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당일 (2)
두둘이와 함께 짧은 영상을 하나 준비했다. 러닝타임은 3분. 그간 우리의 모습들이 담긴 사진을 편집한 영상이었다. 청첩장 업체에서 제공해주는 옵션 중 하나였는데 퀄리티가 나름 쓸만했다.
“널 사랑하나봐~ 사랑에 빠졌어“
조이의 ‘쥬뗌므’가 BGM으로 깔리고, 우리가 같이 데이트를 하던 모습들이 전면 스크린에 커다랗게 띄워졌다. 자전거를 타고 수목원에 가던 날, 옷을 맞춰입고 연남동 맛집을 돌아다니던 날, 프로포즈를 하던 날, 제주도에 가서 야외 스냅을 찍던 날. 엄마 아빠의 아들딸들이 이렇게 예쁘게 연애했습니다 라고 꼭 보여드리고 싶었던 장면들이었다.
동영상 말미에는 두둘이와 같이 영상편지를 넣을까 하다가 참았다. 식장에서 울음이 터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편지 없는 영상을 보는데도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혼났다. 영상편지를 넣었다면 무조건 울었을 거다. 안 넣길 잘 했다.
연애시절을 보여드리려던 우리의 목적은 잘 이뤘으나, 부모님들이 잘 보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영상은 다 보셨는데 말이다. 성에 안 차신 건가.
양가 어머님들의 시간. 샌드 세레모니 순서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두 분은 앞으로 나오셨다. 옥색과 흰색. 두 가지 색의 모래가 각각 유리병에 준비되어 있었다. 어머님들은 유리병을 들어 그 안에 담긴 모래를 커다란 병에 함께 부으시면 됐다.
사회자가 말한다.
정석 : 신랑측 어머님은 흰색 모래를 신부측 어머님은 분홍색 모래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있지도 않은 분홍색 모래를 들라고 하는 사회자. 업데이트 이전 버전의 대본을 뽑아온 거다. 분명히 대본 바꼈다고 했는데. 하아.
정석 : 흰색은 서로를 향한 순수한 마음을, 분홍색은 두 사람이 함께 이룰 행복한 미래를 뜻한다고 합니다.
색깔에 담긴 의미들도 아주 뒤죽박죽. 아이고 정석아.
정석이는 말을 마치고 나서야 모래의 색을 확인하고 본인의 실수를 알았다. 다행히 어머님들이 잘 넘겨주셔서 행사가 덜그럭거리지는 않았다.
두 분 어머님이 퍼포먼스를 마치고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오는데,
아빠 : 아이 거 우리도 궁금한데. 뒤에 있는 사람들은 잘 안 보여. 좀 이렇게 이렇게 보여주지 거.
엄마 : 아유 정말
아빠의 즉석 요청에 엄마는 다시 앞으로 나가 모래가 섞인 병을 높게 들어주셨다.
다음은 나와 두둘이의 차례. 서약서 낭독. 부모님이 우리를 애정으로 키우신 만큼, 우리도 애정어린 가정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크게 유별난 내용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가족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입 밖에 낸다는 게 낯간지러웠다. 가슴이 몽글몽글했고, 기분이 말랑말랑해졌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오늘의 최대 사건.
두팔 : 결혼서약... 흐읍... 끅...
와, 이게 뭐지. 스스로도 놀랐다. 제목 다섯글자를 읽지도 못하고 울컥 차올랐다. 눈물이 왈칵 터져버렸다. 그래, 오늘 종일 너무 감성이 촉촉하다 했다. 하루 동안 쌓여왔던 감정들이 이렇게 훅 넘쳐버렸다. 두둘이는 그런 나를 보고 되려 장난기 어린 얼굴로 연신 울어요?를 외쳤다. 진짜로 우는 나는 두둘이에게 반박하지 못하고 등을 휙 돌려버렸다. 여덟 명의 가족들은 반 쯤은 웃고 반 쯤은 놀라며 웅성거렸다. 나는 사회자를 향해 양팔로 대문자 T를 그리며 타임을 외쳤고, 이러쿵 저러쿵 말할 정신이 없어서 막바로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한 3분 여, 화장실에서 혼자 눈물을 닦고 코를 풀고 진정을 했다. 어머님 두 분이 샌드 세레모니를 하시던 시간만큼, 혼자 화장실에 있었던 거다.
두둘 : 오빠 괜찮아요?
두팔 : 응, 나 곧 나가요.
화장실로 도망간 신랑이 통 오지 않자 신부가 찾아왔다.
정석 : 야 빨리 나와. 뭐해.
사회자도 찾아왔다.
두팔 : 아, 알았다고. 가있어봐 좀.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시뻘개진 눈두덩이와 코 끝은 이미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짧은 새 붓기도 벌써 부어버렸다.
