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 인형이 아니라고! 제발 좀 날 내버려 두라고!
큰 아들을 사고로 먼저 보내고, 아직 한참 어린 딸을 안고 인형처럼 과잉보호하며 살던 엄마와 그 간섭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딸. 예전 엄마와 나의 관계였다.
어느 날, 나는 어떤 결심을 한 듯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날부터 엄청난 분노와 공포가 밀려와서 엄마를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어느날 갑자기 엄마를 떠났다. 내 말 잘 듣던 하나 뿐인 '착한 딸'이 돌변한 것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를 뒤로하고.
난 죽을힘을 다해 엄마로부터 도망쳤고, 엄마는 크게 분노하셨다. 내겐 어마어마한 죄책감과 불안감과 분노의 파도가 매일 끊임없이 덮쳤고, 엄마는 어떻게든 예전 딸을 되찾고 싶어서 화도 내보고 애원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고 가만히 기다려도 보셨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가는 대신 '새로운 엄마'를 찾아 심리 상담실을 찾았다.
엄마가 너무 싫어요. 그리고 내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그 닮은 모습이 너무 싫어요.
어떻게 운명의 굴레같은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 잘 모르던 시절, 나는 엄마처럼 되기 싫다고 잔뜩 화가 나 울부짖는 내게 상담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엄마여도 돼요, 다만 둘이 분리되어 살자는 거죠. '나'를 찾으면 자연히 해결되지만 문제는 '내'가 없네요.
그렇게 2년여동안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 극단적인 결별 상태가 이어졌다. 물론 엄마는 계속 연락하고 기다리고 화내고 끊임없이 여러 형태로 내게 사인을 보내오셨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70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엄마를 내가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대로 두는 수밖에.
다른 사람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나의 반응뿐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다만 그에 대한 나의 반응 뿐이었다. 예전에는 엄마의 반응에 화내거나 사과하거나 어떻게든 맞대응을 했었다면, 이번에는 다만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견디는 수밖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그러니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반응을 바꾸었을 뿐인데, 상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내가 당신의 마음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착한 딸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관계란, 살아있는 생명처럼 살아 움직인다.
엄마가 나를 놓기 시작하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엄마를 놓기 시작하자, 그녀가 한 개인이자 나와 같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사랑, 갈등, 고통, 절망, 그 삶의 애환들이 공감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삶이 '나의 엄마'의 삶이 아닌, 한 여자로서의 삶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분노에 가득차 엄마의 모든 게 잘못되어 보였던 콩까풀이 벗겨지니, 그녀가 가진 장점과 삶의 지혜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단점만큼 장점도 많은 여자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최선을 내게 다한 엄마였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최선이 내게 최선은 아니었더라도)
지금은 나 대신 할아버지가 된 강아지를 안고 보살피고 계신다. 예전보다 훨씬 너그럽고 여유있고 관대한 모습으로.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엄마와 딸로 만나 복닥거리며 살았던 그 시간들이 스쳐지나간다.
그녀 덕에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가질 수 있었던 행복들을 부정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고통들에 대하여 남의 탓 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가 맺은 인연을 통해 우리 둘 다 이만큼 성장했다.
딸이 독립하지 않는 것은, 엄마가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거에요. 둘이 붙어사는 서로에게 기생하는 삶 말고, 각자 삶을 살아야지요.
내가 엄마를 떠날 때 엄마가 걱정되어 과연 이 선택이 맞는 것인지 조언을 구했던 정신과의사 선생님께서 내 등을 떠밀면서 해주셨던 말씀이다.
"딸이 떠난 뒤 어머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든, 그건 어머님의 삶이자 선택이에요. 그것까지 책임지려 할 필요는 없어요. 그게 바로 월권입니다."
그렇게 감행했던 이별 뒤, 내 걱정과는 달리 우리는 각자 좀 더 성숙한 존재가 되어 재회했고, 무척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