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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진정이 안 된다고?

by 반고

1년 6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준호가 집에 왔다. 아들이 섬을 떠나던 날 이런 문자를 받았다.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연평도에서 떠나요. 배 탑승해서 가고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서 만나요. 떠나려니까 시원섭섭하네요!! 조금 이따 만나요!!”

인천항으로 이동하며 연락을 준 것이다. 육지에 도착한 후에도 광명역으로 이동해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와야 한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고 했으니 3~4시는 되어야 볼 것 같았다.

대전역에서 준호를 만나기로 했다. 대전역 서광장에는 전역 기념 포토존이 있다. 노란색 동그라미 표시에 서면 머리 위로 대전역이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이때 머리로 ‘대’라는 글자를 가리면 ‘전역’만 남는다. 전역한 날, 군인들이 대전역에 와서 사진을 찍고 성심당 빵을 사서 돌아가는 게 유행이라며 준호가 알려주었다. 전역 사진도 남길 겸 내가 대전역으로 마중 가겠다고 했더니 아들이 “저야 너무 좋죠.”라고 반가워했다. 밝은 모습으로 집에 온 준호는 가방을 열어 가족들에게 기념품을 전해 주고 동기들이랑 맞교환한 명찰을 꺼내 보였다. 보여 준 짐 중에 병사들이 남긴 작별 인사가 안감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군복이 있었다. “이거 빨아도 돼?”라고 물었더니 바로 답이 돌아왔다. “아니, 빨지 않을 거야.” 어렴풋이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힘든 시기에 동고동락했지만, 군대를 떠나면 일상으로 돌아가 얼굴 보기 어려울 테고, 그때를 추억하며 간직하고 싶은 물품이라는 걸.

저녁이 되어 오랜만에 준호와 밥을 먹었다. 식사하던 아들이 갑자기 안경을 벗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기 시작했다. 어깨를 들썩거릴 정도로 흐느끼며 “나 왜 이러지?”라고 물었다.

내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그간 말하지 못한 서러움이 폭발한 걸까? 드디어 끝났다는 시원섭섭함일까? 휴지로 얼굴을 닦던 아들은 그걸로는 안 되겠는지 화장실로 향했다. 추스르고 돌아온 준호는 밥을 먹을 것처럼 의자를 당겨 앉더니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까지 진정이 안 된다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어떻게든 눈물을 참아보려는 아들을 보니 나도 울음이 났다. 나는 준호 곁으로 가서 등을 쓸어주었다.

“괜찮아. 울어도 돼. 눈물이 나면 울어야지. 맘껏 울어.”

“흐어엉, 흑흑. 한 명 한 명 얼굴이 아른거려.”

한방을 쓰며 모든 걸 공유하던 군대 동기들을 말하는 거였다.

“생각나는 게 당연하지. 부대에서 계속 같이 지내고, 벙커에 들어가서 대피 훈련하고, 서로를 지켜주던 사이인데, 아른거릴 수밖에.”

이쯤 되니 밥보다 마음이 먼저였다. 준호가 괜찮아지길 기다리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퇴근하자마자 마주한 광경을 보고 남편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니, 너, 울어? 왜?” 내가 그만하라는 눈치를 보내자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며 준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들은 저녁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손꼽아 기다리던 제대라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복잡한 마음이었던 거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준호가 어제의 일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생각해 봤는데, 이유를 알 것 같아. 내가 휴가를 모아서 전역일보다 한 달 일찍 나왔잖아. 휴가 갔다가 다시 복귀할 사람들과 섞여 나오다 보니까 나도 휴가자의 마음이었던 거 같아. “나 간다. 잘 있어라.” 그러고 나왔거든. 다시 연평도에 갈 것도 아니고,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정들었던 사람들하고 인사를 충분히 나누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나 봐. 안 그래도 근무 설 사람이 늘 부족했는데, 이젠 나도 없으니 남은 사람들은 고생이 더 많겠지.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몸은 떠나왔는데 마음은 아직 작별한 준비가 덜 되었던 것 같아.”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헤어짐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야.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다들 제대한 후에 만나고 싶으면 연락해서 얼굴 보면 되지.”

긍정의 미소를 짓는 아들에게 나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

“준호야, 그거 알아? 너, 어제 강아지 인형 안고 자던데.”

“그래? 몰랐네. 오랜만에 내 침대에서 자니까 푹 잤어. 인형이 얼마나 폭신하고 부드러운데. 다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거야.”

나는 하룻저녁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인형을 안고 자는 걸 숨기지 않는 그가 보기 좋았다. 해병, 남자, 성인 등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기대를 벗어던지고 펑펑 울 수 있는 건강한 심성을 가진 청년이라서 고마웠다.

준호는 어제 집에 잘 도착했다고 부대장님께 문자를 보냈고 잤는데, 답이 왔다며 휴대전화를 건넸다. 엄마한테 전하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특별히 보여주는 거라고 했다.

‘훌륭한 아들을 해병대에 보내주신 부모님께 꼭 감사 인사를 전하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아들이 상관에게 보낸 문자도 살짝 보았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 훌륭한 해병대장님의 대원으로 지내면서 많이 배웠다”라고 쓰여 있었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대학과 기숙사 생활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난 사회생활의 일종이지만 군대는 엄격한 규율과 엄한 분위기에서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닌 해병대였다. 준호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내게 말해주진 않겠지만, 아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알아채게 될 것이다. 섬 생활을 훌륭히 마친 준호에게 내가 배울 게 생기는 날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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