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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18. 2023

결혼식만 왔다 갔다 하면 하루가 다 가요

결혼식을 하지 않은 이유 (1)

당초에는 호불호에 불과했다. 파스타도 좋고 양꼬치도 좋은데, 으으, 오늘은 파스타! 수준의 선호 문제였다. 결혼식을 안 하고는 싶었지만, 그렇다고 결혼식에 대한 회의감은 없었다는 말이다. 만약 결혼식을 한다면, 양복과 드레스가 아닌 한복을 입고 하고 싶다는 상상도 했었다.


모든 게 그러하듯, 노웨딩에 대한 신념은 우연한 자리로부터 불쑥 시작되었다.



그간, 초대 받은 결혼식에는 빠짐 없이 참석하고자 노력해왔다. 외향적인 성격이기 때문도 아니고, 마당발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감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 사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울 한 번의 이벤트. 그 자리에 나를 기꺼이 불러준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최소한 본인의 결혼식에 자리하여도 창피하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주었다는 게 벅차게 감격스러웠다.


청첩장 주는 거에 뭐 그렇게 의미를 두냐 할 수도 있다. 청첩장 주는 건 축의금 납부서 주는 거랑 뭐가 다르냐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돈 내라는 거랑 뭐가 다르냐 생각할 수도 있다.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소중한 자리에 초대해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그래서 시간만 된다면 꼭 당일에 얼굴을 보고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해왔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나는 경조사를 잘 챙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주변에서들 그렇게 여겼다. 몇 년만에 연락해서 청첩장을 주어도, 식장에 찾아가 축하해주었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손꼽게 유별나게 잘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구태여 바로잡지는 않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 날은 토요일. 친한 여자 동기의 결혼식이었다.

하객이 들어차기 전 웨딩홀의 모습. 버진로드를 꾸미고 있는 꽃장식이 화려하다.



별난 건 없었다. 웨딩홀은 밝고 화려했으며, 가지런히 늘어선 화환은 자랑하듯 빼곡했다. 친척일까 친구일까, 축의금 접수대에 두 명씩 앉은 이들은 하객들로부터 봉투를 건내 받고 식권으로 나눠주었으며, 축의를 하는 하객들은 그 앞에 펼쳐진 방명록에 본인의 이름 두세자를 검은색 모나미 수성 사인펜으로 적고 돌아섰다. 신부는 대기실에서, 신랑과 양가 부모님들은 홀에서 손님맞이에 웃음으로 정신이 없었다.


신랑과 신부에게 인사를 마친 하객들은 적당한 곳에 서서 삼삼오오 무리지어 얘기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나누지 못 한 안부를 공유하기도 하고, 어떻게 왔는지, 혼자 왔는지, 밥은 먹고 갈 건지 따위를 묻고 답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신부대기실에 가서 인사를 하고, 축의를 하고, 결혼식에 오지 못하는 몇몇 지인들에게 부탁받은 축의금 다발도 대신 낸 후 돌아서니, 자연스레 아는 얼굴이 눈에 띄었다.


두팔 : 오 은지! 오랜만 오랜만! 잘 지냈니
은지 : 그럼요 오빠. 회사에서도 보는데 뭐 새삼 ㅎㅎ


합격 통지를 받고 본격적으로 입사하기 전, 2주 가량 진행되었던 부트캠프에서 알게 된 인연. 이 친구도 신부도 모두 거기서 알게 됐다. 같은 조였던 열여덟 명. 입사하기 전에 친해진 사람들이라 직장 동료라기 보다 대학생 때 사귄 친구처럼 친한 무리다.


두팔 : 에이 그래도 이렇게 밖에서 보는 건 또 다르지! 신부는 봤어?
은지 : 네, 사진도 다 찍었어요. 근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네요.
두팔 : 그러게. 진짜 생각했던 거 보다 훨씬 많다.


신부는 그리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었기에, 혹여나 사람이 적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신부대기실 앞에는 식 시작 전에 신부에게 인사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늘어서 있었고, 촘촘히 세워진 화환의 꽃잎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홀을 채우고 있었다.


은지 : 와아- 이 사람들 다 어떻게 왔나.
두팔 : 너는? 차 가져 왔어?
은지 : 아뇨. 주말이어서 차 밀릴까봐 KTX 타고 왔어요. 여기 들어올 때 차 밀리는 거 봤어요? 안 가져오길 잘한듯?


결혼식장은 주차장과 밥이 전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주차가 빡세다는 반증일 터. 목이 좋은 웨딩홀일수록 운전자의 피로도는 두텁게 쌓인다. 대중교통으로 왔다 갔다하는 것도 힘들다는 게 함정이지만.


