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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23. 2020

아들~ 엄마랑 파스타 먹으러갈까?

파스타 : 세종시 에이트

예뻤다.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는, 아예 큰 소리를 내어버렸다.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너무나도 예뻤기 때문이다. 본인 사진 맞느냐고 몇 번을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몇 번이나 감탄을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예뻤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평소에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라고 말해왔었는데, 그 사진을 본 이후로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게 예쁜 사람과 결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새삼 아버지가 대단해보였다.


거꾸로 말하자면, 사진 속 어머니도 우리 어머니일진대, 지금 우리 어머니의 모습과 한참은 달라보였다. 삶이란 게, 우리 어머니의 예쁨을 다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세월이란 게 그렇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어머니의 눈에는 둘이나 예쁘지만, 정작 그 아들딸 눈에 비친 어머니는 더 이상 예쁘지 않다. 살갗이 거칠게 일어나 니트 올을 다 나가게 하는 두 손. 거멓게 늘어지는 광대 밑 팔자주름. 툭하면 쥐가 나는 두꺼운 종아리. 


습관처럼 마른기침을 내며 잠을 설치는 어머니의 소리가 귀에 익숙하다.



자식새끼들은 다 그럴까. 속은 그렇지 않은데, 참 살갑게 굴지를 못한다.


어쩌다 어머니가 데이트하자는 얘기를 슬쩍 꺼내실 때에도 그렇다. "나 바빠요"하고 퉁명스레 말하거나, "아니, 무슨 데이트예요"하고 면박하기 일쑤다. 말하기도 전에 후회하지만, 마음과 달리 입 밖으로 까끌까끌한 말이 잘도 내뱉어진다. 분명히 어머니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수줍게 말씀을 하셨을 거다. 안다. 다 아는데, 정작 못된 말들만 튀어나간다.


가족 외식을 가도 그렇다. 음식점을 오가는 길에, 어머니는 슬쩍 내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신다. 그런데 하나 있는 아들놈은 그럴 때마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무언가 민망스럽고 낯간지러워서 그걸 금방 풀어버리고 만다. 30년 전과 지금이 다른 건 나이밖에 없을 텐데, 대체 왜 손조차 잡지를 못할까. 어머니가 손을 잡아주시지 않았다면 걸음조차 못 걸었을 어린 놈이,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인데 말이다. 똑같은 어머니고, 똑같은 아들인데 말이다.



어머니는 본인의 입맛을 희생하셨다. 좋아하는 걸 드시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걸 기꺼이 드셨다. 시부모 밥상을 차리느라, 남편 식성을 맞추느라, 본인을 양보하셨다. 결국 이제는 입맛이 아예 바뀌어버리셨단다. 예전에는 입에도 안 댔을 음식들인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듣는 아들의 마음은 왠지 아프다.


꽤나 오랫동안, 어머니의 식성을 알지도 못했다. 파스타니 리조또니 하는 것들을 좋아하시는지 몰랐다. 좋아하기는커녕 알고 계시는지도 몰랐다. 이런 전후사정들을 알게 된 건, 머리가 다 크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앞에 누가 앉아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디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렷이 기억나는 건,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음식의 모습이다. 사진사 모자처럼 생긴 둥그렇고 볼록한 모양의 식빵의 속을 다 파내고, 그 속을 하얀 크림파스타로 채운 요리였다. 촌스러울 정도로 오두방정을 떨며 신기해했다. 빠네파스타였다.


어찌나 신기했던지, 집으로 돌아와 떠벌떠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웃으면서 말하셨다. 엄마도 그거 좋아한다고.


생각 못 했다. 이미 어머니가 알고 계실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 했다. 그래서 다시 여쭤봤다. 빠네파스타라는 요리 아시느냐고. 그러자 다시 말씀하신다. 그거 좋아하신단다. 소스에 빵을 찍어먹어도 맛있단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머니는 이미 한참 전에 내 나이를 겪은 사람이다. 나보다 먼저 연애라는 걸 해본 사람이다. 또래 이성에게 느끼는 말랑거리는 감정을 진작에 경험한 사람이다. 그래, 지금 내 옆에 있는 또래 여자들이 불과 이십여 년 뒤에는 우리 어머니 나이가 된다. 그러니까 내 친구들이 지금 그렇듯이, 어머니도 빠네파스타 같은 거 좋아하셨을 거다. 그러니까 지금도 좋아하고 계신 거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지금껏 어머니만을 위한 외식을 해본 적이 있었나.



어머니가 세종으로 내려오셨다. 취직을 한 아들의 직장이 세종시였기 때문이다. 자랄 만큼 다 자란 아들이지만, 잠자리가 편한지는 직접 두 눈으로 보셔야 직성이 풀리시나보다.


세종시는 신도시여서 그런지 서울과 같은 오래된 맛집은 없다. 다 요즘 음식점들이다. 프랜차이즈가 대부분이다.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양식 레스토랑이 상대적으로 빛을 발한다. 아무래도 도가니탕 같은 전통 한식에 비해서 더 트렌디한 메뉴인 까닭일 터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노포'와 '양식 레스토랑'은 서로 조화로운 단어가 아니지 싶다.


그래서 어머니께 여쭈었다. 파스타 드시러 가시겠느냐고.


좋은 핑계가 되었다. 부끄러워서 어머니가 먼저 낀 팔짱도 풀어버리는 못난 아들인지라, 서울이었으면 파스타 얘기를 꺼내지도 못 했을 거다. 어머니께 파스타를 먹으러 가자는 건 우리 가족이 아닌 어머니의 입맛만을 생각한 제안이기 때문이다.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살갑지 못한 아들에게는 너무나도 낯간지러운 말이다. 파스타집 특유의 몽글거리는 분위기를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좋다는 어머니의 대답에 아들놈은 굳이 쓸 데 없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여기는 파스타집 말고는 맛집이 없다고. 괜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에이트. 그동안 가족 외식으로 갔던 음식점들과는 이름부터 달랐다. 어감부터 서양스러움을 내뿜는 상호였다. 인테리어도 그랬다. 어딘가 그늘진 형광등 아래서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던 예전 그곳들과는 달리, 이 곳은 사방이 밝았다. 밝다 못해 하얬다. 접시는 반짝거렸고, 포크는 빛났다.


샐러드와 리조또와 파스타를 시킨다. 치즈가 잔뜩 들어간 메뉴들은 오롯이 어머니만을 위한 주문이었다. 어머니는 이런 건 정말 오랜만에 먹는다하시며 야무지게도 씹어드신다. 연신 맛있다고 드시는 어머니. 포크로 파스타를 둘둘 말아올리는 그 모습에서, 사진에서 봤던 예전 그 소녀가 보였다.


어미라는 존재에게 자식이란 게 뭐인가 싶다. 무엇이길래 자신의 입맛까지 내려놓아가며 어르고 달래고 키우는가 싶다. 그렇게 키워봤자 이제 당신의 손조차 잘 잡지 않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커다란 고깃덩어리인데. 어떤 의미가 있길래 자신을 양보하나 싶다.


하얀 레스토랑에서 잔뜩 반짝거리는 식기를 들고 리조또를 먹는 어머니의 모습은 왜 이렇게 예쁠까. 밝은 조명 때문일까. 오랜만에 당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입 안 가득 씹으며 나오는 행복한 미소 때문일까.


그런데 그 예쁨은 왜 슬플까. 어미의 그 예쁨이 아들에게 이렇게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세 문장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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