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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Nov 17. 2024

뒤늦게 찾아온 빈 둥지 증후군

준호가 휴가를 마치고 군대로 돌아갔다. 주중에는 남편과 둘이, 주말에는 은호와 셋이 지내다 네 명이 한집에 있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아들의 휴가 동안 주말이 한 번 껴 있었다. 은호가 금요일 밤에 기숙사에서 돌아오니 토, 일 동안 여섯 번의 식사를 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 두었는데, 생각보다 가족끼리 무언가를 같이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넷이 밥을 먹은 것은 한 번뿐이었다. 고작 한 끼라니.


우선 은호가 하루 늦게 왔다. 형의 휴가 일정을 전해 듣고 그 주말에는 집에 오겠노라고 했지만, 자신이 기획한 학생회 행사가 토요일에 있어서 저녁에 올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준호, 남편, 나는 토요일 아침 시부모님을 뵈러 서울에 갔다. 남편과 나는 먼저 집에 오고, 아들은 친구를 만나고 늦게 왔다. 은호가 초저녁에 집에 오긴 했지만 준호가 없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일주일에 한 번 늦잠 자는 은호를 깨우지 않았고, 점심에는 남편이 외출하여 집에 없었다. 일요일 저녁때가 되어서야 넷이 한자리에서 식사하고 그 길로 은호를 기숙사에 바래다주었다. 6개월 만에 온 가족이 한차에 타서 어딘가로 이동한 거였다.      


그날 밤 준호와 나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아들이 군대에 있는 동안 우리가 이사해서 이 지역을 잘 알지 못하는 준호는 새로 정착한 동네가 지낼만하냐고 물었다. 좋은 점도 있지만 만일 또 이사하게 되면 아빠 회사 근처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었더니, 준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두 분 편한 대로 하면 되지요. 저 이제 대전 사람 아니에요. 복학하면 어디서 살아야 할지 벌써 고민하는걸요.”     


첫째가 다른 도시의 대학으로, 둘째가 기숙사 고등학교로 떠난 지 두 해가 지났으니, 빈 둥지 생활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잘 지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번에 아들들이 다녀간 후에는 여파가 있었다. 준호가 대전은 자기가 사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였기 때문인지 마음 한쪽이 텅 빈 것 같았다. 나보다 먼저 빈 둥지를 겪은 지인에게 설명했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 아들은 대학생이 되더니 기숙사를 우리 집이라고 부르고, 여기 집을 본가라고 부르더라고요.”

독립하기 전까지 부모와 살았었던 집이나 부모님이 현재 사는 집을 본가라고 하므로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독립했다고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집에서 지내지 않는 것도 물리적인 결별을 뜻하니 독립이 틀린 말도 아니다.

중학생 때부터 언니와 자취한 다른 지인은 그때부터 본인이 사는 집은 내 집, 다른 가족들이 있는 고향 집은 엄마 집으로 부른다고 했다.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라고 믿는 남편은 덤덤하게 말했다.

“앞으로 다 같이 모이는 게 더 어려울 거야. 명절에나 보는 거지.”

나와 자녀들의 거처가 달라지고 함께하는 활동이 준다고 생각하니 한 번의 만남이 소중했다. 아이들이 우리 집을 방문할 때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다. 준호 은호가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고, 있는 동안 편하게 쉴 수 있고, 몸과 마음을 채워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 중이다.


Photo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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