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장 캐릭터의 가르침
이건 , 진짜 전투가 아닙니다.
그렇게 혼자 전쟁을 치루며 마구 총질을 해대고 있는 그 소녀의 앞에, 66세 전직 킬러이자 정보원으로 아무도 탈출한 적 없다는 감옥을 탈출하는 방법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그자가 터벅 터벅 걸어들어왔다. 아주 유능하고 여유있는 킬러지만, 지금은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빨리 이 일에서 벗어나 단지 소박한 자유를 얻어 남은 인생 자신의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인 영화 <더 록>에서의 그 캐릭터가 그렇게 들어왔다.
영화 <더 록> 에서 명장면을 꼽으라면, 억울하게 죽은 자기 부하들에 대한 보상을 하라며, 그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필요한 그 칩을 당장 내놓으라고, 민간인을 인질로 잡고 위협하는 험멜 장군의 앞으로 여유있게 걸어들어가 그의 테러에 대한 심리적 정당성을 세게 흔들어놓는 숀 코너리의 한 방 먹이기 장면이다. 영화에서도 당장 보상하지 않으면 샌프란시스코를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며 기세 등등하던 험멜 장군의 눈빛이 이 장면 이후 정당성을 잃고 자신없게 흔들린다.
험멜 장군은 조국에 의해 배반당한 자신의 부하들의 죽음과 그에 대한 자신의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손 코너리(존 메이슨) 는 자신이 조국으로부터 버려져 30년의 자신의 삶을 몽땅 잃어버린 바로 그 '죽은병사' 그 당사자다. 그 분노와 좌절감을 모를리 없다.
길길이 날뛰며 화를 뿜어내는 그 소녀에게 숀 코너리가 걸어들어와 그렇게 말을 걸었다. 자신의 지난 삶과 부하들의 헛된 죽음에 보상을 받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박살내겠다고 위협하는 험멜 장군에게 그가 이야기하는 그 대사로.
뉘앙스를 느끼자면, 정확한 대사는 이렇다.
I don't quite see how you cherish the memory of the dead by killing another million.
그 소녀에게 분명 어떤식의 전투는 필요했다.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그러나 그렇게 요란하게 아무대나 총을 쏴대며 총알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현재의 위협요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전투다. 그리고 그것이 그 소녀가 했어야 할 전부였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이 왜 그렇게 길길이 날뛰는지 잘 알지 못했다. 자신에게 결핍된 것이 밖에 있으며, 그걸 그 소년이 내놓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리고 과거가 아닌 현재 진짜 위협이 정확히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막아내야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매번 같은 프레임으로 가두면, 같은 결과가 반복될 뿐이다. 관계를 파괴하는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중에 수백만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길길이 날뛰었던 험멜 장군은 죽으면서 스스로 깨닫는다.
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생각이 원래 없었다. 난 사람들을 죽일 수 없다.
내가 미쳤는가?
이 미로같은 감옥을 탈출하는 길을 알려주지. 소녀를 향한 그 노장 어른의 가르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숀 코너리가 70대인가 80대인가 그의 말년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한다.
흐음.. 아내와 나는 우리가 사실은 3살이라는데 서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어요.
그 소녀와 그 소년이 서로의 화를 상대에게 표출할 때, 부부싸움은 가장 강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폭발한다. 어떤 문제에 대한 입장차이로서의 문제 해결을 위한 싸움이 아닌, 그들이 각자 등 뒤에 짊어지고 있는 그동안의 역사와 감정들이 고구마줄기처럼 다 끄집어 매달려 나오는 질척한 진흙탕 감정 싸움이다. 이는 어른들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세살 어린 아이들의 싸움에 가깝다는데서 숀 코너리의 말은 매우 정확하다.
그 소녀가 느꼈던 그동안 그 요란한 소동과 많은 말들 중, 가장 의미있고 효과적일 수 있었던, 표현되었어야 할 유일한 단순한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갑자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세살 막내가 까불까불 뛰다가 책상 다리에 콩 머리를 부딪히고 앉아서 아앙 울음을 터뜨린다. 책상 다리가 그랬어. 아앙 머리 아파~ 아앙~
그러자 엄마는 달려와 사실 아기가 서툰 걸음으로 책상에 머리를 갖다 댔다는 걸 알지만 아가 보라는 듯 책상 다리를 손으로 딱 때리며 말한다. 이 나쁜 책상다리같으니! 우리 아가 머리 아프게 했어 응? 우리 이쁜 아가 머리가 이 책상 다리 땜에 아팠어?? 응? 엄마가 혼내줄께 이 나쁜 책상다리! 책상다리나빠
아가는 그런 엄마 모습에 위안을 받고, 머리 아픈게 살짝 가시자 일어나서는 장난감을 집으러 가던 길 간다. 다음 번에는 저 책상 다리를 피해야겠노라고 생각할지, 후에 경험으로 알게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몇년 후에는 책상다리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책상다리가 자기를 때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만은 분명하다.
그 수많게 떠올랐던 감정들과 소녀의 과거들과 인물들과 많은 말들 중에서 정작 섬세하게 표현되었어야만 했던, 의미있는 단순한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난 내 편이었으면 바라는 당신이, 나를 소중하게 지켜줬으면 하는 당신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 슬퍼. 그럴때면 나 혼자 남겨져서 이 세상 아무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너무 슬퍼. 내 얘기 좀 자세히 들어주면 좋겠어.
그 외의 모든 다른 것들은, 모두 노장의 도움으로 소녀가 하나씩 해결해나가면 될 것들이다. 굳이 그 소녀와 똑같이 힘들고 연약하고 서툴게 분명한 그 소년을 붙들고 늘어질 성질의 것들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그 소녀는 자신의 마음을 구석구석 이해하고 살피고 공감했다. 그리고 자신이 진짜로 원했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냈다. 그리고 깊게 공감하나, 동의할 수는 없었던 멘토인 새로운 보호자를 만나, 이제는 그만 포기해야 할 것과 앞으로 노력하여 쟁취해야 할 것들을 분별하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목표가 정해지면 이제는 서투른 총질이 아닌 효과적이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은 그 소녀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그 소년의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부드럽게 물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해본다. 이제야 자신만큼 힘들고 찬란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소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소동과 난동, 그리고 이 난리를 진압하는 내면아이와 내면어른이 벌이는 하나의 드라마를 보며, 나는 또다른 질문을 품는다.
내 안의 캐릭터들.
이들의 대화를 보고 듣고 공감하고 체험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그 소녀도 아니고 그 노장도 아닌, 이들의 대화를 쭉 지켜보며 직접 체험하며 공감한 나는 누구일까. 이 한 편의 드라마를 쭉 감상한 '나' 는 누구인가. 아직은 흐릿하지만, 이전보다는 조금은 더 명확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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