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하지 않은 이유 (3)
결혼식에는 참 많이 다녔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상대방과의 사이가 가깝고 멀고 자시고, 내게 청첩장을 준다면 오직 그 이유만으로라도 식장에 가서 얼굴을 보고 결혼을 축하해줬었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자리에 나를 초대해주었다는 사실이 마음 속 깊이 감사했기에 다소 귀찮은 경우가 있더라도 최대한 참석을 하려고 노력했다. ‘청첩장=참석’은 결혼식에 대한 내 원칙이었다. 나는 프로참석러였다. (예의상 준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런 사소한 건 무시하도록 하자.)
결혼식에 대한 개인적이 원칙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축의금에 대한 것이었다. 축의를 한다면, 무조건 10만원이었다. 직접 참석하건, 카톡으로 보내건 상관 없었다. 20년지기 절친이든, 2달 전에 안 직장 동료든 상관 없었다. 나와의 친함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액수에 결혼을 축하하는 내 진심을 더 잘 느낄 거라고 생각했고, 나와 친한 사람은 축의를 무조건 10만원씩 하는 내 원칙을 알고 있을 것이기에 섭섭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축의는 늘 고정이었다. (친하기만 하고 내 축의금 스타일은 모르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이 역시 무시하도록 하자.)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이 두 가지 원칙 때문에, 사방팔방 뿌려놓은 게 참 많기도 많았다.
뿌려놓은 게 많은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농사꾼 집안인 것 마냥, 대대로 뿌린 게 더께 쌓였다. 사람 만나는 직업을 가지신 우리 아빠와 엄마는, 자의반 타의반 통큰 축의를 하셔야 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던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 시장 장사꾼들끼리의 결속력이 좀 단단한가. 동네로 엮이고 직업으로 엮인 그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네 손자 손녀가 결혼한다더라 하면 흰 봉투를 쓱쓱 찔러넣으시던 할머니다.
그러니까 본전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할 때 말이다.
인기 : 그냥 알바하는 셈 치고 해. 그게 다 얼마야.
친구가 말했다.
축의금 장사.
회계적으로만 놓고 보면 그렇게도 부를 수 있다. 예전에야 품앗이 성격이 강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 얘기다. 웬만한 사람들은 웬만큼 사는 요즘, 대출이니 마이너스통장이니 빚 지는 게 손 쉬워진 지금, 축의는 품앗이라기보다 기브앤테이크 느낌이 더 강해진 게 사실이다. 그걸 좀 안 좋게 부르면 축의금 장사라고도 할 수 있는 거고.
친구도 그런 시각이었을 거다. 잠깐 단기 알바하는 셈 치면, 페이가 쏠쏠한 일자리니까. 그간 뿌려놓은 게 많으면 많을수록.
나 역시 일면 공감가는 바가 없지 않았다. 들어오는 게 들어가는 것보다는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규모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민들레보다 많은 씨앗을 뿌려놓으신 부모님과 할머니 덕이 있으니, 어쨌든 수입이 비용보다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상황을 생각하면, 더 혹한다. 빌어먹을 공무원인 탓에 부수입의 길이 꽁꽁 막혀있기 때문이다. 배민 라이더도 못 하고, 블로거도 유튜버도 못 하고, 에어비앤비도 못 한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닌데, 겸직 금지가 아주 철저하다.
그렇다면 정말로, 잠시잠깐 일한다 생각하고 결혼식을 할까? 돈 버는 기회는 굉장히 드무니까, 이건 잡아야 하나? 그럴까?
두팔 : 에이, 굳이.
내 대답이었다.
결혼식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다시 말하자면,
첫째, 폐 끼치기 싫어서다. 남들, 그냥 남들도 아니고 내게 가장 귀한 사람들. 일생에 한 번 뿐일 내 결혼식에 초대할만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런 소중한 이들의 시간, 그냥 시간도 아니고 주중에 뼈빠지게 일하다가 간신히 쉴 수 있는 그 황금 같은 주말 시간. 내 소중한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라고 강제하는 것이 싫었다. 오며 가며 길거리에 돈과 시간을 뿌리고, 거울 앞에서의 치장에 힘을 쓰게 하고. 이게 다 뭔 짓인가 싶었다.
둘째, 할 이유가 없어서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고, 내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다 하는 모양의 행사를 치러야한다는 건, 그다지 명쾌하게 이해될 수 없는 얘기였다. 관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형태의 이벤트들. 내게 결혼식은 공장식 허례허식에 다름 아니었다.