은지 : 휴, 진짜 왔다 갔다 하면 주말이 다 가는 느낌이에요. 오늘도 집 돌아가서 저녁 먹으면 다 끝나네요. 힘들다 힘들어.
두팔 : 그러네 진짜. 평일에 야근하다 주말만 간신히 쉬는데, 그 주말도 다 날아가네.
은지 : 그러니까요. 결혼식 올 때 마다 좀 그렇다니까요. 결혼식만 있으면 하루가 다 가요.


예컨대 대전 사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결혼식을 간다고 해보자. 대전에서 기차타러 가는 데 40분, 기차타고 1시간 30분, 기차 내려서 식장까지 가는 데 40분, 식장에서 1시간 30분, 다시 식장에서 기차역까지 40분, 다시 기차타고 1시간 30분, 집으로 돌아가는 데 40분, 이라 치면, 이것만 해도 6시간 30분이다. 오전에 나와도, 집에 들어가면 저녁 먹을 시간인 거다.


은지 : 아니 당연히 축하는 하지. 근데 그건 그거고, 힘들다 소리는 맨날 하는 거 같아요 ㅋㅋ


그러고 보니 그랬다. 결혼이란 건 분명 축하받아야 마땅할 이벤트겠으나, 오롯이 축복의 마음만으로 결혼식에 오는 이들은 많지 않아보였다. 아니, 많지 않기는커녕 그간 그렇게 수없이 다녔던 결혼식들 중에서 힘들다느니 하루가 다 가버린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지 않는 하객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은지 : 솔직히, 귀찮아서 가기 싫은데 가야 해서 가는 경우도 많고. 그치 않아요?


심지어는 축하하는 마음보다, 의무감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 부장님의 자혼, 지금은 멀어졌지만 나 결혼할 때는 와줬던 멀리 사는 아무개의 결혼, 피만 섞였지 평소에 연락도 않고 지냈던 사촌의 결혼 등.


은지 : 여기 이 사람들 다 힘들 거 같은데? 다 월급의 노예들일 텐데. 강남에 건물 몇 채씩 갖고 있는 건물주라면 모를까.


그렇다면 왜들 그렇게 결혼식에 참석하는 걸까. 그렇게 귀찮고 힘들다면서.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알아서 대답이 먼저 나왔다.


은지 : 솔직히 축의금 하는 것도 다 기브앤테이크죠 뭐. 준만큼 받고, 받은만큼 주고. 나도 내가 나중에 이만큼만 받겠지 하면서 주는데?


좋은 말로는 품앗이, 요즘 말로는 기브앤테이크였다. 남들 결혼식이 가줘야, 저들이 나중에 내 결혼식에 와주고, 또 내가 이만큼 줘야, 저들이 또 나중에 그만큼 축의를 하고.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면 맞는 얘기들이었다.



두팔 : 난 이제 슬슬 가야겠다. 다음 결혼식도 있어서. 너는 밥 먹고 갈거지?


대화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훗날, 내가 결혼할 때에, 나는 이런 결혼식을 해도 되는가.


은지 : 네, 먹고 가야죠. 오빤 진짜 결혼식 엄청 다니네요? 나중에 사람들 엄청 오겠어!


내가 뭐라고. 이 수많은 사람들의 골드바 같은 주말 시간을 통으로 빼앗고, 이런 수고와 노고를 강제할 수 있는가. 나에게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내가 결혼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사람들을 오라 가라 부릴 수 있는가.


두팔 : 에이, 누가 나랑 결혼이나 해주면 다행이지. 잘 먹고, 조심히 내려가!


나를 축하해주러 오는, 즉 내게도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축하의 마음으로 기쁘게 참석하는 결혼식이 아닌, 억지로 참여해야 하는 결혼식이라는 의무를 지우거나. 높은 확률로 둘 중에 하나일 텐데, 나는 그래도 되는가. 남에게 폐를 끼쳐도 될만큼,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은지 : 네 오빠도요~ 회사에서 봐요!


결혼식에 대한 회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COOKIE : 못 다한 이야기

다른 한편으로는 괜시리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있다. 나는 축하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그들에게 축의를 한 것인데, 그들은 그걸 단지 기브앤테이크로 받아들였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딱 이만큼, 나중에 너도 나 결혼할 때 주면 돼, 라는 메시지로 읽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기계적인 ‘엔빵’으로 오해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섬찟했다. 내 마음이, 내 축하와 선의가 왜곡되는 게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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