔서 나보다 더 힘들어 하시기 때문에. 애꿎은 친구들한테 몇 번 하소연, 그리고 그나마 이 블로그가 일기장이라 여기다 쏟아붓고 말기.


마음의 고아.


마음의 고아란 그런 것이다. ‘엄마’ 가 마음 속에 없는 것. 아무리 힘들어도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어쩌면 ‘어른’ 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힘들어도 어딘가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어른 말이다. 항상 비바람 부는 들판 위에, 나 혼자 서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오빠가 죽은 뒤 11살부터 나는 그렇게 마음의 고아처럼 살아왔다.


문제는, 거기에 차라리 혼자 서 있으면 낫다.


혼자 서 있는 옆에서 서로 서로 부둥켜 안고 끈끈한 가족애를 자랑하며 있는 한 가족이 있다. 그들에게 나는 진정한 가족이 아닌, 이방인에 불과한데다 그들 중 한 명은, 내가 내 편이라 생각하여 결혼한 남편과 내 사이에서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영원히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다. 혼자 서 있기도 벅찬데,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손절도 못하게 시댁으로 묶여 있다. 남편은 그들과 가족이면서 너는 왜 이쪽으로 끈끈하게 넘어오지 않느냐 헛소리를 한다.


그들과 함께 하느니, 나는 그냥 예전처럼 차라리 혼자 들판에 서 있는 게 낫겠다.


그게 내가 아예 그 가족에서 그냥 떨어져나와 버리고 싶은 이유다. 너무 힘들어서 내가 내 아이들을 나의 엄마로 삼게 될까 경계하며, 다른 곳에서 내 휴식처를 찾는 게 낫겠다 싶어서.


혼자 서 있는 게 당연하면, 좀 막막해도 매번 힘내서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 가족이란 탈을 쓰고 소외감까지 얹어주면 느끼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왕따 느낌의 깊은 외로움과 불편까지 덤으로 느껴야 해서 배로 힘들다고.


은따나 왕따보다는 외톨이가 덜 외로운 법.


아니면, 이게 진정한 어른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비바람 맞으며 서 있을 준비가 된 지금, 난 어른이 될 준비가 이제서야 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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