생각건대 ’단기 알바‘로서의 가치는 이 둘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어차피 돈 몇 천만원 쯤, 인생 100년 놓고 보면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 없다. 한우 먹을 거 호주산 먹으면 되지, 그랜저 탈 거 아반떼 타면 되지. 그 약간의 불편함이 싫어서, 할 이유가 없는 행사를 남에게 폐를 끼쳐가면서까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그런 이유로 결혼식을 하는 건, 결혼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반려자로 삼아 평생을 같이 하자고 나와 상대방을 단단히 묶는 것이 결혼일진대, 그 신성한 행위를 알바인 셈 친다니. 돈이 뭐라고.
내 결혼은 축의금 장사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노웨딩결혼을 망설이게 만든 것은 돈 문제가 아니라 가치적인 문제였다. 그동안 해왔던 축의금과 그에 따른 본전 생각은, 그야말로 찰나만큼 스쳐지나간 것에 불과했다. 마음에 걸렸던 건 부모님과 할머니의 잔치 자리를 내 손으로 엎는 것 같은 죄책감이었다. 알바하는 셈 치고 결혼식을 하라는 얘기는 별로 고민도 되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결혼식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를 뛰어넘을 만큼 강력한 것은 못 되었다.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우리라는 생각, 우리 가족들은 나를 믿고 지지해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두팔 : 우리가 결혼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 때도 결혼은 안 할 거에요?
두둘 : 지금 상태 그대로? 그니까 결혼식을 안 한 장점이나 단점이나 이런 걸 다 아는 상태에서?
두팔 : 네
두둘 : 음, 나, 뭐, 해도 상관은 없는데, 아냐, 그래도 안 할 거 같아요. 굳이 결혼식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오빠도 그렇죠?
두팔 : 맞아요. 나도 다시 돌아가도 안 할 거에요.
두둘 : 히히, 그래요. 우리가 만났으면 그걸로 됐잖아요.
고백하건대 노웨딩에 대한 결심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고, 한 두 가지에 대해서만 단편적으로 생각하며 결정된 것도 아니었다. 끝까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여러 요소들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요모조모 따져가며 비교형량해가며 신중하게 정한 결과였다.
따지고 보면, 잘 한 것 같다. 다시 돌아가도 결혼식은 안 할래? 하는 질문에, 우리의 대답은 ‘예스‘다. 결혼식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오히려 더 불편했던 점들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선택에 후회는 없다. 아내의 말처럼 우리는 만났고, 우리는 우리가 바르다고 생각한 길을 걸었다.
BEHIND : 두둘의 이야기
두팔이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두팔이의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어요. 거기서 그러더라고요. 혹시 두팔이의 고집을 못 이겨서 결혼식을 못 한거냐고요. 저는 웃음부터 났어요. 두팔이 친구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저는 결혼식을 그렇게 안 좋게 보지는 않았어요. 친구들 결혼할 때 보면 확실히 예쁘기도 했고, 화사한 예식장도 많았고, 축가나 이벤트들이 재미있는 결혼식도 있었거든요. 두팔이처럼 하객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거나, 쓸데없는 허례허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두팔이를 위해 변명을 하자면, 두팔이가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을 막 안 좋게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두팔이의 얘기는 본인의 결혼식을 고민할 때 그런 부분들을 많이 생각했다는 뜻이에요! 친구들 결혼식에 가서 얼마나 웃고 울고 잘 하는데요.)
하지만 저도 결혼식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마침 운좋게 두팔이와 뜻이 맞았던 거죠. 가장 큰 이유는 제 성격이었어요. 남들 앞에 서서 식을 올리는 것도 너무 부끄럽고, 긴장을 하다가 발목이라도 꺾이면 어떡하지 걱정도 했어요. 남들이 저를 보면 왠지 긴장이 되어서 평소에 잘 하던 것도 못해지거든요. 우는 것도 그래요. 친구들 결혼식에서도 오열할 정도로 잘 울어서, 아빠와 식장에 입장하면 입장할 때부터 아빠가 신랑에게 손을 넘겨줄 때까지 계속 펑펑 울 것 같았어요. 남들 앞에서 울음이 터질 거라는 게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괴로운 일이던지요.
두팔이 친구들이 두팔이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저도 한 고집 하거든요. 가족들도 제가 고집이 세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결혼식을 안 하고 싶다고 했을 때 크게 반대는 못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식을 왜 안했는지가 뭐가 중요한가요. 누구랑 했는지가 제일 중요하지! 저는 결혼에 대성공한 사람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