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좀 그만 불러! 엄마 좀 쉬자!
코로나로 아이 셋과 함께 있다 보니, 아이 셋이 경쟁하듯 엄마를 불러댔다. 오후쯤 되면 체력이 고갈되어 종종 이렇게 소리지르곤 한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
일어났다고 부르고, 도와달라고 부르고, 배고프다고 부르고, 자기를 봐달라고 부르고, 다쳤다고 부르고, 물건이 어딨냐고 부르고, 또 어떤 땐 그냥 부른다.
내가 나의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아이들의 나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애절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필요를 다 채워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좋은 엄마' 가 되려고 아둥바둥 할 필요없이, 그냥 지금 내 모습 그대로, 남은 생애 조금씩 이렇게 그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그들 옆에 있어주면 충분하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렇게 가끔은 엄마 부르는 소리를 애써 모른척하고, 힘들면 힘들다 아이들한테 부탁하고, 가끔 번아웃되면 소리도 꽥 지르고, 그리고 미안하지만 엄마 배터리 충전 시간도 달라고 애원하고.. 힘겹지만 최소한의 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그들과 함께 커가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쭉 회사를 다녔던 나로서는 '돈 버는 대기업 또는 외국계 회사 직원' 이라는 남보기에 번듯한 사회적 타이틀을 내려놓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이 사회에서 경력 단절된 여성이 재취업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고 있고.
난 내 대부분의 시간을 어디에 쓰고 싶은가.
그 당시, 엄마와 시댁으로부터 독립해 내 삶을 온전히 되찾아야 하는 중요과제도 있었고, 회사 일도 내가 원하던 일은 아니었다. 내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별로 상관치 않는 싫어하는 상사의 입냄새를 맡으며 보내는 데에 대한 회의도 들었고. 마침, 신랑도 나가서 돈버는 것보단 아이 셋 의 안정적인 엄마로 남아주는 것에 동의했고. (사실 그게 돈이 덜 든다;;;)
그렇게 '엄마' 란 타이틀만 남았다.
셋째가 태어나고부터는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리라 맘먹고 홀로 전투적으로 임했던 세 아이 육아과정. 머리 빗을 틈도 없이 빵꾸난 티셔츠를 입고 츄리닝만 입고 보낸 것이 몇 년 째인지.
불안했다. 애써 떨쳐내려 해도 가끔씩은 빨리 사회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언젠가 고등학교 여자동창 15명이 모였는데 나 혼자 전업주부였을 때. 한의사, 교사, 건축가, 공사직원, 대기업직원, 대학교수.. 다들 사회에서 멋지게 자리잡은 모습을 보고 돌아왔을 때, 나 혼자 이렇게 집에 있는 것이 괜찮은가 가끔 흔들리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 흔들린다)
하지만 안다. 아이러닉하게도, 예쁜 옷 입고 예쁜 가방 들고 출근했던 그 시간들보다도, 구멍나고 케찹 뭍은 티쳐츠 입고 부시시한 머리로 울다 웃다 그렇게 다양한 감정들로 아이들을 보고 있던 그 시간들이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으리란 걸. 물론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사회생활에서 별다른 보람을 찾지 못하고 있던 내겐 반드시 그럴 것 같았다. 난 나를 너무 잘 알기에, 그리고 내가 원했기에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매일 매일 책임지려 노력중이다.
오늘같이 뜻밖의 선물을 발견한 날이면, 참 행복하다.
아이들 셋이 놀러나간 새, 청소하다 내 침대 머리맡에서 발견한 종이조각들. 그간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아이들이 고이 접어 올려놓은 편지와 선물들.
예쁜 그림들과 팽이. 각자 가장 예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걸 엄마에게 선물했다.
어쩌면 그들이 나를 보살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물론 자라면서 그 사랑을 엄마에게가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데 사용하겠지. 나는 잠시 그 대상이 되어 줄 뿐.
#아이에게서사랑을배운다
#엄마의삶
#이런감성이라니이제좀살만한가보다
#그래도엄마좀그만불러
#엄마도독립준비좀해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