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후, 준호는 오랜만에 여유를 만끽했다. 테니스를 치거나 친구를 만나고, 출국 준비를 했다. 어느 날, 수송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준호가 나를 대신하여 은호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은호를 대하는 방식이 참 멋지다고 생각해. 난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아. 자식이 하고 싶은 걸 하게 지원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거든.”
은호의 형으로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은호를 잘 아는 제삼자 입장에서 하는 말 같았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준호 역시 은호와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는 준호의 경험담이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두 분이 원하는 걸 하라고 하지 않고 자식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도전할 수 있게 지원하는 분들이야.”
나는 준호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궁금해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다고 말했다.
“테니스 코트에서 만나는 중년 회원들이 종종 나한테 이런 말을 하거든. ‘스무 살 때부터 배웠으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나는 거기에 오는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해. 나도 쟤들처럼 어릴 때부터 했으면 지금 기량이 최고일 텐데라고 말이야. 내 눈에 신동처럼 보이는 그 꼬마들은 테니스를 좋아하는 부모님이 끌고 온 거거든. 그런데 부모님이 안 계실 때 보면 난리도 아니야. 하고 싶어서 온 게 아니고 누가 시켜서 온 거니까. 그런 현실을 똑똑히 보았는데도, 내가 ‘나중에 자식 생기면 꼭 테니스 가르쳐야지. 조기 교육 시켜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순간 ‘이거 되게 위험한 생각인데’ 싶었어. 난 아직 부모도 아니고 누굴 키울 깜도 안되는데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거를 자식한테 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거야.”
나는 아들의 교육철학을 듣는 게 신선했다. 이런 맥락이 은호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궁금했다.
“네가 보기엔 아빠 엄마가 은호를 어떻게 키웠다고 생각하는데?”
준호는 잠시 생각하다 말문을 열었다.
“좋아하는 걸 하게 해 줬지. 열심히 했는데도 잘 안되면, 다른 걸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었고 내가 자전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랬잖아. 하고 싶은 만큼 해 보고 돌아와도 된다고. 내가 운동을 계속하진 않았지만, 그 경험이 나한테 소중한 재산이 되었어. 극한 상황까지 나를 몰아붙이며 몸을 쓰는 일이 살면서 몇 번 없는 거더라고. 해병대에서 힘들 때도 사이클 하던 때를 생각하며 버텼어. 내가 중학생일 때는 엄마 아빠가 특별한 거라는 생각 못했는데, 요즘 은호를 보면서 더 많이 느껴. 내 친구들도 은호를 아니까 동생 고3인데 잘 버티고 있냐고 종종 묻거든. 그럼 내가 은호는 수능 안 보고 취업한다고 말해줘. 다들 깜짝 놀라지. 은호가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 엄마도 분명히 그런 걸 느꼈을 텐데, 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응원한 거잖아? 내가 자전거를 미친 듯이 타 보았듯이 은호도 하고 싶은 프로그래밍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해주었잖아. 직업계 학교냐 아니냐는 두 번째 문제로 두고. 아빠 엄마가 은호에게 나중에 대학에 가고 싶으면 차차 준비해서 가면 된다고 말해주던 기억이 나.”
준호의 말을 듣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 나는 양육 과정과 철학에 대한 평가를 성인이 된 당사자에게 듣고 있다. 아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고 했다. 하나는 스스로 잘 해내는 경우, 다른 하나는 부모님 말을 잘 따른 덕분에 잘하는 경우라고 하였다.
“스스로 잘하는 애들은 끝까지 잘하는데, 부모가 하라는 걸 잘 따라오던 애들은 대박 엇나가는 경우가 있어. 본인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은 거지. 그래서 뒤늦게 탐색하느라고 한참 공부해야 할 때 이탈하더라고. 내 생각에는 하고 싶은 걸 하는 애들이 더 크게 되고 풍성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대학에 와서도 공부 손 놓는 친구들 있는데, 보면 다 시켜서 공부해서 대학에 온 애들이야.”
준호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에 간 이후에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자녀를 양육하는 다른 부모들과 나눌법한 이야기를 아들과 나누고 있다니 준호가 정말 다 컸구나 싶었다. 자신의 학창 시절과 다른 경험을 쌓은 은호를 보며 준호도 많은 생각을 한 거였다.
“은호는 일반 고등학교에 갔어도 엄청 잘했을 학생이거든. 똘똘하게 자기 앞가림을 했을 녀석이야. 그런데 내 아이가 더 안정적인? 보편적인? 조직에서 성공할 기미가 보이는데 그걸 알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해주는 거, 특히 아빠 엄마는 가보지도 않은 길을 가도 된다고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인 거 같아.”
나를 아주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 이런 말을 해주다니, 감동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봤어. 엄마 아빠는 왜 남들과 다르게 자녀를 키울 수 있나? 엄마 아빠도 다 한국에서 학교 다녔고, 기성세대고, 자녀가 잘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을 텐데. 두 분은 원하는 걸 이뤄본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부모인 내가 못한 걸 자식에게 투영해야지 하지 않은 것, 혹은 엄마 아빠의 자식답게 이만큼은 해줘야지 하지 않고 우리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한 것이 은호와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생각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넘어 가족 모두가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건강하다고 느낀다는 게 핵심이었다. 자아를 인정하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의 밑바탕임을 다시 느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준호는 어디에서든 당당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부모가 열린 태도로 자녀를 양육해도 모두가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시기 매 순간 개인에게 맞춤한 대응과 기다림이 어렵고 고달팠지만 보람과 기쁨을 주었다. 여전히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제는 일방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동등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니 진짜 인생의 동반자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