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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Oct 04. 2023

우당탕탕 화환 구하기 대작전

예식장 꾸미기

두팔 「근데 혹시 실례지만...」
성기 「뭐야」
두팔 「너희 회사에서 화환 하나만 해줘라」


친구에게 다짜고짜 연락을 했다. 결혼 축하 화환 좀 보내라고.


성기 「아니 무슨ㅋㅋㅋㅋ 가족끼리 하는데 화환이 왜 필요해」


친구의 당연한 반응. 신랑 신부 빼면 딱 8명이서 밥만 먹으면서 결혼을 한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화환 같은 게 필요할 턱이 없는데 왜 갑자기 화환을 보내라고 하나.


두팔 「내 말이ㅋㅋㅋ 결혼식도 안 하는데 화환이 필요하게 됐다」
성기 「주소 보내봐」


고맙게도 친구는 꼬치꼬치 이유를 묻지 않고 바로 그러겠노라 했다.


오케이. 이걸로 화환 한 개 더 추가 완료. 앞으로 몇 개 남았더라.



애초부터 화환은 하지 않기로 했었다. 당연했다. 결혼식을 안 하는데 무슨 화환.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하며 위세를 드러낼 하객들도 없었고, 전형적이고 식상한 허례허식들은 싹 다 들어내자고 우리끼리도 충분히 얘기를 해놨었다.


두팔 : 아빠. 그 혹시... 갑작스럽지만 어디서 화환들 좀 구할 데가 있을까요.
아빠 : 허어, 아빠는 벌써 화환 안 받는다고 다 얘기해놨는데?
두팔 : 하아아... 역시 그렇죠? 엄마도 똑같으시겠죠?
아빠 : 그렇지. 지금 와서 그러기가 좀 그렇지. 왜, 뭐 때문에 그러는데.


난감하기는 부모님도 마찬가지. 회사 동료에게도 친구에게도 우리 아들내미가 결혼을 하지만 결혼식은 안 하기로 했으니 너가 올 자리는 없다, 라고 요상하게 자혼을 알린 것도 넘어서, 화환이라도 보내겠다는 사람들에게도 야, 하객도 없다니까 무슨 화환이야, 우리 그런 환경파괴 안 하기로 했다, 라고 호언장담을 한 상태인데, 이제와서 야 미안한데 화환은 좀 다시 보내줘야겠다, 라고 말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두팔 :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해보고, 혹시나 다시 도움 청해야 할 일이 생기면 전화드릴게요.


별 수 있나. 결혼식 안 하겠다고 한 건 난데. 이리저리 해봐야지.


결혼을 닷새 남겨두고, 우당탕탕 화환 구하기 대작전이 시작됐다. 필요한 화환 개수를 대략 뽑아본 뒤, 두둘이쪽에서 끌어올 수 있는 화환을 뺀 나머지 만큼을 내가 동원해야 했다. 화환을 보내주겠다고 했었지만 거절했던 친구들에게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고, 회사에 연락해서 화환이 필요하게 됐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고 직접 주문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신성한 장소를 거짓으로 꾸미는 기분이 들어서 내키지 않았다.


다행히 모든 사람이 내 번거로운 부탁을 들어주었고, 결혼 당일, 화환은 부족함 없이 세워졌다.



다시 말하지만, 애당초 우리가 그리는 결혼식에 화환은 없었다. 이토록 촉박하게 화환을 여기 저기서 끌어와야 했던 건 일종의 사고였다. 사고의 원인은 좋게 말하자면 미스커뮤니케이션과 준비 부족 때문이었고, 마음 가는대로 말하자면 전적으로 업체 탓이었다.


결혼할 곳을 고르기 위해 답사까지 거쳐 결정한 곳, 심청루(가칭). 풍경도 예뻤고 위치도 좋았다. 때도 좋았다. 예약한 시간대는 느즈막한 오후. 뜰의 낮과 밤을 동시에 즐길 수 있을 거였다.


문제는 실내의 크기였다. 열 명이 밥 먹는 곳으로는 지나치게 컸다. 본디 스몰웨딩이나 셀프웨딩, 전통혼례 등에 많이 쓰이는 홀이었고, 60명까지 충분히 수용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 밥상만 하나 덩그러니 두어서는 너무 휑해보일 게 뻔했다.


