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장밥 Sep 02. 2020

멸치칼국수는 아버지의 냄새였다

멸치칼국수 : 서울시청 현대칼국수

선뜻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20대 중반쯤 시작했으니 그리 빠른 출발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고민 없이 수험생의 길을 택한 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방 붙을 거라는 자신감. 몇 번이고 낙방하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감. 별다른 근거는 없었지만, 믿음은 두터웠다.



오전 11시.

아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믿음이 두터웠던 만큼, 야금야금 길어지는 수험생활로 인한 심리적 중압감은 홀로 감당하기에 꽤나 무거운 것이었다. 더 늦은 시기에 시험 준비를 시작한 사람들이 먼저 합격해서 떠나갔고, 학창시절 친구들은 번듯한 직장에서 회사인이 되어갔다. 5년 터울의 친동생이 대기업에 입사한 후 용돈을 건내주었을 때에는 대견함과 당혹스러움이 절반씩 섞인 생소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남들에게서는 회사니 재테크니 따위의 이야기를 듣다가, 혼자 되어 책상 앞에 앉으면 고작 내일 있을 모의고사를 준비하는 상황. 조급했고, 다급했다.



그 친구가 오전에 나를 찾은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1학년. 다짜고짜 자퇴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며, 차라리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대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겠다고 했다. 또 한 번은 재수할 때. 재수학원 종합반에 들어간 첫 날이었다. 학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며, 독학재수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울리는 전화. 이게 세 번째다. 이번엔 무슨 일일까. 예감이 좋지만은 않다. 아들은 지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 날은 고사장 발표를 하는 날이었다. 어느덧 세 번의 시험을 치렀기 때문인지, 네 번째 고사장을 확인하는 일은 능숙했어야 했다. 간단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부여된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수험번호에 해당하는 고사장을 다시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4년차 수험생답지 않게, 고사장은 커녕 수험번호를 확인하지 못해 애를 먹는 것이었다. 분명히 수험번호가 표시되어 있어야 할 페이지인데 수험번호가 없었다. 결국 한참을 찾다가 옆에 있던 동료 수험생에게 물어보았다. 수험번호를 어디서 확인했느냐고. 그러자 생각도 못 한 대답이 돌아왔다.


"야, 너는 생긴 게 내 꺼랑 다르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너 혹시 시험 접수 안 한 거 아냐?"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그럴리는 없었다. 분명히 시험 접수 기간에 인터넷으로 원서를 넣었던 기억이 선명했다. 더군다나 합격이 간절한 장수생이 원서 접수를 하지 않았을리가 없지 않는가.


동료 수험생의 페이지를 확인했다. 당연하다는 듯, 수험번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마땅히 적혀있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맞다. 분명히 우리 둘의 페이지는 다르게 생겼다. 무엇이 문제일까.



"네, 아버지."


대답이 들린다.



곧바로 원서 접수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그래, 내 기억이 맞았다. 원서 접수한 기록이 남아있다. 원서 접수, 당연히 했다.


다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찾아보았다. 원서를 접수할 때 원서비를 결제했다면, 결제 내역이 문자 메시지로 날아오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래, 여기 문자... 문자 메시지... 결제 내역이 담긴 문자 메시지...



약간의 어색한 침묵이 있은 뒤,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다.


"그... 점심 드실래요?"



그게 없었다. 얼 빠진 놈이 결제를 안 한 거다. 접수만 하고 결제를 안 한 거다. 그러니까 원서가 제대로 접수되지가 않은 거다. 당연히 수험번호가 나왔을리가 없다. 멍청한 놈. 나사 빠진 놈.



묻고 싶은 게 정말 많다. 그러나 입 밖으로 말이 새어나오기에는, 머리가 더욱 복잡하다. 생각의 병목현상. 여러 생각들이 앞다퉈 좁은 입구멍으로 나오려다가 서로 부대낀다. 그러니까 원초적인 말이 짧게 나온다.


"음... 칼국수 먹을래?"



간절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절박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실수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시험 일정에 맞추어 공부도 착실히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올해 시험을 못 보게 된다. 실수인 건 맞지만, 억울했다.


인사혁신처에 전화를 걸었다. 공무원 시험을 주관하는 부처다. 담당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단지 결제만 안 한 것이라고. 접수도 했다고. 그러나 들려오는 건 계속 어쩔 수 없다는 답변 뿐.


단단한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 어떤 방법도 없나요?"

"네, 그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시청역 근처에 현대칼국수 가봤니?"

"아니요. 거기로 갈까요?"

"그래, 거기서 보자. 1시간 쯤 걸린다."

"네, 그 쯤 맞춰 갈게요."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눈높이 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하늘은 사방으로 더 커보였고, 그만큼 스스로는 초라해졌다. 그 날 따라 얄밉게도 구름조차 없었다.


숨 쉬기가 가쁠 만큼 답답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버지 목소리가 들린다.



칼국수집 앞에 도착하니, 이미 아들 녀석이 와 있었다. 매일 입는 그 바지에, 그 티셔츠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녀석이, 공부를 한답시고 후줄근한 싸구려 추리닝을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한 편으로는 대견스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안 좋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보내도 아쉬운 젊음인데, 벌이가 변변찮아 등록금조차 내주지 못하는 게 뼈저리게 미안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미안함보다 불안함이 앞선다. 잠시 뒤, 아들은 어떤 이야기를 꺼낼까. 어쩐지 아들녀석의 얼굴이 초조해보인다.


