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도시의 삶

- 공간이 없으면 삶도 없다.

by 파랑새의숲


대부분의 문제는 지리적으로 해결 가능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편안한 공간이 편안한 몸을 가능하게 하고

편안한 몸이 편안한 마음을 만든다.



내겐 이 말이 진실이다. 즉,


편안한 공간에서

편안한 몸을 가지고

편안한 마음을 이뤄낸 사람들이,


불편한 공간에서

불편한 몸을 가지고

불편한 마음과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사랑해라 현재 있는 곳을 받아들여라


라고 지껄이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몸과 마음이 편안한 사람들이 하는 엉터리 설교사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또한 어려움을 극복해 낸 사람들의 이야기 중, 내가 싫어하는 말이 하나 있다. 갓난아기 안고, 또는 애들 쫓아다니며 헉헉대며 힘들어하는 며칠째 잠도 못 자고 설친 것 같은 핼쑥한 엄마에게,


그래도 지나 보면, 애 키울 때가 그래도 제일 행복한 거야.


이 말은 내게 이런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가 다르다.


화장실 급한데 못 가서 종종 대며 난리 칠 때는 죽을 거 같다가, 다녀온 후엔 "그것도 추억이다"라고 말하는 것... 화장실을 가서 일을 봤으니 그게 추억이 될 수 있고, 그 일이 이미 지나갔으니 행복했다 기억도 되는 거다. (심리학에서 '폴리아나 원리' 또는 '긍정성 편향'이라는 이론이 있다. 지나간 일들은 좋게 포장되어 장밋빛으로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이다.)


아무튼, 도시의 삶이 편하긴 하지만 난 정말 숨 막혔다. 높은 빌딩, 수직구조 아파트 그곳에 사는 것이 정말 감옥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으며 스트레스받아했다. 지난 주말, 토요일 일요일 연속으로 오랜만에 사람 바글바글하고 차선 좁고 주차할 데 없는 상점으로 가득한 네모 빌딩 숲을 비집어야 하는 동네를 다녀왔다.



그리고 신경이 최대치로 날카로워졌다.



촉각에 민감한 사람들은 공간과 타인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특히 기질적으로 촉각이 타고나길 예민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에 침범할 수 있는 "움직임이나 소리" 그 자체에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사람이 많은 곳이나 시끄러운 곳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아 소리 지르거나 울거나 불안해하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아동의 기질과 성격에 대해 공부하다가 나도 어느 정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좁은 차선이 싫고,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으면 자극이 너무 많아져 한곳에 집중이 힘들다. 빠른 움직임이 많으면 극도로 예민해지고 소리가 많아져도 온 신경이 까칠하게 곤두선다. 주차공간이 모두 지하로 되어 있는 상점 밀집 가는 아무리 편의시설이 많아도 싫고, 아무리 좋은 카페나 맛집이라도 기다렸다가 먹을 정도의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가길 꺼린다. 옆자리에 다닥다닥 빼곡하게 채워 앉아야 하는 고깃집 같은 곳은 기피대상 1호다. 차라리 맛은 없더라도 사람이 없는, 자리 여유로운 곳을 간다. 내겐 그런 맛집과 상점과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필요치가 않다. 필요 없는 자극들이 가득한 곳에 피곤해하며 굳이 왜 내가 여기 살아야 할까 싶을 때가 많다.


정말 애 셋 데리고 제주도 가서 살까?
애들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당분간이라도 살아볼까?


멘털이 탈탈 털려 집에 돌아와서 진지하게 신랑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신랑 회사가 서울 한복판이니 불가능하기도 하고, 제주도도 오래 살기 힘든 곳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문득 한 달 살기 하며 느꼈던 그 한적함과 넉넉함이 그리워해 본 넋두리였다. 특히 그곳에도 많은 단점들이 있지만, 적어도 사람에게 넉넉한 공간이라는 걸 제공하니까. 바다가 있고, 오름이 있고, 식물원이 있고, 그런 곳들을 사람들에 치여서 다녀오지 않아도 되니까..


도시라는 곳이, 사람들에게 충분한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햇빛과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고층빌딩보다는 땅에 붙은 저층을 선호하며, 깔끔한 빌딩 안보다는 바다와 산과 공원을 좋아하는 나는... 뭔가 도시에 살면서 시들시들해지는 느낌이 든다. 특히 사람 많은 빌딩 안에 갇혀 지낸 이틀 주말 동안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다..


지금 사는 동네는 그나마 한적하고 나무와 새와 눈 마주치며 살아 힐링이 가능한데... 다시는 읍내(?) 나 중심가로 이사 못 갈 거 같다.. 어쩌지..


난, 더 이상 도시에서 못 살겠다.



더 이상 못 살겠다면,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난 그날 이후 계속 도심 근교, 여의도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주택단지가 있는 곳들을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나의 공간과 삶을 위하여.



#단독주택입성기

#나의공간과삶을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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