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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런 거 혼자 할 나이야

by 반고

12월에 군대에 간 준호는 6월에 제대한다. 군 생활이 절반을 넘어가자 계획형인 아들은 복무를 마친 후 어떻게 지낼 것인지 고민했다. 2학년 1학기로 복학하고 싶은데 전역하면 2학기가 시작되는 게 문제였다. 1학기 때 수업을 듣고 2학기에 이어서 듣는 전공 연계 과목이 많아서, 자신은 들을 게 없다고 했다. 졸업학점에 필요한 교양 수업을 왕창 신청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오랜만에 학업을 재개하며 전공과목을 아예 듣지 않는 것은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들은 배낭여행을 갈까, 아르바이트할까 궁리하다가 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해 보겠다고 했다. 내 눈에도 세 가지 중 가장 괜찮은 계획 같았다. 군에서 나오자마자 배낭여행을 떠나면 너무 오랫동안 긴장을 풀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고 목돈을 모으려는 계획이라서 부상의 위험도 있었다. 한 학기 동안 미국에서 지내면 공부, 여행, 문화 체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을 터였다.

목표는 근사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고달팠다. 섬에서 근무하는 준호는 종일 국방의 의무를 하고 밤에는 영어 공부를 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여 화상 인터뷰 일정이 잡히자 상사의 허락을 받고 부대에서 휴대전화로 면접을 치렀다. 개인 컴퓨터도 없고, 공부할 여건도 열악하고, 시험 응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아들은 토플 시험을 보고, 서류를 작성하고, 온라인 면접을 통과하여 원하는 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최대한 원격으로 교환학생 선발 준비를 하던 아들이 얼마 전 집에 다녀갔다. 학교에서 교환학생 선발 대상자를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고 하여 휴가를 나온 것이다. 혼자 외국에 나가는 것은 처음이라 노파심에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준호야, 너 미국 갈 때 도움이 필요하면 엄마도 며칠 같이 갈까?”

“에~이~아니야. 이제 그런 거 혼자 할 나이야.”

내가 말을 꺼내긴 했지만, 준호가 단번에 거절해서 안도했다. 올해는 은호가 고등학교 3학년이라 내가 챙겨줄 게 많다. 왕복 비행기표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내가 쓸 교통비를 준호가 체류비로 쓰는 게 나을 것이다. 혼자 부딪히며 정착하는 경험도 교환학생 시기에 얻을 수 있는 값진 추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온 아들은 미국 학교에 보낼 서류를 챙겼다. 해외에서 입국하는 학생에게 요구하는 건강검진 서류를 작성하느라 준호는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접종 기록을 순서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특이하게 그 양식은 뇌척수막염과 관련해서 접종 날짜뿐만 아니라, 어떤 브랜드의 백신인지 이름까지 기록하게 되어있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지 못한 아들은 혹시 집에 자료가 남아있는지 물었다. 나는 ‘준호 은호 학교 관련’이라고 쓰여 있는 서류철을 꺼내 왔다. 서류철에 있는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보았는데 역시나 거기도 백신 이름은 공란이었다.

필요한 정보를 찾지 못했지만, 준호는 조금만 더 서류를 훑어보고 싶다고 했다. 학년별 건강검진,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학습전략검사 등의 기록지를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이런 게 다 나오네. 엄마가 다 보관한 줄 몰랐네.”

서류를 다시 꺼내 볼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도, 왠지 모아두어야 할 것 같았다. 자녀들이 집 이외에 다른 거처로 옮길 때 자기 물건을 다 가져가는 게 아니다. 꼭 필요한 것, 당장 쓸 것만 챙기고, 너무 아끼는 것이나 추억이 깃들어 버릴 수 없는 물건은 두고 간다. 중요도가 떨어져 보관과 처분을 고민조차 하지 않는 물건도 남겨지지만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자녀의 물건을 맡아두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는 것도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다. 아이들의 아카이빙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셈이다.


서류를 정리한 후 준호와 나는 체류비가 어느 정도 들지 계산해 보았다. 아들이 신청한 프로그램은 한국 학교에 등록금을 내고 수업료가 더 비싼 미국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니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업료 가성비가 좋아도 생활비는 한국보다 훨씬 많이 들어 경제적인 뒷받침이 더 필요하다. 선발되기만 하면 정말 좋겠다던 아들은 눈앞에 쓰인 숫자를 보더니 이런 목돈을 쓰면서 떠나는 게 맞나 싶다고 하였다. 군복무하며 모은 장병내일 준비적금에서 보태겠다고도 했다. 배낭여행은 저비용으로 경험을 쌓는 것이고 아르바이트는 돈을 버는 것이라면 해외 교환학생으로 가는 것은 돈을 써야 하는 활동이다. 너무 부담스러워서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던 준호에게 말했다.

“네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하고, 부모님과 같이 해야 할 것은 같이 하는 게 가족이야. 교환학생으로 뽑히는 과정은 혼자 힘으로 준비했으니, 해외 체류에 필요한 비용은 아빠 엄마가 준비할게.”

그렇게 준호는 제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떠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아들은 대전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가 포항과 경산을 거쳐 연평도에서 군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한 달 뒤에 미국으로 떠났다. 이러니 은호가 간간히 “나 형 얼굴을 별로 못 본 거 같아”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떠났다 잠깐 왔다 또 떠나는 아들을 둔 덕에, 오래 떨어져 있다가 가끔 만나는 일상에 빨리 적응하게 되었다. 나도 이런 관계에 더욱 익숙해져간다. 자녀 양육은 독립으로 이어진다. 도움 요청 신호가 오면 딱 그만큼만 교신하고 평소에는 안테나를 굳이 세워두지 않아도 되는 날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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