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없는 결혼에는 결혼식 있는 결혼에는 없는 특별한 단계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친척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는 단계다.
결혼식이 있다면 굳이 따로 얼굴을 뵐 필요는 없다. 결혼식장에서 만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결혼식이 없다면 자연스레 만날 결혼식장이라는 공간 또한 없기에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결혼식을 안 한다 뿐이지 새로운 가족이 되는 건데 당연히 얼굴은 봐야지.
두둘이와 나는 양친이 모두 계셨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총 4번의 자리가 필요했다. 두둘이네 친가, 외가, 우리네 친가, 외가. (이렇듯 결혼식 없는 결혼이라고 해서 번거로움이 없는 건 아니다.)
무서웠다. 두둘이네 친지 어르신들을 뵙는 자리가 떨렸다. 긴장도 긴장이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더 많았다. 결혼은 하지만 결혼식은 안 한다고 유난을 떨어놓았기 때문이다. 나나 두둘이네 부모님들까지야 그렇다쳐도, 시골에 계신 이모, 고모, 삼촌, 외삼촌들까지 우리의 결정을 지지하고 축하해주시기는 어렵잖는가. 결혼식이 없다는 건 상상도 못 하셨을 거고, 조카의 결혼식에 본인이 초대받지 못 할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 못 하셨을 거다. 웨딩드레스도 안 입히고 조카를 휙 잡아간다는 놈을 어여삐 생각해주실리가 없다. 보쌈이라고 여기실지도 모른다.
성토의 장이 될 게 뻔했다. 대체 결혼식을 안 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말이다. 백 번 양보해서 성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몇 번 혼은 날 거다. 꾸짖으실 거고, 소리도 높아지실지 모른다. 천 번 양보해서 그 날의 분위기가 내게 우호적이더라도, 자리에 모인 십 수 명의 어르신들 중 두 세 분이라도 내게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하실 게 분명했다.
매 맞을 걸 알면서도 매 맞을 자리에 가야만 하는 상황. 그래서 무서웠다. 매 맞을 건 알겠는데, 얼마나 아플지 몰라서. 그게 무서웠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두둘이네 친척을 무사히 뵈었다. 모두 장인어른, 장모님 덕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두 분이 챙겨주셨다.
두팔 : 잘 차려주신 밥상에 숟가락만 얻은 셈이에요 진짜. 너무 감사한데, 너무 송구스러워요.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두둘이네 친척을 뵙고 올라오는 길에 두팔이에게 말했다.
두둘 : 아니에요. 오빠가 잘했어요. 고생했어요 진짜. 엄마 아빠는 그치. 딸이 결혼하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하죠.
두팔 : 아니 그게 뭐에요. 우리가 결혼식을 안 하니까 고생하신 거잖아요. 괜히 더 애 써주신 건데.
두둘 : 어쨌든.
두팔 : 아니 뭐가 어쨌든이에요. 하, 진짜 너무 죄송스럽네.
모든 걸 챙겨주신 두 분께 나는 참으로 송구스러웠지만, 아무래도 두둘이는 나보다 무딜 수 밖에 없었다. 내게는 장인어른 장모님이지만 두둘이에게는 편하디 편한 아빠 엄마니까.
두둘 : 하루종일 오빠가 고생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진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운 자리였을 텐데.
우리는 두둘이네 친가와 외가 인사 전부를 하루에 끝냈다. 한 자리에서 다 뵌 게 아니라, 친가는 점심에 외가는 저녁에 뵙는 식이었다. 공교롭게도 장인어른 장모님은 동향이셨고, 그 두 분의 본가도 아직 같은 동네에 있었던 덕에 효율적인 일정이 가능했다. 친가 어르신 중에서 약주를 하시는 분이 안 계시다는 것도 점심자리로 정하는 데 있어 좋게 작용한 것 같다.
두팔 : 아니에요. 어차피 해야 할 자린데, 이렇게 몰아서 하는 게 더 낫죠. 이틀을 긴장하고 있는 것 보다는요.