민망한 미소를 띄며,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가족들 앞, 두둘이 옆이었다.
두팔 : 이런 날, 요정도는 또 울어줘야.
흰자위도 빨개진 상태라 눈을 들어 가족들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서약서에 시선을 둔 채 던진 농담이었다. 가족들은 가벼운 웃음으로 화답해줬다.
몇 번은 더 울컥거리긴 했지만, 가까스로 두둘이와 서약서를 다 읽었다. 서로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마주 보고 인사를 하고,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그리고 좌석에 돌아와 앉았다. 돌아오는 그 짧은 길이 참으로 멋쩍었다.
한번 터져버린 눈물은 멎기가 쉽지 않다. 서약서는 어찌저찌 꾹 참고 읽었는데, 더 큰 고비가 찾아왔다. 양가 아버님이 한 마디씩 하시는 시간이다.
먼저 우리 아빠 차례. 아빠에게 마이크가 건네지자,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입을 떼셨다.
아빠 : 결혼 축하합니다.
특유의 묵직한 중저음이 마이크를 타고 방 안을 울리자, 나는 또다시 눈물이 맺혔다. 괜히 고개도 들어보고, 목도 안 마른데 물을 마셔보고. 별짓을 다 해봐도 당최 눈물은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아빠도 그러셨나보다. 감정이 차오르셨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셨다. 결혼 축하한다는 얘기를 하시고 나서 20초 가량. 울컥한 표정으로 마른침만 삼키셨다. 오직 잔잔한 음악만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러더니 불쑥, 사돈댁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머쓱하셨는지 허허 웃으셨다. 좌중은 따라 함께 웃었지만, 그 중 몇몇은 웃음과 함께 눈물도 흘렸다. 내가 그랬고, 우리 엄마도 그랬다.
한 차례의 웃음 뒤, 아빠는 준비하신 스크립트를 보며 말을 이어가셨다. 전 날, 아빠의 요청으로 말씀 참고자료를 만들어 드렸었는데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내용이었다. 이럴거면 뭐하러 아들한테 일을 시키셨지 하는 억울함이 들며 울먹거리던 게 멎었다.
아빠 : 두 분은 변할 겁니다. 심지어 변한 게 또 변할 겁니다. 이상한 일 아닙니다. 정상입니다. 사람을 탓하지 마시고 받아들여 주십시오. 우리네 어머니도...
멎었던 울음이 다시 터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와 두둘이에게 당부의 말씀을 이어가시던 아빠는 할머니 얘기가 나오자 다시 목이 메여 말을 하지 못 하셨다.
아빠 : ...그리하셨습니다.
꽉 깨문 입술, 갈라지는 목소리로 아빠는 간신히 문장을 마치셨고 나는 숨죽여 오열했다.
약간의 당부말씀을 더하며 아빠는 마이크를 넘기셨고, 장인어른은 비교적 차분하게 원고를 읽으시며 우리에게 눈물 닦을 시간을 벌어주셨다. 두둘이는 잔뜩 운 나를 보며 눈짓으로 계속 놀려댔다. 얼굴에 휴지를 붙이고 있다며 또 웃었다. 남의 결혼식에서는 그렇게 울던 사람이 왜 정작 본인 결혼식에서는 찔끔 울고 마는 거야. 왠지 진 기분이었지만, 아직도 숨이 돌아오질 않아 끅끅대고 있는 나에겐 두둘이한테 말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눈물로 마무리 된 본식. 식사를 맛있게 하시라며 사회자가 떠나고,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은 뒤 작가님들도 떠나셨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듯한 자리. 뭔가 잔뜩 한 것 같았는데 채 30분도 안 됐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저녁 식사가 서빙됐다.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엉엉 운 상태였으니 당연했다. 눈과 코와 얼굴이 다 벌겋게 부은 상황. 우리 엄마도 그랬고 동생도 그랬다. 엄마를 닮아서 약간만 울어도 얼굴이 익어버리는 나와 동생. 건너편에 계신 처가식구들 보기가 민망했다. 울기도 우리가 많이 울었지만, 무엇보다 처가식구들은 울어도 티가 잘 안 나는 체질이었다. 우리만 빨갰다.
다행히도 밥은 맛있었다. 차림도 괜찮았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장인어른 장모님은 결혼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부모님이 정이 참 많으신 것 같더라고. 자식들을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더라고. 내가 대답했다. 맞다고. 워낙 자식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분들이라고.
식사가 끝났다. 모든 차례가 끝났다. 두 가족이 차를 타고 떠나시는 걸 배웅하고, 우리는 드디어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고생했다, 고생했다. 서로 토닥였다.
