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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면 걱정할 것 같아서

by 반고

준호가 훈련소로 떠난 후, 해병대 가족을 위한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다. 병사에게 함부로 소포를 보내면 안 된다는 안내가 있었다. 과자, 음료, 껌은 불필요 물품이라 보낼 수 없고, 커터칼, 가위는 날카로운 물건이라 안 되며, 장신구, 전기제품도 반입 금지였다. 특히 훈련소에는 책, 신문같이 인쇄 매체를 들여올 수 없어서 군인을 응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손편지라는 글이 많았다. 나는 틈틈이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토요일이면 준호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이번 주도 편지를 잘 받았다는 인사로 대화를 시작했다. 특별한 뉴스랄 것도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적어 보냈기에 이런 내용이 아들의 관심사이기나 할지 궁금했다. 한 번은 직접 물어보았다.

“준호야, 편지에 별 내용이 없잖아. 그래도 편지 받으면 도움이 돼?”

“여기선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소식을 알기가 어려운데 편지로 그런 걸 접하게 되니까. 훈련 교본 이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문화생활이에요.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 가족 이야기가 있으니까 힘이 나지.”


아들 말로는 누군가 편지를 받으면 생활반 동기들끼리 돌려가며 읽는다고 했다. 다 읽은 편지를 내려놓고 다음 걸 읽고 있으면 동기들이 “읽어봐도 돼?” 하고 물어본다고. 편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돌려봐도 좋다고 했단다. 금지 품목을 보냈다가 병사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나는 편지만 보냈는데, 그 와중에 젤리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동기의 여자친구가 뛰어난 정보력을 발휘한 덕분이라고 했다.

“난 몰랐는데 박카스 젤리라고 약국에서 파는 게 있더라고. 그게 비타민 계열로 분류되어 반입할 수 있는 거래요. 여기는 물자가 귀하니까. 편지가 많은 사람은 돌려보고, 젤리를 받은 사람은 좀 나눠주고 그런 거지.”

나는 아들이 포항에서 신병 교육을 받을 때, 경산에서 특기병 교육을 받을 때, 그리고 근무지인 연평도에 있을 때 한 번씩 다녀왔다. 연평도에 간 때는 군 생활이 절반을 넘긴 시점이었다. 아들이 있는 부대는 방문객이 찾아온 병사에게 방문자 숙소에서 면회 외박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전부터 전화로 면회하러 가겠다고 말했었는데 준호는 그때마다 괜찮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다 휴가 나왔을 때 솔직한 마음을 물어보았다.

“우리가 연평도에 가면 불편한 일이 있니? 방문객이 있으면 훈련에 방해가 된다거나, 네가 면회 외박을 나가면 동료에게 피해가 간다거나, 무슨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하더라.”

“그런 거 전혀 아니에요. 부대 밖에서 가족들 얼굴 보고 펜션에서 맛있는 것 먹으면 나도 좋지. 그런데 거기는 수시로 사이렌이 울리고, 상상한 것보다 긴장이 감도는 곳이야. 부모님이 직접 보면 걱정할 것 같아서 오시지 말라고 한 거예요.”

나는 그런 이유라면 괜찮다고 했다. 연평도 분위기에 걱정이 늘어도 그건 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준호는 가족의 응원을 받고 싶을 때 요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배려심 있고 신중한 아들은 달력을 잘 살피더니 9월의 어느 주말을 골랐다. 방금까지 엄마 아빠를 걱정하던 준호는 두 달 뒤에 자신을 보러 간다고 했더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9월이 되어 배표를 샀다. 처음에는 남편과 함께 가려고 했는데, 섬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으면 제시간에 육지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2박 일정으로 가면서 혹시 모를 악천후에 대비해 총 4일의 시간을 비웠다. 그만큼 시간을 낼 수 없는 남편은 망설이다 가지 않기로 했다. 인천항에서 출발한 배는 두 시간을 달려 대연평에 도착했다. 혼자 섬에 들어간다는 게 긴장이 되었던지 부두에서부터 배가 아프더니 움직이는 배에서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나는 중년이 되어 처음으로 이런 낯선 경험을 하는데, 함께 승선한 군인들은 이미 20대에 배로 근무지를 오가는 생활을 감당하고 있었다. 새삼 이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선착장에서 만난 준호는 짐을 들어주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저도 휴가 갈 때 엄마가 방금 온대로 이것저것 타고 집에 가봤잖아. 쉽지 않은 여정이지.”

면박 동안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단체생활에서 벗어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쉬다가 부대에 복귀하는 게 계획이었다. 연평도가 처음인 사람과 부대 밖을 자유롭게 다닐 기회가 없던 사람이 차를 빌려 돌아보기로 했다. 방향, 지형 등 큰 그림에 관심이 많은 준호는 가는 곳마다 “이 길이 여기로 연결되는구나~”하며 신기해했다.

연평도의 주요 볼거리는 안보 관련 시설과 자연경관이다. 바닷가, 함상 공원, 전망대, 충혼탑, 안보 교육장을 방문하고 중간중간 카페, 식당, 도서관에 들어가 더위를 피했다. 입장료를 받는 큰 규모의 관광지는 없지만, 여기저기 부지런히 다녔다. 운전대에 앉은 아들은 “너무 좋다. 차를 빌린 건 신의 한 수였어요.”라고 말했다.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여가생활이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준호는 자기가 경험한 군대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했다. 각종 장치나 원리에 관한 설명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평소의 나는 낯선 용어를 되물었을 텐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나의 궁금함을 채워주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누군가와 마음 편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이것저것 설명을 마친 준호가 말했다. “가끔, 이런 스몰 토크가 그리워. 군대에서는 모든 게 조심스러워서.” 나는 아들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게 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를 마치며 지금까지 군 생활에서 제일 힘든 게 뭐였냐고 물어보았다. 늘 지낼만하다던 아들이건만 “엄마가 걱정할까 봐 전화로는 전하지 않았는데, 사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부대 보일러 고장으로 두 달 동안 찬물로 샤워했어요. 진짜 싫었어.”

“어머, 완전 고욕이었겠다! 보일러가 얼마나 하이테크 시설이라고 고치는 데 두 달이나 걸려?”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안도했다. 시설의 열악함은 무척 짜증 나는 일이지만, 상처가 남지 않는 불편이다. 부모들의 진짜 염려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분단국가의 위험과 함께 지내는 사람으로 인해 정신과 신체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사실…’로 시작한 것 치고는 수위가 높지 않아 아들이 군대에서 잘 지내고 있구나 싶었다.


남은 군 생활도 잘하라고 응원을 건네고 돌아오는 배에서 생각해 봤다. 아들과 단둘이 2박 3일을 지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가족여행을 간 적은 있어도 준호와 나만 집이 아닌 공간에 같이 머무른 기억은 없었다. 진짜 그런가? 하고 세월을 되짚어보다가 딱 한 번 있었다는 걸 찾아냈다. 준호를 출산하고 병원에서 보낸 며칠이었다. 2004년도에 태어난 아들을 보러 2024년에 면박을 다녀왔으니 딱 20년 만이었다. 그 사이 아기는 훌쩍 자라 부모를 걱정하는 배려심 많은 청년이 되었고, 나는 준호를 양육한 경험을 바탕으로 둘째를 키우는데 더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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