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장밥 Oct 08. 2023

하객은 없었는데요 사회자는 있었습니다

사회자 섭외하기

두둘 : 저기...
두팔 : 앗, 네! 혹시 두둘..씨?


파스타집 앞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파스타집은 소개팅의 정석. 그래, 우리는 소개팅을 했더랬다.


몇 차례의 애프터를 거쳐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몇 달의 연애를 거쳐 예비 부부가 되었다. 결혼을 하기로 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무하객 노웨딩 결혼을 말이다.

파스타. 두둘이가 좋아한다.



노웨딩 결혼.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다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었지만, 선례가 없다는 것이 좋기도 했다. 따라야 하는 관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걸으면, 그게 곧 길이 되었다. 우리는 온전히 우리만을 위한 행사를 함께 그렸다. 대강의 스케치부터 세세한 채색까지 우리만의 색깔로 그려나갔다.


두팔 : 근데 우리 결혼할 때, 우리가 직접 ‘결혼을 시작합니다!’하는 건 좀 웃기지 않아요?
두둘 : 맞아요, 그건 좀 웃겨요. 그렇다고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하시는 것도 좀 이상한데요?
두팔 : 그쵸? 그러면 MC를 불러야겠다.
두둘 : 그것도 웃긴데요? 손님이 한 명도 없는데?
두팔 : 어쩔 수 없죠 뭐. 그 사람이 감당해야지.


두 식구가 밥을 먹는 자리. 한 명의 하객도 없는 자리. 사회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 했었다. 하지만 당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 해보니 아무래도 누군가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둘 : 누구 부를 사람 있어요? 아니면 전문 MC를 불러야 하나?
두팔 : 정석이요. 정석이가 하기로 했어요.


단숨에 생각난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결혼의 사회자는 무조건 그 사람이었다.


두둘 : 뭐야. 언제 얘기했어요? 시간 된대요?
두팔 : 아뇨? 아직 정석이는 몰라요.
두둘 : 에?
두팔 : 얘기 안 했는데요? 그렇지만 걔가 해야죠 뭐. 할 거에요 걔.
두둘 : 이게 뭐람? 하아, 밥이라도 사주면서 부탁해요.



지글지글. 보글보글. 삼겹살 굽는 소리와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고기집. 각기 다른 음식들이 어우러지는 것처럼 우리도 같이 저녁을 하게 됐다.


두팔 : 야, 왜 이렇게 늦게 오냐. 일을 너 혼자 다 하냐.
정석 : 아니, 퇴근 할라고 하는데 갑자기 일이 떨어져서. 아 뭐 그렇게 늦지도 않았고만!


십 년을 훨씬 넘은 사이. 정석이와 나는 대학교 과 동기다. 그냥 동기가 아니라 가장 친한. 내게 대학 생활 중 가장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정석이를 얘기할 수 있다. 말하다 보니 정정해야겠다. 정석이는 친구다. 동기가 아니라.


정석 : 아우, 예, 형수님. 이렇게 또 뵙네요.
두둘 : 그러게요. 안녕하세요.


정석은 두둘과도 아는 사이다. 직장 동료는 아니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참 공교롭다. 직장도 다른데 어쩌다가 같은 사무실을 쓰게 됐나. 그 이유인즉슨, 정석이네 회사가 두둘이네 회사에서 몇 명을 파견 받았고 하필 두둘이 거기에 지원했다. 그 탓에 두둘은 본사에서 100km가 더 떨어진 곳으로 파견을 나갔고 정석이네 옆 팀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세상 참 좁다.


정석 :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오셔서 좀 외로우시겠어요. 친구도 없고.
두둘 : 친구는 없지만, 두팔이를 만났으니까 괜찮아요.


한편, 두둘이와 내가 만날 수 있던 것도 두둘의 파견 덕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도 정석이네와 같은 동네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둘이가 본사에서 계속 일을 했더라면 아마 주선자가 소개를 시켜주지 않았을 머나먼 거리. 파견 덕에 만난 사람과 결국 결혼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나름 성공한 파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두둘 : 제가 두팔이 여자친구라는 걸 아셨을 때는 좀 놀라셨겠어요.