예식장과 회계적인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서, 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에 끝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하룻밤 자고 가자고 얘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호텔로 가는 차편은 동생에게 부탁했다. 한사코 장인어른이 데려다주신다는 걸 끝끝내 사양했다. 장인어른이 사위를 모셔다주는 꼴이 워낙 이상하잖는가. 그래서 동생에게 롤을 줬다. 동생차가 웨딩카가 된 셈이다.
호텔에 도착했다. 남산 힐튼호텔. 예식장과의 거리나 다음날 일정을 생각해 최적의 동선에 있었던 곳이다. 앞으로 매년 결혼기념일에는 전세계에 있는 힐튼을 돌아다니자며 즐거워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우리가 결혼한 날은 공휴일이다! 여행가기 딱 좋은!)
체크인을 하고, 씻고, 편한옷으로 갈아입은 뒤 우리는 호텔을 나섰다. 우리 둘에게는 너무나도 역사적인 날인데, 어디서 축하주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 괜히 나섰다. 배달이나 시켜먹을 걸. 서울 한복판인데 이렇게 문 연 곳이 없다니. 갈 곳이 정말 마땅찮았다. 거의 20분은 넘게 헤맸던 것 같다.
결국 우리가 간 곳은 허름한 치킨집. 치맥이었다. 결혼 축하주가 치맥이라니. 마지막까지 우리답다는 생각을 했다.
둘만의 짧은 축하연을 마치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첫날밤의 달달함 따위는 없었다. 드르렁 코까지 골면서 잠에 빠졌다. 피곤하긴 했나보다.
고되었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났다. 참, 이게 뭐라고. 유별나고 특별한 우리의 결혼이었다.
나, 결혼했다.
나, 이제 유부남이다.
COOKIE : 못 다 한 이야기
결혼 다음 날 오전. 우리는 호텔을 나섰다.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를 뵙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두둘이를 진작 소개시켜드리고 싶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찾아가 뵈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그러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집 근처 절에서 모시고 있어서, 점심 때쯤 우리 부모님과 함께 절을 찾았다. 할아버지를 뵙고 두둘이를 소개하는 그 순간이 또 뭉클했다. 비록 이어진 돈까스 외식은 폭망했지만.
저녁은 처가 식구들과 함께였다. 처갓댁을 찾았는데, 어머님이 이따만큼 한상을 차려주셨다. 장모님은 원래 사위를 든든하게 먹이고 싶어하신다더니, 그게 이건가 싶다. 고생해서 차려주시는 밥상이 늘 감사하다.
밤 9시가 넘은 시각. 우리는 마침내 신혼집에 돌아왔다. 오롯한 우리 둘의 공간. 짧고도 길었던 결혼투어(?)는 이렇게 끝이 났다.
또 그 다음 날. 우리는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다. 신혼여행을 바로 안 갔다. 결혼식도 안 했는데, 굳이 결혼하자마자 바로 신혼여행을 갈 필요는 없지 않냐며 잠정 연기를 한 까닭이다. 직장 동료들은 출근한 나를 보고 결혼하고 온 거 맞냐는 농담을 던졌다. 그냥 하루 휴가냈다가 출근한거 같다며 말이다. 내게는 일생일대의 행사였지만, 남들 눈에는 했나 싶을만큼 조용하게 한 셈이었다.
그래, 내가 원했던 게 이거였다. 남들 눈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지나가는 거.
다행이었다. 우리는 성공했다.
BEHIND : 두둘의 이야기
원래 걱정이 많던 저는 당일에도 계속 걱정 투성이었어요. 비가 많이 오면 사진은 어쩌나, 식 중간에 눈물이 나면 또 어쩌나. 그런데 현실은 걱정과는 너무도 달랐어요. 그 날의 베스트샷은 두팔이와 한 우산을 쓰고 있는 사진이었고, 눈물을 흘리는 건 제가 아니라 두팔이었어요. 저도 찔끔 울긴 했지만, 울고 있는 두팔이를 보면서 웃음이 더 많이 났어요.
두팔이는 회사에서 행사 기획도 여러번 해본 경험이 있고, 꼼꼼하고 야무진 성격이기 때문에 결혼식을 하면서도 아쉬운 부분들을 많이 본 것 같아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즐거워서 계속 업 된 상태였어요. 가족들이 다 같이 꾸미고 있었고, 사진도 찍고, 장소도 너무 예뻤고요. 비가 오긴 했지만 오히려 비냄새가 나서 더 운치있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정말 재밌었어요. 평생 가져갈 즐거운 추억을 만든 것 같아요.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없지도 않았고, 시간에 쫓겨 후다닥 사진 찍고 쫓겨나는 일도 없었고요. 무엇보다 남 결혼식에서는 엉엉 오열하던 제가 제 결혼식에서는 울기보다 더 웃었으니 대성공이었네요. 두둘이의 눈물과 맞바꾼 성공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