피곤하긴 했지만, 내일의 에너지를 바싹 땡겨와서 하루에 다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걸 다 챙겨주셨다. 말 그대로 모든 걸 다. 예를 들어, 일정. 두둘이 친척 어른들과 사촌 언니, 오빠, 동생들의 스케줄과 우리의 스케줄까지 다 맞추어 날짜를 잡아주셨다. 친가에 외가까지 하루에 다 했으니 만만찮은 실무 작업이 필요했을 텐데, 이걸 다 해주셨다. 그러면서 우리를 책망하시기는커녕 힘들다거나 번거롭다는 걸 요만큼도 티내지 않으셨다. 약간의 생색조차 내지 않으셨다. 오직 성인 군자의 마음으로 해주신 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참석하는 사람 수를 헤아려 마땅한 장소를 찾고, 메뉴를 고르는 것까지 필요한 사전 작업을 죄다 해주셨다. 비용도 그렇다. 두 분께서 적이 처리해주신지라 우리에게 지워진 부담은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교통까지 책임져주셨다. 뚜벅이인 우리 때문에 기차역까지 왔다갔다 하는 걸 두 분이 다 챙겨주셨다. 차라리 상전을 모시는 게 더 가벼웠을 지경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송구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일인데,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우리에게 더욱 큰 걸 해주셨다. 압도적으로 감사할 일. 바로 노웨딩에 대한 설득이다.
앞서 얘기했듯, 친지를 뵙는 자리는 새 식구가 될 사람의 얼굴을 보여드리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 맞는 자리였다. 니네는 왜 결혼식도 없이 결혼을 하냐고, 왜 우리를 초대도 안 하냐고, 우리가 남이냐고, 대관절 어느 나라에서 결혼을 이런 식으로 하냐고 혼나는 자리였단 말이다. 모든 어른이 그러지 않으실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일부는 우리를 나무라시는 게 당연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았다.
두팔 : 난 이렇게 아예 한 마디도 안 나올 줄은 몰랐어요.
그러나 내 예상은 완벽하게 틀렸다. 상식이 박살난 자리. 결혼식 없는 결혼에 대한 얘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그 어떤 누구도 이를 얘기하는 이는 없었다.
두팔 : 대체 어떻게 말씀을 하셨길래 이렇게 아무도 말씀이 없으시죠. 이거 맞나요. 나 오히려 더 불안한데.
우리의 결정이 존중받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장인어른 장모님은 얼마나 애를 써주셨을까. 두 분께서 어떤 얘기를 하셨는지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우리는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안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두 분께서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공들여 탑을 쌓아주셨을 거라는 거다.
하긴, 두 분 뿐은 아니다. 낯선 사람들 앞에 서야하는 날 위해, 처제는 현장에서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삼촌A : 그래. 그래서 여기 온 소감이 어떤고? 이렇게 시골집이랑 여기 어른들 얼굴을 다 보고 나니 무슨 생각이 드냐 이 말이다. 한번 말해봐라.
친가 시구들을 만나는 자리. 십 수명을 앞에 둔 상태에서 두둘이네 삼촌 한 분이 익살스레 장난을 치셨다. 생뚱맞게도, 소감을 말해보라고 말이다. 다른 어른들은 삼촌의 장난이 익숙하신 듯 얼굴에 웃음을 띄고 계셨지만, 나는 당황했다. 그래서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무말을 지껄였던 것 같다. 이해하기도 어려우셨을 소리에 어른들의 웃음은 지워졌다. 흥이 깨졌다. 이 때, 처제의 기가 막히게 물꼬를 터주었다.
처제 : 형부! 여기 오자마자 한 얘기 있잖아요. 여기 어른들 다 어떻다고.
와, 그렇지. 내가 그런 얘기를 했었지. 처제, 땡큐.
두팔 : 아하, 그게 다른 게 아니라, 우리 두둘이가 왜 이렇게 예쁜가 했더니 다 어르신들 닮아서 그렇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모든 분이 잘생기고 모든 분이 예쁘신지. 한 분도 안 그런 분이 없이 모두가 미남 미녀라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제가 진짜 엄청난 집안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구면이랍시고 무언가 심리적 연대감이 있었던 걸까. 처제의 어시스트 덕분에 어른들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드릴 수 있었다.