나도 그렇고 두둘이도 그렇고, 우리는 연애를 한다는 얘기를 주변에 거의 하지 않았었다. 연애 안하냐는 말도 슬쩍 넘겼고, 소개팅 시켜주겠다는 말들도 능구렁이처럼 뭉갰다.


정석 : 와, 진짜. 아니 그 분이 그 분이냐고, 제가 계속 물어봤다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연애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고, 두둘이와 나를 동시에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딱 둘 뿐이었다. 우리를 소개시켜준 주선자, 그리고 정석이.


두팔 : 하여튼 축하해. 니가 우리 결혼의 사회를 맡게 됐어.


이런 상황에서 사회자로 다른 사람을 떠올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가장 친한 대학 친구이자 우리 둘을 모두 아는 유이한 사람.


정석 : 야, 아니 결혼식도 안한대매.
두팔 : 근데 사회는 있어.
정석 : 미친놈아냐 이거. 결혼식이 없는데 왜 사회가 있어.
두팔 : 있다니까.


상식적으로 이상한게 당연하다. 결혼식이 없는데 사회자가 왜 필요한가. 그래,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당일 모습을 그려보기 전까지는.


정석 : 아니, 그래. 알겠는데 날짜라도 말하고 시키든가.
두팔 : 아 맞네. 날짜도 얘기 안 했구나. 10월 9일이야.


정석이는 휴대폰을 들어 스케줄을 확인하더니, 약간 주저하는 듯 하다가 알겠노라 답했다. 그 주저함의 이유를 나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된다.


정석 : 그래, 해야지. 이런 기회를 주는데. 야 영광이네. 가족들만 있다며.
두팔 : 맞아. 니가 가족 아닌 유일한 사람이다.
정석 : 대체 근데 사회가 왜 필요하냐. 내가 뭘 해야 되는 거야.
두팔 : 대본이랑 이런 건 다 써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야 거기서 뭐 장난치면 안 된다 진짜. 아무것도 하지마. 그냥 내가 써준 거 읽기만 해줘 제발.
정석 : 야하, 재밌겠는데? 기대해라.
두팔 : 아 제발


정석이는 내게 겁을 줬다. 결과적으로 당일에는 아무런 애드립 없이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했지만, 장난칠 생각은 진심이었다고 한다.


참, 밥 얘기도 해야 한다. 엄마 심부름이었다. 손님인데 밥은 먹이고 보내야 한다며 꼭 밥 얘기를 물어보라고 했다.


두팔 : 근데 그 날 밥은 어떡할래. 먹고 갈래?
정석 : 식당이 따로 있어?
두팔 : 아니? 우리랑 같이 먹어야지?
정석 : 야, 잠깐만. 그러면 너랑 너네 아부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동생? 그리고 형수님네 있고? 그럼 한 열 명 되냐?
두팔 : 응, 너까지 하면 열한 명이네.
정석 : 거기서 밥을 먹으라고? 체할 일 있냐? 너 같으면 먹겠냐?
두팔 : 아니, 난 안 먹지.
정석 : 나도 안 먹지! 거기서 어떻게 먹냐.
두팔 :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근데 엄마가 너 밥 먹이고 보내야 한다고 계속 그래서 물어본거야. 엄마한텐 내가 잘 말할게. 당일에도 밥 먹고 가라고 하실 거 같은데, 그건 니가 알아서 잘 거절하고.


이로써 관객 없는 무대의 사회자가 무사히 구해졌다.



당일은 실수의 연속이었다. 예컨대 정석이는 시작부터 지각 아닌 지각을 했다. 계획했던 시간 보다 예식을 더 빨리 시작하게 됐던 탓이니까 본인 입장에서는 억울할만 하다.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 왔는데, 이미 그곳에는 곱게 차려 입은 신랑 신부와 그 가족들이 가지런히 착석을 해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비까지 내리던 탓에 오는 시간도 더 걸렸을 거고.