두둘과 나는 결혼 당일에 그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무엇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함께 그렸다. 고민 끝에 나온 우리의 답은 파티션이었다.

결혼 준비 당시 우리가 계획했던 행사장 모습. 우측 <참고3>의 빗금친 네모가 파티션이다.


목적은 단순했다. 아늑하게, 고급지게, 있어보이게. 너무 휑해보이지 않게.


우리가 쓸 곳은 직사각형 형태의 네모난 공간이었는데 출입문을 열면 그 공간이 한눈에 전부 들어왔다. 마치 소변 보는 사람이 문밖에서 쳐다보이는 남자화장실 같은 느낌. 그래서 우리는 우선 들어서는 입구에서 공간을 직접 볼 수 없도록 파티션을 세우고자 했다. 몇 걸음 정도 걸어야 비로소 공간이 보이도록 말이다. 이렇게 하면 그 공간은 조금 더 비밀스럽고 특별해지게 되니까.


또한 그렇게 세운 파티션을 중앙에 있는 식탁 기준으로 뺑 둘러서, 식탁에 앉은 사람들에게 그 공간이 집중되도록 했다. 눈에 들어오는 면적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황량하지 않고 아늑하게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음식이 나오는 주방 입구를 가려 분위기를 산만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했고.


물론 이렇게 하려면 파티션이 여러 개 필요하다. 못생긴 사무용 파티션이어도 안 되고, 한옥스럽게 곱고 품격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병풍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는 가림막이 필요했다.


너무 다행스러웠던 건 심청루에 그게 있다는 거다.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건데 럭키였다. 하단은 단단한 원목으로, 상단은 상단은 창살 형태로 짜진 나무틀에 한지가 발라져있는 파티션 비슷한 게 몇 개 있다고 했다. 크기와 수량을 따져보니 아슬아슬했지만 아쉬운대로 우리가 생각한 그림을 얼추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가 비용도 없댄다. 그냥 갖다 쓰면 된댄다.


우리는 기분 좋게 계약금을 넣었다. 일이 술술 풀린다고 생각했다.


그래, 사고가 예고 없이 찾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결혼을 닷새 앞둔 날 오전. 심청루에서 연락이 왔다. 당일에 그 공간을 어떻게 꾸밀 건지 미리 알려달라는 거였다. 그래야 테이블을 갖다 놓는 등 세팅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우리는 결혼계획서를 마련해둔 상태였고 위 그림처럼 배치도까지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심청루에 지체 없이 자료를 송부했다.


잠시 뒤, 전화가 걸려왔다.


심청루 : 신랑님, 여기 심청루인데요.
두팔 : 네, 안녕하세요! 그렇잖아도 쫌 전에 메일로 자료 보내드렸는데, 혹시 안 갔나요?
심청루 : 아니요, 잘 왔어요. 그런데 여기 파티션이 있던데요.
두팔 : 네, 맞아요.
심청루 : 파티션은 신랑님이 가져오시는 건가요?


와, 이게 무슨 소린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소린데.


두팔 : 네? 아니요? 저번에 상담할 때, 거기 있는 거 쓸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심청루 : 네? 저희한테 파티션이 있다고요?
두팔 : 네! 갯수가 좀 부족할 수는 있지만 몇 개 있다고 당일에 그냥 갖다 쓰면 된다고 하셨는데요?


통화를 하는 직원분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셨다.


심청루 : 이상하다. 저희한텐 그런 게 없는데. 금방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쫄렸다. 갑자기 파티션이 없다고 하면 어떡하나 겁이 났다.


하지만 금방 멘탈을 잡았다. 그래, 뭐, 일을 하다보면 직원들끼리 서로 공유가 덜 되는 경우도 많잖은가.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라며 말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심청루에서 다시 온 연락에 내 걱정은 현실이 됐다. 파티션, 그런 거 없단다.



