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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Oct 20. 2023

말을 안 한 거지, 다들 알아주지 않았을까?

답례품

두팔 : 부단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너무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


결혼식을 안 하고, 하객이 없는 결혼을 하니까 생각지도 못한 좋은 점이 또 있었다. 결혼을 부담 없이 알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연락을 못 한 사람에게까지 말이다.


두팔 : 국장님, 잘 지내셨죠. 요즘은 어디 계시나요?


다들 그런 사이 있지 않나? 쑥스러워서 먼저 연락은 못 하고, 그래서 연락을 안 한 지는 오래 됐지만, 결혼 같이 큰 일이 생기면 알리고 싶은 사이. 결혼식을 하지 않으니까 그들에게 연락하는 게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두팔 : 형!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커뮤사세일 수도 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랜만에 연락해서 불쑥 청첩장을 주는 게 비매너의 표본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지 필요할 때만 부른다는 취지다. 결혼식에 하객도 동원해야겠고, 축의금도 좀 걷어야겠고. 그래서 얼굴에 철판 깔고 연락을 돌린다는 거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랜선청첩장에 랜선머니(지폐 이모티콘!)로 응대했다는 에피소드가 사이다썰이라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두팔 : 선생님, 저 두팔이에요. 말로만 찾아뵌다고 해놓고 이렇게 연락만 불쑥 드리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에피소드가 사이다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각박한 인간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 연락이 결혼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모바일이든 뭐든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면 결혼식에도 가고 축의금도 낼 수 있는 거 아닌가? 지폐 이모티콘을 받은 사람의 무안함이 느껴져 괜히 내가 화끈거리기도 했다. 진짜 사익추구를 위해 연락을 돌린 사람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두팔 : 교수님, 건강하시죠. 저 두팔입니다.


다행히 우리의 결혼은 별 상관이 없었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든 나와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든, 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지인들에게 알리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결혼식에 오라는 것도 아니고 축의금을 달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들에게 주는 모바일 결혼안내장에는 계좌번호조차 안 찍어놨으니까.


두팔 : 야 살아있냐


내 소식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부남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연락의 목적은 오직 그 뿐이었다. 행간읽기가 필요하지 않은 순수한 연락이었다. 저쪽도 오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결혼식 없는 결혼, 계좌번호 없는 결혼안내장 덕이었다.



인재 「추신. 마음 전할 곳이 없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축의 얘기를 했다. 진정으로 축하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조건반사처럼 으레 축의가 필요하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둘 중에 어느 쪽에 더 가까운 마음이었는지는 당사자만 알 뿐,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두팔 「대접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송구스러워서 마음 주실 곳을 따로 적어넣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핑계 삼아 안부 전하는 것으로 어여삐 여겨주세요! 축하는 마음 깊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둘이와 나는 축의금 욕심을 버리기로 한 상황. 게다가 이렇게 한 연락에 혹시라도 계좌를 알려주게 되면 순수한 결혼 소식 공유라는 목적이 퇴색될까 걱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축의를 어떻게 해야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전부 정중한 사양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었다. 10분을 넘게 통화를 하며, 끝끝내 나를 이기고 계좌번호를 알아간 분도 계셨다. 이런 게 다 마음이고 품앗이라며, 이걸 받아줘야 자기도 언제든 부담 없이 연락할 수 있노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으시는데, 그 어떤 설득의 말도 통하지 않았다. 논쟁에서는 내가 졌지만, 그 진심어린 마음이 느껴져 기분은 좋았다. 참으로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되돌려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카톡으로 축의를 보내온 친구들도 있었고, 상사의 요청에 따라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계좌로 마음을 주신 분들도 계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려야 할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답례품을 하기로 했다.