지각 아닌 지각을 한 것과 달리 대본을 틀리게 읽은 것은 순전히 정석이의 잘못이다. 하필 어머님들이 나서시는 샌드 세레모니 순서에서 말이다. 우리가 어머님들께 부탁드린 유일한 코너였는데. 물론 어머님 두 분이 노련하게 넘기셔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진행되긴 했다.


그러한 실수들이 해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일 행사에 풍미를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프로 냄새가 나는 전문 진행자는 조용하고 단아한 가족 저녁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을 거다. 그런 사람을 섭외했었다면 붕 뜬 느낌이었을 거다. 적임자는 오직 정석이 뿐이었다. 나의 가장 친한 대학 친구이자 두둘이의 사무실 동료였던 정석이의 인간미 덕에 우리는 더욱 흥겹게 자리를 즐길 수 있었다.


엄마 : 밥 먹고 가요. 밥은 먹고 가야지.
정석 : 아이고, 아닙니다 어머니. 식구분들끼리 맛있게 드셔요. 말씀만은 정말 감사합니다. 두팔이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밥을 먹고 가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 하고, 정석이는 자신의 역할을 잘 마치고 자리를 떴다.


두팔 : 야, 그리고 이거. 차비만 좀 넣었다.


정석이를 배웅하기 위해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물 밖, 처마 밑. 떠나는 정석에게 봉투를 쓱 찔러주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전문 MC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두툼하게 넣은 봉투였다.


정석 : 어이, 담에 보자. 축하하고.


정석이는 내게 또한번 축하를 건내고 떠났다. 내심 내가 보는 앞에서 봉투를 확인하길 바랐는데, 아무리 격의 없는 사이여도 그건 좀 무리였나보다.


그런데 분명히 돌아가는 차 안에서라도 확인했을 거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는 내가 결혼한 지 1년이 됐는데, 지금쯤이면 분명히 액수를 확인했을 텐데? 얘 왜 아무 말이 없지? 왜 이렇게 많이 넣었냐는 말이라도 한 마디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많이 챙겨줬는데? 내 마음을 못 받았나?


억울해서 안 되겠다. 야, 너 이거 읽으면 연락해라.


둘도 없는 고마운 사회자와 한 컷


COOKIE : 못 다 한 이야기

결혼을 하고 아주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정석이는 우리의 결혼을 위해 나름 큰 희생을 했었다.

정석 : 야, 그 주에 나 가족여행 있었어.
두팔 : 주중에 무슨 여행이야.
정석 : 뭔 소리야, 그 때 일요일이었는데.
두팔 : 아 맞네. 뭐야 그럼. 여행 끝나자마자 바로 왔던 거야?
정석 : 아니, 여행 중이었다고.
두팔 : 뭐? 여행 중이었다고?
정석 : 그래! 여행 중에 나만 먼저 올라왔다고. 심지어 통영이었는데!!
두팔 : 와, 이건 쫌 감동이네. 엇, 아니지. 그러게 왜 그 때 여행을 가.
정석 : 야이씨. 한참 전에 잡혀있었는데 뭔 그 때 여행을 가야. 숙소고 뭐고 다 예약해놨었는데. 가족여행 중에 내가 어? 통영에서 서울까지! 기차 타고 택시 타고!! 양복도 통영까지 가져가서 입고!! 야, 내가 그렇게 가준 거라고!!!
두팔 : 오, 그래, 고맙다.
정석 : 반응이 이게 다야?

결혼 날짜를 들었을 때, 정석이가 약간 주저하던 건 조정이 어려웠던 가족 여행 때문이었다. 고맙게도 정석은 가족과의 시간 일부를 떼어내면서까지 우리의 결혼을 함께 만들어주었다.

우리의 결혼이 무사히 끝난 건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정석이가 그래준 것처럼,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이었다. 다시 한 번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전 13화 우당탕탕 화환 구하기 대작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