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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Nov 28. 2023

프롤로그

- 어느 날, 그렇게 '나'에 대한 물음이 또다시 찾아왔다.

정말 , 보통때와 다르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신랑과 대화 중에 날카롭게 베인 말 한마디가 있었다. 별 거 아닌 말인데, 그것이 유난히 내겐 무엇보다 날카로운 칼끝 같았다. 심장을 다친 듯이 아팠다. 그래서 아프다고 난리를 쳤다. 물론 , 참 미숙하게.


그 발단은 남들 보기에, 신랑 입장에서는 별 거 아니었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함께 러닝을 시작한 초보들. 신랑이 러닝에 관한 이야기를 전문가에게서 들은 내용을 내게 말해줬는데, 아무래도 몸을 쓰는 문제이다 보니 요가와 겹치는 것들이 많았다. 몸을 쓰는 철학이나, 실제 몸을 쓰는 방법, 특히 코어를 잡는 방법 등은 요가와 거의 비슷하다 느꼈다. (참고로 난, 현재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다) 요가나 러닝 뿐만 아니라, 이건 거의 모든 운동에서 기초 부분이라 거의 동일하다고 보는 입장인데, 그 날따라 신랑이 내 말을 딱 끊으면서 니가 뭘 아냐는 말투로 이야기 했다.


아니, 우리가 지금 러닝에 대해 논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고.


내가 코어를 쓰는 법이, 몸을 가볍게 지상에서 띄운다는 그 말이 요가와 비슷한 것 같다. 무슨 말인 지 알 것 같다, 온 몸의 근육을 잡고 몸을 가볍게 띄우고 코어에 힘을 잡는 게 요가도 그런데.. 라고  설명하는 중에 신랑이 치고 들어온 그 말에 나는 이상하게 심장을 베인 듯이 아팠다.


공교롭게도 , 그 날 집에서 바베큐를 해 먹으면서 신랑이 건네준 뜨겁게 달뤄진 접시 덕에 방금 손가락이 타친 터였다. 무심결에 신랑이 건넨 화로 옆에 있던 접시를 받았는데, 너무 뜨거웠다. 앗 뜨거 뜨거 소리치는 나를 그는 그냥 빤히 바라보다, 아차 화로 옆에 놔뒀으니 뜨겁겠구나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 얼른 접시를 거두고 내 손가락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랬다. '내가 아프다' 는 반응에는 반응하지 않다가, 아차, 그 원인이 그럴만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그제서야 아, 그렇겠구나 아프겠구나 인정하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항상 그래왔지만, 이제까지는 마음과 사건 영역에서 벌어졌던 일이라면, 이번엔 그저 단순하게 '화상' 으로 드러난 어떤 증상같은 사건이었다.


그렇게 손가락 화상을 응급치료하고 난 뒤, 앉아서 일어난 일이 '러닝에 대해 지금 니가 뭔가를 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고' 라는 2차 가격이 일어나자, 나는 참고 싶지 않은 마음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당신은 항상 그랬지. 내가 요가를 하는 것도 그렇고,
예전 심리 상담도 그렇고. 그저 내가 하는 일들은 전문성 없이 보잘것 없어 보이지.  


항상 내가 심리상담가로서 , 심리학도로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복잡하고 쓸데없고 피곤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상처받았던 과거 옛날 이야기들까지 줄줄이 고구마처럼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내가 좋은 고등학교에 괜찮은 대학교 나와서 , 좋은 직장 다니다가 솔로로 화려하게 살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신과 결혼하면 둘이 재미있게 자유롭게 살 줄 알고 결혼했지.

근데 지금 이게 뭐지?


난 당신에게 사사건건 무시받는 느낌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당신과 진정한 공유조차 되지 않고,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당신은 실제로는 정말 '별로고, 재미없다' 라고 느끼면서

유투브나 다른 인플루언서 연예인들 이나 화려한 다른 이들의 삶을 동경하지.


그 사이, 나는 당신 어머니와 형님의  영혼없는 통제를 추가로 내 삶에 추가했지.

나에게 관심있는 척하는 전화를 받으며 당신과 아이들의 소식을 전하는 비둘기 메신저가 되고

내 삶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어도 무시받는, 그런 철저한 당신의 '아내' 역할을 하는 그런 여자가 되었지.


무엇을 위해서?


당신을 사랑해서?

사회적 '결혼관계'가 필요해서?

아니면 사회적으로 '결혼한 여자' 라는 타이틀이 필요해서?

주변에서 결혼해야 한다 압박해서?

혼자 살기 힘들어서?


아니, 아니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마지막 끝까지 몰려서야 깨닫는 특징이 있는 나는 거기서 깨달았다. 나는 '친밀감' 을 위해서, 나를 위하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족' 을 위해서 당신과 결혼했지.


관심사를 공유하고

서로에 대해 멋지다고 생각하고 동경하며,

내가 잘 알지는 못할지언정 최고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내 남편에게는 무엇을 하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가정하고

언제든 그의 편이 되어 그를 위해 싸우리라,

그가 좋아하는 것은 함께 하려고 노력하리라.

그의 세계로 기꺼이 들어가 보리라.


이런 마음으로.


그런데, 그는 그의 관심사에 나를 초대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그저 혼자 저멀리 도망가서 안식을 취하며,

무엇보다 나보다는 자신의 원가정이 우선이고,

나보다는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들의 상황과 심정이 더 이해가 잘가는

아직 나의 편이라기보다는 나의 동거인인 것이었다.

나와 함께하는 것보다는,

내가 그의 '아내' 로서 그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중요한

그런데 그러지 않아서 아직은 자기가 품기 뭣한 그런 존재?


이런 존재가 되어 있음을 느꼈다.


안 할래 이제.
당신 대리인, 시댁과의 소통,
나한테 관심없는 사람들과의 소통, 그거 이제 안 할래.


시댁 전화를 차단하고 추석에 신랑과 아이 셋만 내려보냈다.

그리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집 마당 공사를 시작했다.

참 신기한 것이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항상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상징적으로 평행이론처럼 병행해서 일어난다.


이번에도 그랬다.

슬금슬금 넘어오는 뒷집이 물건들을 아예 차단하기 위해 집 경계부터 확실히 세우고, 담벼락을 세웠다. 대문을 바꾸고, 초인종을 저 멀리 입구쪽으로 옮겨 달았다. 울타리목을 억세고 수수하고 한결같다는 회양목에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 무엇보다 '나의 마음에 드는' 써니스마라그, 에메랄드 그린, 남천 나무로 바꾸고 여러 나무들을 심었다.


그리고 , 무엇보다 마당에 내 노후 연금을 깨서 큰 공사를 시작했다.


내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42년 평생, 거의 가져보지 못한 나만의 공간을, 이제 드디어 만들기로 결심했다.

노후 연금을 탈탈 털어서 그 공사를 과감히 시작했다.

바닥에는 콘크리트를 붓고, 단단하게 바닥 다지기부터.

그리고 그 과정은 내 내면에서도 동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도 '나의 공간' , 남편 가정 아이들을 뺀 '나만의 공간과 세계' 를 찾기 위한 여정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81년생 김아무개 여성, 내 안에서 물음이 돋아났다.


넌, 누구야?


#81년생김아무개

#그여자이야기

#세아이엄마

#한사람의아내

#전부버리면난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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