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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Oct 01. 2024

아내가 부쳐준 감자전의 온기를 나는 느낄 수 없었다

46. 감자전

창 밖은 깜깜한 경복궁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나는 울었다.


수염이 듬성이는 턱 끝에

어차피 버티지 못 하고 떨어질 눈물이

자꾸 맺혔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아저씨의 울음소리는

그다지 듣기 좋지 않았다.



일이 하나 있었다. 회사 일이었다.


밥 벌어먹는 일이 늘 그렇듯, 유쾌한 일은 아니었고,


각설하면, 내가 무능력자가 되었다는 얘기다.

모든 건 내 탓이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 탓을 할지언정, 우리는 모두 피해자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영영 그러지는 못 했다. 버틸 수 있는 건, 딱 열흘 정도였다.


밤과 새벽, 토요일과 공휴일, 집과 사무실, 외부와 내부. 시달림은 사방팔방 계속되었고,


그게 하루, 이틀, 닷새, 열흘. 그쯤되니 이 악물고 꽉 쥔 양손의 가드가 내려가고 말더라.


내 탓이 아니었던 것들은

사실 내 탓이 되었다.


나 때문 아니다, 기 죽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스스로를 얼마나 다독였는데,


어쩌면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았다. 내 잘못인 것도 같았다. 내 잘못일 수도 있겠다. 내 잘못인가? 내 잘못이었다. 그래, 내 잘못이었다. 내가 잘못했다. 가스라이팅.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거듭되는 사방의 힐난에 스멀스멀 좀 먹혔다.


"허어, 그렇게 안 봤는데 자네 참."

"일을 왜 이렇게 하나? 이게 말이 돼?!"

"이번 건 명백히 잘못했어요. 알아요?"

"원망스럽네요"


같은 편의 손가락질.


무너졌다.

마음도 몸도.



잘 세워진 도미노. 앞단 하나를 톡 치니 와르르 쏟아졌다. 무력감. 자괴감. 걷잡을 수 없었다.


미안해하지 못 하던 피해자는 온갖 곳에 사과했다. 마침표를 찍듯 수없이 '죄송합니다'를 내뱉었다.


남들의 눈홀김을 타고서

나도 나를 비난했다.

스스로를 하대했다.


나는 작았다.

보잘 것 없었다.

별 볼 일 없었다.


등은 굽어져갔고, 어깨는 오무라졌다.

고개는 떨어져갔고, 걸음새는 터벅여졌다.


손이 떨렸다.

심장이 요동쳤다.


밥이 먹히지 않았다.

팔다리가 말라갔다.

애써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5kg 훌쩍 넘게 빠졌다.


문득, 회사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며 목을 매달은 어느 회사의 모 간부가 떠올랐다.


이해가 되었다.



아내가 생각난 건 썩 다행한 일이었지만, 또한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이 역시 미안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겐 평소에도 미안해왔다. 나와 함께 하기엔 너무나도 선한 사람이라. 나라는 그릇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이 넘치도록 맑은 사람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


이참에 미안함이 더해졌다.


난 고작 이만한 사람인데.

이제 원래보다도 더 형편 없어진 사람인데.

아내와 감정을 나눌 여력마저 사라졌는데.

이런 내가 아내의 좋아함을 받아도 되나.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을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편에 비해서 나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에요"

"내 남편은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몰라"


미안하고

미안했다.



주말 부부 우리. 집에 들르기로 약속한 날이었지만, 벌어진 일을 수습하러 가야 했다.


「아내, 미안해요. 나 오늘 못 가요.」


「괜찮아요. 내 걱정하지 말고 일 잘해요.」


얼마 뒤, 아내가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먹먹히 옅은 쥐색에 군데군데 갈빛으로 부쳐진 자국. 직접 갈아 우둘투둘해보이는 질감. 감자전이었다.


능숙히 만들어진 모습은 아니었다. 전이라기엔 떡 같은 두께에 영 서툴게 익힌 모습. 엉성해서 웃음이 나왔다. 얼마만에 나온 웃음인지.


「남편 오면 막걸리랑 같이 먹으라고 내가 감자 갈아서 준비하고 있었어요.」


 저래 보여도 직접 갈아내면서 몇 시간은 고생했을 게 분명했다.


히히 남편 감자전 좋아하잖아요.」


이어서  「근데 나 혼자 먹어 키키키」,  「남편도 밥 꼭 챙겨먹고 일 마무리 잘 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오래오래」



토요일 밤


머리 위엔 데스크를 비추는

흐릿한 조명 한 줄.

끊어지듯 이어지는 키보드의 타격음은

경쾌하지 않았다.


사무실은 적이 고요했고

대체로 어두웠다.


떡진 감자전의 온기는

핸드폰 액정 너머로 전해지지 않았고

창 밖 풍경은

새까맣게 처량했다.


홀로 있는 사무실에서

나는 울었고

창피하게도 잔뜩 소리를 내며 울었고


벌거진 눈두덩이를

아내에게 들키지 않은 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으나


그 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하여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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