누구의 탓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최소한 수 십 일은 확인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우리의 잘못일 수도 있고, 없는 걸 있다고 했거나 또는 있지만 확인을 못 한 업체의 잘못일 수도 있다. 허나 잘잘못을 따질 시간이 없었다. 어서 대안을 짜내야 했다. 불과 닷새 뒤, 결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우선 단순하게, 파티션이 없다고 하니 직접 파티션을 주문할 생각을 해봤다. 표준적인 너비와 높이의 파티션들을 주문하면 기간 내에 배송될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시간과 날짜를 지정해서 배송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심청루와 별도로 협의가 다시 필요했고, 출고일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큰일이 나는 거였다. 비용도 꽤 많이 들었고, 한 번 쓰고난 파티션을 처치할 방법도 마땅찮았다. 생긴 게 투박해서 우리 분위기에도 영 어울리지 않았다.


커다란 휘장도 생각했다. 사극에 가끔 나오는 장면인데, 머시기 잔치를 할 때 연회장 주변을 비단 같은 휘장으로 휘이익 두르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생각하면 초안보다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적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설치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사람이 필요한데, 그럴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청루에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그거대로 또 협의를 해야 하는 일. 또한 휘장이란 건 실제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막상 설치했을 때 느낌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 다를 위험성도 있었다. 배송 지연 문제도 여전했고.


그 밖에도 이런 저런 방법들을 떠올려봤다. 웨딩 테이블을 실내에 놓고 꾸밀까, 하얗고 커다란 크로마키 스크린을 사방에 걸까, 현수막을 주문해서 휘장처럼 쓸까 등등. 뭐 하나 마음에 쏙 드는 방안은 없었고, 대안을 마련할 시간은 촉박했다.


그래서 결국 화환을 택했다. 화환을 늘어놓고 파티션처럼 쓰자는 아이디어다. 제일 무난하고,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어쨌든 꽃이니까 분위기에 잘 어울렸고, 시간을 지정해서 받아볼 수 있었으며, 배송지연 같은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당탕탕 화환 구하기 대작전을 해야 했던 전말이다.



살다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잘 됐는데, 정작 결과가 신통찮을 때. 반대로 그런 경우도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나왔는데, 의외로 결과가 좋을 때. 우리의 결혼은 후자였다.


처음 생각과 달리 우리는 화환을 잔뜩 했다. 하객은 0명, 밥 먹은 건 10명, 그런데 화환은 20개 가까이 됐다.


두팔 : 사람보다 화환이 많네요.


이런 결혼은 듣도 보도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렇지만 꽤 괜찮았다. 비록 처음 계획했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늘어선 화환들은 허례허식으로 보이지 않았고, 밝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공간은 풍성하고 꽉 차보였고, 잔치를 한다는 느낌도 확실히 났다. 여담이지만 우리는 심청루와 계약할 때 꽃장식 옵션을 거의 다 뺐었는데, 그래서 화환으로 꽃이 빼곡했던 게 한층 더 빛났던 것 같다. 뭐, 꽃이야 많으면 많을 수록 좋아보였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예뻤으니 됐다.

전화위복이 됐던 화환들


COOKIE : 못 다 한 이야기

웨딩 업체를 끼고 결혼식을 한 게 아니다 보니, 미주알 고주알 모든 걸 다 직접 챙겨야 했다. 화환 역시 그러했다.

우리가 결혼하던 날, 하늘에서는 비가 흩뿌렸었다. 폭우가 쏟아진 건 아니지만 옷을 적시기에는 충분했다.

심청루에 도착했을 때, 벌써 도착한 몇 개의 화환은 야외에 세워져 있었다. 심청루에는 화환을 실내에 둘 거라고 말해놨었지만 배송기사님들께는 미처 얘기하지 못했고, 기사님들은 화환을 실내에서 파티션처럼 쓸 거라는 생각은 못 하시고 늘 하던대로 밖에 세워두셨을 거다. 덕분에 화환은 비에 젖었다.

문제는 쌀화환이었다. 쌀화환은 실제 꽃이 아니라 꽃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배경으로 쌀포대가 놓인 형태였는데, 비가 오니까 인쇄된 종이가 다 젖어서 찢어진 거다. 지금이야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웃으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그 때는 무책임하게 버려두고 간 화환업체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덕분에 좋은 거 하나 배웠다. 결혼에는 현장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앞으로 결혼을 다시 한다면(?) 현장에 일찍 도착해서 상황을 진두지휘할 관리자 한 명을 꼭 섭외할 거다. 화환이 비에 찢기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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