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어린 아이.

-상처받은 내면 아이

by 실루엣


나는 아이 네 명을 기르고 있다. 9살 첫째, 6살 둘째, 5살 셋째.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내 안에 살며 가끔씩 힘들었던 그 때 그 시절의 나이, 모습을 하고 툭툭 튀어나오는 나의 내면아이다.


내면아이란, 내 안에 있는 보살핌 받지 못한 채 상처받은 채 남아있는 어린아이를 뜻하는 심리학 개념이다. 누군가는 '월경전증후군'이라 하고, 누군가는 술을 먹으면 튀어나오는 '술취한 코끼리'라 하고, 얼마전 읽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란 책에서는 기생충처럼 붙어 기생하는 '고통체'라 하고, 정신분석에서는 본능적인 '이드' 라 하고, 다른 데서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라 하고... 여러 이름을 가졌지만 , 몸이 힘들고 정신이 예민해서 나에 대한 컨트롤이 떨어지는 시점에 튀어나오는 이 팝업을 나는 '과거에 상처받은 그 까칠한 아이' 라고 부른다.


30살 즈음까지 그 아이의 나이는 서너살 정도였던 것 같다. 항상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으시는 과잉보호하는 엄마 아래서 나는 그 나이대부터 맘껏 맛봐야 했을 자율성에 심각한 손상을 받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의 외침을 진실하게 듣지 않았었고, 결국 꾹꾹 눌러 말잘듣고 살다가 서른 즈음에 터져버렸다.


회사 때려쳤어. 퇴직금 털어서 유럽여행 갈거야. 내 통장 주세요.


잘 다니던, 그래도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회사를 퇴사하기로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자취방 집의 짐은 다 버리거나 엄마 아빠 집에 가져다 놓았다. 온갖 수단 방법으로 나를 붙잡는 부모를 외면하고 유럽에 최대한 길게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노선을 짜고 돌아오는 날을 바꿀 수 있는 오픈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한국말과 영어가 안 통하는 지역으로 일부러 나를 데려다놓고, 몸짓 발짓으로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설명해야하는 "서너살 아기" 가 스스로 되었다.


넌 길잃은 아기고양이 같아


그 중 그래도 말이 통했던 사람들에게 왜 도와주냐 물었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들은 꽤 정확한 눈으로 나의 필요를 알아차렸고, 그렇게 그 아기를 키운 건 여행길에 만났던 따스한 사람들이었다. 말이 정말 한 마디도 안통해서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려 애쓰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서, 혹은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그 순박한 현지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인연들을 4개월이라는 그 짧은 시간 안에 그 길위에서 모두 만났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 순간 그들은 내게 적절하게 말을 걸어왔고, 필요한 도움을 주고, 다치지 않게 보살폈다.


서너살 그 아기를 키운 건, 여행길에 만났던 따스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30대 초 중반, 둘째가 생기면서 내 어린아이 중 가장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11살 아이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때는 나의 유일한 보호막이었던 13살 많은 오빠가 사고로 죽고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던 시절이었다. 아들을 잃은 엄마와 아빠는 나를 제대로 돌볼 겨를이 없었고, 그대로 나는 오빠와 부모를 모두 잃고 정신적 고아가 되었다.


그 아이가 내게 본격적으로 말을 걸어오면서 나는 이 화난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당황했고, 그렇게 내게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엄마같이 따스히 안아주던 의사 선생님과 내게 한계를 지우고 선택과 책임의 의미를 알려준 정신분석가 두 분이 그 아이를 키워냈다. (묘한 것이 그 엄마 아빠 역할의 상담가들은 성별이 반대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그 까칠한 아이와 대화하는 법을 상냥하게 때론 호되게 가르쳤다. 후에 그들이 없이도 나 혼자 그 아이를 잘 길러나갈 수 있도록.


그 '정신적 부모'들은 내게 그 아이를 혼자 길러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40이 되는 지금은 사춘기 중고딩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아이는 소음과 공간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 시절은 내가 소음과 잠, 그리고 공간에 극도로 민감하던 시기다. 새벽마다 흐느끼고 분노로 절규하던 엄마 소리에 가슴이 콩닥콩닥 숨죽였고,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새벽녘에 엄마가 울다 지쳐 잠들었을 때야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아침이면 일부러 깨라는 듯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그릇소리, 잠글 수 없이 항상 침범당했던 내 방안에서 너무 불편했던 기억들 때문에 그 시절 소리와 공간에 극도로 민감한 시기를 보냈다. 그 아이는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을 계속적으로 요구하며, 사춘기답게 화려한 색깔들의 예쁘고 젊은 감성의 옷을 입고 놀러나가고 싶어한다.


제발 좀 날 내버려둬, 조용히 좀!
칙칙하게 시꺼먼 옷들 좀 그만 입고!!


한참 멋부릴 시절, 우울한 감성을 반영하듯 시커먼 무채색 옷만 입었던 그 아이. 예쁘게 나를 꾸미거나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은 사치라고 느꼈던 아이. 신나게 몸을 쓰며 운동하고 놀고 싶었으나 집에만 처박혀 있었던 아이. 내게 무언가를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던 그 사춘기 아이를 위해 나는 오늘도 화려한 색상의 요가 레깅스를 이것저것 골라 입고 요가매트 위에 선다. (내겐 화려한 색상과 패턴의 레깅스들이 그런 의미를 지닌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 마지막에 힘들게 살아온 주인공이 할아버지가 되어 방에서 혼자 흐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output_3668524608.jpg?type=w773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그 할아버지의 내면을 상징하는 그 방에서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output_2174862844.jpg?type=w773


정말 힘들었지?
장하다..


output_2770767506.jpg?type=w773


따뜻하게 안아주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너무 힘들었다고 엉엉 우는 그 아이. 아마도 그렇게 안겨서 실컷 울고 난 그 아이는 성장할 준비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 아이를 키우는 방법은 어른이 된 내가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다. 힘들었겠다 안아주는 것이다. 현재와 타협할 수 있다면 그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해주기도 하며 이건 안되겠다 거절도 해가면서 살살 달래는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길러나가고 있다. 재촉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아이넷중가장키우기힘든까칠한아이

#상처받은내면아이

#당신의내면아이는몇살인가요

#영화국제시장




keyword
이전 01화엄마, 엄마! 그 애틋한 이름의 주인공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