외할머님의 도움도 기억에 아로새겨질만큼 특별했다. 만나자마자 나를 와락 껴안으시며, 웃는 게 참 예쁘다면서 합격 시켜주신 외할머님. 그 덕에 두둘이네 외가 식구들과 함께 한 저녁자리는 처음부터 최상의 분위기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외할머님 : 아이고, 시상에. 어디서 이렇게 이쁜 신랑감을 데려왔대. 내 눈에는 합격이다 합격.
쇼미 체육관 예선이었다면 두 마디만에 합격 목걸이를 걸어주신 격이랄까. 이보다 더 반겨주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도 두텁게 환영해주셨다.
그 날, 나는 충분히 환영받았다. 따뜻한 반김을 받았다. 너무 감사했다. 돌이켜보면 볼수록 감사할 일들만 잔뜩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한 가지 아쉬운 건, 4번의 친지 인사 자리 중에 반 밖에 못 했다는 거다. 우리쪽 친가와 외가 인사는 아직 이루지 못 했다. 날을 잡으려는 시도를 몇 번은 했는데, 그 때마다 이런 일 저런 일이 겹치며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 친척들께 서로를 보여드리려고 했었는데 여전히 미완이라는게 아쉽다. 한 편으로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해야 했던 4번 중 2번을 잘 치렀으니 말 그대로 절반의 성공이지.
두려움에 떨었던 지난 2번의 자리와 달리, 앞으로 있을 2번의 자리는 조금의 걱정도 되지 않는다. 이미 결혼했는데 뭐 어쩌겠어 하는 마음이 아니다. 두둘이에 대한 크나큰 믿음 때문이다. 두둘이는 선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이라, 이런 사람을 나쁘게 보는 이는 없을 거다. 혹여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 문제다.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는 법이니까.
이렇게 맹목적인 신뢰를 갖게 해준 내 아내 두둘에게도 참 감사하다. 두둘이에게 매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정말 결혼을 잘 했다. 정말 정말 잘 했다.
BEHIND : 두둘의 이야기
사실 결혼식을 안 하고 직계가족끼리 식사하는 걸로 대체한다 했을 때 친척들이 좀 서운해하기는 했어요. 워낙에 자주 모이는 집이거든요. 사촌들끼리도 해외여행을 기획해서 다녀올 정도로 친밀하고요. 어떤 사촌언니는 자기도 가족인데 왜 못 가냐고 뭐라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더더욱 결혼 전에 친지들한테 두팔이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만나보면 두팔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 테니까, 약간이나마 아쉬운 마음을 완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지방에서는 결혼 전에 그 지역에 사는 친척들에게 피로연을 열기도 한다 하더라고요. 제주도 같은 곳도 그렇대요. 타 지역에서 결혼하는 자녀가 있으면 그 지역으로 친지들을 모시기가 힘드니까, 또 멀리 이동하면 어르신들은 많이 힘겨워 하실 테니까 따로 식사 자리를 만들기도 한대요. 알고 보니 저희 부모님도 그런 경험을 하셨고요. 그래서 친척들 모시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데에 모두가 같이 뜻이 맞았던 것 같아요.
하루에 2번을 한꺼번에 하는 건 고민이 조금 됐었어요. 저한테는 익숙한 사람들이고 제 가족이고 친척들이지만 두팔이가 많이 힘이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도 그랬을 거에요. 그래서 그런지 두팔이는 올라가는 기차에서 바로 골아떨어지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힘든 내색 없이 분위기를 잘 맞춰준 두팔이에게 정말 고마워요. 나중에 전해들은 얘기지만, 아니나 다를까 다들 두팔이를 좋게 보셨대요. 제 생각대로 딱 됐지 뭐에요. 히히.
이제는 제가 힘들 자리가 남았어요. 두팔이네 친지 인사요. 두팔이는 남은 두 번의 자리가 조금의 걱정도 안 된다 했지만 저는 걱정이 가득이에요. 가뜩이나 저에겐 어려운 시댁 식구들인데, 결혼한 지 1년이 넘어서야 인사를 드리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이번에도 저는 두팔이를 믿어요. 두팔이에게 의지해서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