단가

어떤 답례품을 준비할지 고르기에 앞서, 가장 먼저 정해야할 건 단가였다. 얼추라도 금액대부터 생각해놔야 후보들을 추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를 찾아봤다. 일반적으로 결혼식 답례품은 1만원 전후였다. 결혼 후 회사에 돌리는 답례품은 수 천 원 수준이었고, 식장에 마련해두는 답례품도 1만원대 초반 선이었다. 의외로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이어서 심리적 부담이 좀 덜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그거보단 비싸게 가자고 했다. 식사 대접도 못 하는데, 답례품이라도 남들보다 좋은 걸 드리자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정한 최소 금액은 2만원이었다. 2만원 대에서 골라보되, 너무 괜찮은 아이템이라면 3만원 초반까지는 허용하는 걸로. 보통의 경우보다 2~3배 비싼 단가였다.


아이템

단가를 정하니 이제 아이템을 고르면 됐다. 우리가 답례품을 고를 때 생각했던 몇 가지 고려사항은 아래와 같다.


 - 정갈하고 고급스러울 것

 -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할 것

 - 실생활에서 쓸모가 있을 것

 - 호불호가 없거나 적을 것

 - 흔한 선물이 아닐 것


어려운 미션. 결론적으로 우리의 선택은 트러플솔트였다.


트러플은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었고, 몇 년은 거뜬히 보관할 수 있었으며, 요리를 하는 사람에게도 안 하는 사람에게도 활용성이 높았다.(고기만 구워서 찍어먹어도 훌륭한 요리가 된다!) 비록 트러플 향을 꺼리는 사람도 있고 소금이 흔한 선물이기도 하지만, 고수처럼 호불호가 극단적이지도 않고 소금이 아닌 트러플소금은 드물었기 때문에 이만하면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약간 비싸긴 했다. 3만원이 넘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수용범위 안에 있었고, 이보다 더 괜찮은 선물을 찾지 못해서 그대로 진행했다.


(트러플솔트 외에도 몇 개 후보들이 있긴 했지만 우리의 선택을 받지는 못 했다. 가령 트러플오일은 활용성이 낮고 가격대가 높아서 탈락, 호두정과는 보관기관이 짧고 흔한 선물이어서 탈락, 소금세트도 흔해서 탈락, 술은 호불호가 심해서 탈락. 상황에 따라서는 충분히 유용한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다.)


사진

한편, 우리가 답례품을 할 때 이거 하나만큼은 절대 하지 말자고 얘기한 게 있었다. ‘나 답례품이요’하는 표식이었다. 예를 들면, 누구와 누구의 결혼이라는 문구를 수건에 자수로 박아 넣거나, 수저세트에 레이저로 각인하는 등 말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표를 내니까 좋을지 몰라도, 받아서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좋아할 수 없는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받는 사람들이 흡족해할 수 있도록, 물건만 드리자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이게 답례품이라는 느낌이 좀 안 들었다. 그렇잖아도 결혼 답례품으로 흔히 하는 아이템도 아니었고.


그래서 우리는 답례품과 함께 명함 하나를 드리기로 했다. 10월 9일, 우리가 결혼하던 날의 모습이 담긴 사진명함 말이다. 결혼 답례품의 느낌을 내는 측면도 있었지만, 하객 없이 진행했기에 우리가 결혼하는 모습을 아무도 못 보신 터,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그 날의 모습을 보여드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명함과 답례품은 따로니까 답례품은 두고두고 쓰시고 명함은 휙 버리기도 용이하고. 생각할수록 괜찮았다. 비용도 대략 1장 당 200원 수준. 충분히 할 만 했다.


(사실 처음에는 명함이 아닌 사진 인화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이즈도 불필요하게 컸고, 비용도 훨씬 비싸서 사진명함으로 선회했다. 막상 해보니, 명함이 더 나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잘 됐다.)


수량

다음은 수량. 몇 개를 준비해야 할 것인가. 우리도 우리지만 부모님들도 필요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부모님들은 그다지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이미 이렇게 저렇게 다 마음을 전했다고 하셨다. 필요하다 하신 건 30개 정도였다. 뭐 우리야 힘 안 들고 좋았다.