"들어가자."



촌스러운 폰트로 상호를 크게 적어놓은 칼국수집은 외관부터 노포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실내는 넓지 않았고, 테이블 위에는 청양고추 고명과 파 머리 부분으로 만든 붉은 양념이 투박하게 놓여있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냄새였다. 멸치국물 냄새가 칼국수집 전체에 가득했다. 아마 건물 벽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을 거다. 그 냄새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냄새였다. 아버지의 냄새였다.



칼국수 2개를 주문하자, 오래 걸리지 않아 바로 음식이 나온다. 각자 한 그릇씩 앞에 두고 면을 들어올린다. 자꾸 터져나올 것 같은 갖가지 질문들은 칼국수면과 함께 목구멍 뒤로 넘긴다.



우리집은 어렸을 때부터 멸치국물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부탁을 하면, 솜씨 좋은 어머니는 크게 어렵지 않게 멸치국물을 뚝딱 만들어내셨다. 국수도 삶아 먹고, 수제비도 해먹고, 그 집처럼 칼국수도 해먹었다. 그럴 때마다 꼭 들어가는 재료가 있었으니, 애호박과 김과 계란이다. 그런데 현대칼국수가 그러했다. 거기에다가 면에서 녹아나온 탄수화물 때문인지 국물에서는 약간의 점성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그 맛이었다. 어머니의 맛이었다.



"맛있네요."


아들놈이 말한다. 다행이다. 초조해보이던 녀석의 낯빛도 제 색깔을 많이 찾았다. 자, 이제 결전의 시간이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마침 칼국수집 바로 앞에 카페가 하나 있다. 거기서 음료수라도 마시겠느냐고 물어본다. 알겠단다.



칼국수를 다 먹고, 카페에 갔다. 아버지와 카페에 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뭐니?"



"...올해 시험을 못 보게 됐어요."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는지, 왜 시험을 못 보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그 때 아버지의 표정은 분명 평소와 달랐으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내 귀에 들린 아버지의 대답은 나로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럼 해외여행이나 다녀올래?"



"네? 해외여행이요?"

"그래, 한번도 제대로 외국에 나갔다온 적이 없잖아. 어차피 이렇게 시간이 난 김에 바람이나 쐬고 오지 뭐. 비행기 값은 걱정하지 말고."


잔뜩 혼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행이라니. 그것도 물 건너 외국에 다녀오라니.



"하실 말씀은 더 없으세요...?"


아들놈의 반응을 보니,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한 번 이랬으니,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될 거고, 내년에도 또 이럴 거는 아니니까, 그걸로 됐다. 저 칼국수집은 언제 한번 와봐야지 했는데, 덕분에 오늘 왔네."



그게 전부였다. 카페에서 나온 뒤, 아버지는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다시 독서실로 향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이 갑자기 한 살 더 먹은 걸로 보였을 거다. 시험을 못 보게됬노라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순식간에 아들이 눈 앞에서 1년을 늙어버린 것과 같았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침착하고 태연하게도 해외여행이나 다녀오라는 위로를 건내셨다.


독서실 의자에 앉아서 생각했다. 과연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었다면 여행이나 다녀오라는 말을 툭 내뱉을 수 있었을까.


눈물이 났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실수로 1년을 날려보낸 스스로가 한탄스러웠고, 이런 것도 아들이랍시고 위로해주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계속 생각이 나서 속이 울렁거렸다. 애써 평온하시려는 아버지의 표정이 생각나서 더욱.


그 날 아버지에게 칼국수는 무슨 맛이었을까.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해 불안함을 가득 안은 채로 애써 삼키던 국물은 또 뭐였을까.



집에 돌아와서 장롱을 연다. 혹시 몰라 챙겨둔 비상금을 꺼내기 위해서다. 1백만원 전부를 아들놈 베개 머리 맡에 슬쩍 둔다.


녀석이 돌아오면 한 마디 더 해야겠다. 비행기삯이나 하라고.



며칠 뒤, 정말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3박4일짜리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직도 그 때의 여행은 손꼽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인 덕분이었을까. 바로 다음 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기나긴 수험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안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말한다. 처음에는 적이 당혹스러워 하더니,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마음을 차차 추스리는 모양새다. 결국 비행기값을 주었다는 대목에 이르자, 깔깔거리며 장난스레 말한다.


"아이고~ 백만원짜리 칼국수를 드셨소 그래. 그거 나도 좀 먹어봅시다."


웃어넘겨주는 이 사람이 참 고맙다. 그래, 정말로 둘이 칼국수나 먹으러 가야겠다.



그 날, 칼국수집에서 느낀 건 단지 멸치국물 냄새와 옛날 칼국수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냄새였고, 어머니의 맛이었고,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몰라하던 아들을 안아주던 우리 집 그 자체였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에 아버지가 카톡을 한 통 보내셨다.



"칼국수 먹을까?"

이전 03화 아들~ 엄마랑 파스타 먹으러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