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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20. 2023

라면은 오백 원, 결혼식은 0원

결혼식을 하지 않은 이유 (2)

최근에 우연찮게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도의 결혼식을 보았다. 우리의 풍습과는 꽤 다른 그 모습이 자못 흥미로웠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단연 스케일이었다. 발리우드의 나라답게 결혼식 내내 춤이 이어지는데, 공간적으로는 온 마을이, 시간적으로는 22시간(!), 그러니까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내내 이어진다. 신랑 신부의 치장과 행진, 친지의 축복과 세례도 함께다. 효율적인 웨딩홀의 스케줄 탓에, 앞타임과 뒤타임 사이에 껴서, 단체사진마저 후다닥 찍고, 뷔페식 피로연장을 신랑 신부가 펄럭 펄럭 돌아다니며 감사 인사를 갈음하는 우리네 결혼식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인도 결혼식을 담았던 예능 프로그램 방영 장면



넉넉지 않은 성장기를 겪은 것과는 별개로, 나는 스스로에게 돈을 잘 쓰지 못한다. 셔츠는 만 원이고, 안경은 이만 원이다. 애호박은 천 원이고, 라면은 오백 원이다. 이 기준을 넘는 돈을 쓰는 일은 드물다. 천성이 짜다.


좋은 점은, 원하지 않는 물건을 강매당하는 일은 없다는 거다. 나쁜 점은, 원하는 물건도 못 사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결혼식은 어떤가. 내가 원하는 것인가. 필요한 것인가 혹은 강제당하는 것인가. 나는 결혼식을 얼마만큼 하고 싶어하는가. 결혼식을 산다면, 얼마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결혼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고 결혼과 결혼식을 분리해서 생각하니, 결혼식을 하나 하나 따져볼 수 있게 되었다.


관련 글: 결혼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난 썰 <결혼식만 왔다 갔다 하면 하루가 다 가요>


물론 결혼을 함으로써 필요한 단계들은 있는 것 같다. 결혼의 당사자인 신랑 신부가 원하고 말고의 문제를 넘어선, 예컨대 (부모님이 계시다는 전제 하에) 상견례가 그렇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 내 새끼가 찾은 반려자의 부모님도 당연히 궁금할 거다. 그 가족들도 궁금할 거다. 그러니까 서로 볼 자리가 필요할 거고, 이건 마땅하고 당연하다.


그렇지만 결혼식 본식, 그리고 본식을 전후로 한 일련의 단계들도 그러한가.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마다 또는 상황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경우에 모든 차례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인도의 결혼식이 그렇다. 예능을 통해 본 인도의 결혼식은 온 마을 잔치였다. 그곳에서는 밤새, 며칠, 몇 십 시간, 그렇게 파티를 하는 게 평범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한국에서 그렇게 한다면 전혀 평범한 모양은 아닐 거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인도냐 한국이냐에 따라 '평범한 결혼식'이란 게 달라지는 거다.


한편 여기 한반도에 산다고 해서 다 똑같나. 이 역시 전혀 그렇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같은 공간에서도 결혼식의 모습은 달라진다. 예전, 사실 그렇게 예전도 아니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도 인도처럼 마을 잔치같은 결혼식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만 있는 함진아비 같은 게 그렇다. 아직 인도 결혼식에서는 함진아비 비스무리한게 보이긴 하더라만, 어쨌든 우리도 당시에는 온 동네가 떠나가라 함 사세요 함 사세요 소리를 질렀다. 마른 오징어 가면을 쓴 함진아비 앞에 흰 봉투를 쫙 깔아서 혼삿집까지 길을 내면, 함진아비는 봉투에 든 액수를 확인하며 나 못 가겠다고 주저앉기도 하고. 그렇게 흥정을 하며 시끌벅적 굴던 게 바로 여기 한국이었다. 우리도 그렇게들 결혼했다.


함진아비가 사라지듯, 주례도 소멸하는 모양새다. 예전에는 주례를 누구한테 부탁할지도 결혼식에서 꽤나 중요한 부분이었다. 주례를 없애는 건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다. 결혼식에 주례가 없다면 내심, 어 뭐지? 저 집은 주례해줄 사람도 없나? 하는 오해를 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비중이 아예 바뀌었다. 좀 과장하면, 요즘 누가 주례를 하나 싶다. 경조사 프로참석러인 내가 체감하기에는 열 집 중 한 집이 할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각박해진 세상 속, 함진아비는 소음공해를 만든다며 경범죄 신고를 당한다는 핑계라도 있지, 결혼식을 구성하는 일련의 예식들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주례는 또 왜 이렇게 급격히 없어지고 있을까. 어쩌면 결혼식의 형태는 사실 전혀 중요치 않다는 방증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사실상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함진아비와 주례를 뺀 나머지 단계들을 보자. 축가, 꼭 불러야 할까. 하객, 꼭 모셔야 할까. 친척, 꼭 함께 해야 할까. 드레스 투어, 스튜디오 촬영, 예물, 예단 등등등, 꼭 있어야 할까.


나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쁘게 말하자면 공장식 결혼, 그리고 그를 위해 웨딩 플래너까지 끼고 준비해야 하는 갖가지 것들. 궁극적으로는 결혼식 그 자체. 나는 그것을 해야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허례허식. 진부한 표현이지만, 어쩌면 그게 딱 들어맞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말이다.


내가 유부남이 될 때까지, 주변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었다. 결혼식, 이거 힘들다고. 신경써야 할 것도 너무 많고, 해야할 것도 너무 많다고.


이미 말했듯이, 나는 그것들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반드시 해야하는 까닭도 알지 못했다. 할 이유가 없는 것들에 저 막대한 신경과 에너지와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야하는 꼴이라니. 이게 전형적인 허례허식 아닐까. 이게 허례허식이 아니라면, 우리는 대체 뭘 허례허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례허식의 대명사로 불리는 제사와 차례.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되려 이게 더 의미있었다. 1년에 한두번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을 생각하는 자리. 자식 내외와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해드리겠다며 차려내는 음식들. 그 노동들. 차라리 이게 더 의미가 깊었고, 보람되었다. 제사와 차례가 허례허식이라며 그만 지내자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데, 대체 왜 결혼식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개인의 취향차이일 수 있다. 남들 앞에서 본인이 주인공인 축제를 열고 싶은 E에게 결혼식은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파티일 수 있다. 예쁘고 잘생기고 자존감이 높은 이들은 본인이 한껏 꾸민 모습을 만인 앞에 내세우고 싶어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아니었다. 나는 E도 아니고, 내가 꽃단장한 모습을 딱히 남들을 모아놓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게 결혼식은 매력이 없는 행사였다.


애호박은 내게 천 원만큼의 값어치가 있고, 라면은 오백 원만큼의 가치가 있지만, 결혼식은 내게 전혀 값지지 않았다.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지불용의금액(WTP; Willingness To Pay)이 0원. 내 장바구니에는 결혼식을 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원하지 않는 물건은 사지 않아왔다. 아니, 심지어 원하는, 필요한 물건조차 잘 사지 못해왔다.


그런데 내게 의미가 없는, 사기는 커녕 장바구니에조차 담지 않을 공장식 허례허식에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하지 말자.


결혼식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두 번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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