최종적으로 200개 정도를 주문했다. 축의를 해주신 분들 중 우리가 답례품을 전달해드릴 수 있는 분들이 150분 정도 됐었기 때문에 넉넉히 주문한 거다. 남으면 우리가 쓰면 그만이고, 부족하면 또 일이니까.


전달

제일 문제는 이거였다. 과연 어떻게 드릴 것인가.


방법이 없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택배를 보내자니, 그게 답례품의 10할을 넘는 비용이었다. 아니 애초에 택배를 보낼 수도 없었다. 주소를 알아야 택배를 보내지. 그렇다고 주소를 보내달라고 일일이 연락을 돌린다? 그건 너무 무대뽀다. 분명히 주소를 안 보내주는 사람들도 나올 테고, 그게 아니더라도 주소를 보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는 일이다.


직접 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제일 큰 비율을 차지했던 건 역시 회사였다. 우리는 회사사람들 중 축의를 해주신 분 목록을 정리하고 필요한 수량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만큼의 답례품을 싸들고 회사에 갔다.


일요일 밤. 사람이 가장 적을 시간. 초근을 하는 사람도 주말에는 잘 안 하고, 주말에 하는 사람도 일요일 밤은 피한다. 그래서 일부러 그 때를 노렸다. 일하고 계신 분들께 방해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도 있었고, 답례품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들키는 게 부끄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답례품을 회사에 돌렸다. 4개 층을 돌아다니며 축의해주신 분들 자리에 답례품과 사진을 올려놓았다. 사람이 없을 때를 노리고 노렸지만, 몇 분은 마주치고야 말았다. 그런 분들께는 멋쩍게 웃으며 답례품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너무도 열심히 리액션을 해주셨다.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말이다.


회사 사람들은 정해진 자리라도 있지, 회사 밖 사람들에게 드리는 건 정말 마땅찮은 일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없었기 때문에, 한 분 한 분 만났다. 일부러 답례품 때문에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기 보다는 식사 약속이 잡힐 때마다 답례품을 들고 나갔다. 그렇게 몇 달 정도 지나니 꽤 많은 분들께 답례품을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죄송한 것은, 아직도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는 거다. 우리집 팬트리 한켠에는 아직도 답례품 한 무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분들과의 자리가 생기면 신나게 들고 나갈 요량이다.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유통기한도 몇 년은 남았으니까 뭐.


(아이템만 괜찮다면 답례품을 랜선으로 전달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만 하다. 두둘이의 경우 만나기 어려운 몇몇에게는 카톡 선물하기를 통해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미정 「꺄아! 결혼사진 달라고 하면 귀찮아하실까봐 얘기 못 했는데 이뤄졌네요! 두 분의 사랑이 변하지 않고 오래오래 가기를 바랍니다」


답례품을 드리고 나니까, 답례품에 대한 답례인사가 또 왔다.


윤아 「사진이 진짜 센스있더라. 역시 두팔이 오빠다 싶었어.」


감사하게도 너무 좋은 말씀들 뿐이었다. 우리의 결혼 얘기를 쓰면서 대체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감사투성이의 나날들이었다.


영지 「답례품으로 이렇게 비싼 걸 준다고? 꽤 비쌌겠는데 이거?」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선물의 값어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래도 우리가 헛돈을 쓴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우리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해준 사람들. 우리는 그에 감사했고, 감사의 마음을 다시 답례품으로 전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우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했다는 것. 그래서 헐하지 않은 선물을 준비해서 드렸다는 것. 그 진심이 그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거다.


두팔 「야, 너라도 알아줘서 다행이다. 한 명이라도 알아줬으니 이게 어디야. 성공이네.」
영지 「트러플이잖아? 다른 사람들도 말을 안 한거지 다들 알아주지 않을까?」


그래서 그랬을 거다. 다들 알아줬을 거라는 친구의 말에 괜히 찡한 감동을 느꼈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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