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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Jan 20. 2021

만 원이면 네 식구가 맛있었는데

라볶이 : 신당동 마복림할머니

아버지는 가정적이셨다. 시절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무심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가 표상이던 시대지만, 우리 아버지는 가족끼리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하셨다. 많은 추억을 쌓으려고 하셨다. 우리집은 가족 외식이 잦았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비교 대상이 없었으니까. 나이가 차고, 머리가 굵어지며, 다른 친구들의 집과 견주어보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꽤 적지 않은 집들이 누구누구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 되어야만 외식을 하고 있었다. 우리집은 그렇지 않았다. 이유가 필요치 않았다. 그냥 밥 먹으러 가는 거다. 한 달에 두 세 번씩은 꼬박 그랬지 싶다.


함께 쌓아온 세월만큼, 같이 밥 먹으러 갔던 곳들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찾아갔던 동네가 바로 신당동이었다. 떡볶이집, 마복림할머니 원조 떡볶이집 때문이었다.


지금의 신당동은 명성이 예전만 못 하다. 위세가 많이 떨어졌다.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의 평이 썩 좋지 않다. 불친절하고, 더럽고, 맛이 트렌디하지 않다는 이유다.


대강은 동의할 수 있다. 공감이 간다. 그 때는 심지어 더했으니까. 더 불친절하고, 더 더러웠으니까. 그렇지만 맛에 대한 평가에는 쉽사리 동의하지 못 하겠다. 트렌디하고 말고 문제가 아니다. 그 집, 맛있었다.



어릴 적. 승용차를 타고, 신당동으로 향하는 길. 차에는 네 식구가 타고 있다. 부모님, 동생, 그리고 나. 식당 앞에서 세 식구가 먼저 내리면, 아버지는 근처에 차를 대고 합류하신다. 피크타임을 피해서 왔음에도, 번호표를 끊고 대기하는 경우가 흔했다.


때로는 긴 기다림 끝에 식당에 들어서지만, 종업원은 손님을 반색하지 않았다. 약간의 웃음기도 없는 무뚝뚝한 표정. 바빠보이기만 한다.


청결하지 못했다. 바닥에는 떡볶이 국물을 닦은 듯한 일회용 티슈가 구겨진 채 나뒹굴고, 테이블에는 수 십 년 간 더께 쌓인 검붉은 기름때가 만져진다. 휴지를 적셔 닦아봐도 소용 없다. 애꿎은 휴지만 계속 검어질 뿐.


편치 않았다. 등받이 없는 둥그런 의자는 패스트푸드점 플라스틱 의자보다 불편했다. 등을 꼿꼿하게 세울라치면 뒷 사람과 허리와 맞닿을 정도로 테이블 간 간격도 좁았다. 숨 가쁘게 빼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이곳을 참 자주 찾았다.


가령 이렇다. 주말 오전, 아버지가 불쑥 말을 꺼내신다. 떡볶이 먹으러 갈까? 그러면 불과 몇 시간 안에, 우리 넷은 신당동 떡볶이집에서 라면사리를 추가한 떡볶이를 먹는다. 툭 나온 제안을 탁 하고 받는다.



우리집이 이 집을 좋아했던 건, 맛있었기 때문이다. 재밌었기 때문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흔치 않은 즉석떡볶이집. 떡보다 부재료가 더 많은 게, 마치 전골처럼 눈 앞에서 자작하게 끓여진다. 앞접시랍시고 내어지는 건 얇고 아담한 스댕 국그릇. 나와 동생은 계란 하나를 반으로 잘라서 각자의 그릇에 반 씩 나눠가진다. 흰자는 한입에 우걱우걱 먹고, 앞접시에 남아 있는 노른자는 쇠숟가락으로 눌러 잘 으깬다. 으깨진 노른자에 떡볶이 국물을 좀 넣고, 라면사리를 약간, 떡을 약간 더한다. 그리고 비빈다. 부스러진 노른자가 섞인 떡볶이 국물은 한껏 꾸덕해진다. 듬성듬성 보이는 무정형의 노른자 찌끄러기는 라면사리와 떡 겉면에 찐득하게도 들러붙어있다. 그리 깔끔떠는 비주얼은 아니다. 빛깔도 묘하다. 카레에 고춧가루를 좀 섞은 색깔이랄까.


단언한다. 맛깔나보이는 모양새는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은 정말 좋았다. 그 어떤 곳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맛이었다.


맛을 더한 건 가격이었다. 이 모든 게, 딱 만 원이었다. 마복림 할머니 집에서는 우리 가족만의 주문 공식이 있었다. 떡볶이 몇 인분에, 뭘 넣고 뭘 넣고. 그게 딱 만 원짜리 조합이었다. 넷이서 만 원. 이거면 우리 가족은 또 하루의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만 원이면, 네 식구가 맛있었다.


그 때는 그랬다. 말그대로 툭하면 갔다. 누군가가 툭 던지면 바로 갔다. 가자 하면, 그대로 출발할 수 있었다. 단돈 만 원이면 됐다.



이제는 아니다. 만 원이고 십만 원이고, 돈이 문제가 아니다. 모이기조차 어려워졌다. 모이는 것이 그 자체로 어려워졌다.


이번 겨울에도 그랬다. 먹는 추억이 많은 만큼, 먹는 것에 진심인 우리 가족. 누군가가 가족 단톡방에 새우 얘기를 꺼냈다. 지금 새우철 아니냐고. 우리 간만에 새우 좀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모두가 뜻을 모았다. 순식간에 메뉴도 정하고, 장소도 정했다. 그런데 날. 도통 날이 정해지지가 않았다.


마땅히 이해가 간다. 우리 네 식구는 모두 경제인이다. 모든 이가 각자 자신의 밥벌이를 하고 있다. 부모에게 종속되었던 자식들은, 이제 회사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니까 날 맞추기가 어려울 수 밖에. 이 날은 누가 안 되고, 또 이 날은 누가 어렵고.


결국 날 맞추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새우 먹으러 가자는 말은 벌써 세 달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



생각건대, 어쩌면 이건 꽤나 보편적인 이야기다. 비단 가족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은 대체로 그러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 그 시간이 즐거웠던 사람들이 있다. 우리 맘 속 어딘가에 간직한 이들이 있다. 함께 놀이터를 쏘다녔던 친구들. 축구공 하나 들고 몇 시간을 뛰어다녔던 친구들. 규칙도 모르면서 탁구를 치겠다며 탁구장을 찾아다녔던 친구들. 야자 째고 도망가다가 학년부장 선생님에게 걸려서 벌 받았던 친구들. 오픈시간에 맞춰 가야한다며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놀이공원을 갔던 친구들.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말에 막바로 바다를 가주었던 친구들. 할 얘기 못 할 얘기 가리지 않았던 펜션 여행 친구들.


모두가 그렇다.


그렇게 좋던 사람들. 이제는 다 함께 모이기가 너무 힘들다. 각자의 생활이 바쁜 탓이고, 우리를 묶어두었던 울타리가 사라진 탓이다.



10년 전, 마복림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며느리도 모른다던 소스의 비법은 결국 며느리들에게 전수되었다. 덕분에 마복림할머니 떡볶이집은 아직 그 자리에서 그 때처럼 손님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그러할까.

그 때처럼 함께일 수 있을까.

단 한 번이라도, 그 때와 같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낼 날이 올 수 있을까.


내게 소중한 사람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은 사람들.


아쉽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그 순간들이 참 좋은데,

참 좋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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