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결혼 공지하기 (1)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하니 많은 것들에서 해방되었다. 특히 하객과 관련된 요소들이 크게 체감되었다. 예컨대 청첩장이 그러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은 청첩장에서 꽤나 많은 고민들을 한다. 청첩장 디자인을 고르거나, 발행 부수를 정하고, 손품을 들여 만드는 것에서도 그렇지만, 단연 제일 많이 골머리 썩는 건 청첩의 범위다. 누구에게까지 청첩장을 드려야하는지 말이다. 아주 가까운 사이거나, 차라리 아주 먼 사이면 모르겠는데, 그 중간쯤 되는 어중간한 사이가 문제다. 청첩장을 주자니 괜히 돈 뜯어내는 사람이 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청첩장을 또 안 주자니 괜히 섭섭해할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아주 애매하다.
결국 이루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결혼을 알리지 않을 생각까지 했었다. 결혼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는 게 아니라, 결혼하고 나서 그 소식을 알리면 어떨까 했다. “저 사실은 지난주 금요일에 결혼했어요.”라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깝다. 나름 꽤 재밌었을 텐데.
청첩장이라는 건 말 그대로 자리를 ‘청’하는 초대‘장’인데, 우리는 결혼식이 없으니 하객을 초대할 자리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청첩장을 만든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다만 결혼을 사후에 알리는 게 아니라 미리 알린다면, 무언가 도구가 필요하긴 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그랬다.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말로 알릴 수는 없으니, 뭔가가 필요하긴 했다.
우리 회사 직원의 결혼소식은 보통 두 가지 경로로 공유된다. 첫째, 공지게시판이다. 사내 업무망 인트라넷 공지게시판에 직원들의 경조사가 공유되는데, 대개 경조사 당사자가 속한 부서의 막내 직원 또는 서무가 게시글을 작성해 올려준다. 둘째, 청첩장이다. 직원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친분이 있는 동료, 상사, 후배들에게 청첩장을 나눠준다. 은근히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연차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나 역시 결혼 안내를 특이하게 홍보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사내 공지게시판을 통해 알리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결혼과는 그 형식이 달랐기 때문에, ‘청첩장’이 아닌 ‘결혼안내장’으로 읽혀야 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워 회사사람들에게 우리의 결혼을 안내하게 되었다.
강조 포인트는 둘이었다. ‘노웨딩’과 ‘결혼’.
공지게시판에는 간간히 직원들의 결혼 공지가 올라오기 때문에, 가볍게 스쳐지나가면 ‘노웨딩’결혼이라는 걸 놓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놓치게 되면 쓸 데 없는 오해들이 생길 수 있다. 가령 회사에서 화환이나 경조사기를 보내준다거나, 본인에게는 청모도 청첩장도 없었다며 서운해한다거나. 그래서 결혼식이 없다는 걸 분명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결혼’도 내가 강조해야 할 부분 중 하나였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을 모월 모일 모처로 초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는 결혼한다는 그 자체를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그간 회사사람들에게는 연애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정말 단 한 명에게도!), 정략결혼이나 계약결혼이 아닌 멀쩡한 결혼이라는 것도 알려야 했다.
청첩장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많은 번뇌에서 해방된 것은 분명하나, 남들은 다 하는 걸 안 하니까 오히려 신경을 써야할 것도 있었다. 청첩장을 충분히 드릴만한 분들께 ‘청첩장이 없음’을 말씀드리고, 청첩장을 드리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게 그러했다. 윗세대들은 청첩장을 주지 않는 것에 내심 크게 서운해하셨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시간이나 장소를 안내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객이 없는 결혼을 한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그래서 언젠데? 어딘데?’하며 시간과 장소만 읽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기에, 혹시 모를 불상사(예고없이 찾아오신다든지)를 예방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는 알리지 않았다.
애초에 노웨딩 결혼을 정하면서 축의금 욕심은 버리기로 했었기 때문에 계좌번호는 빼기로 했다. 우리의 결혼 안내가 축의금 독촉으로 오해 받을까 걱정되었고, 만에 하나 꼭 축의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카톡으로라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한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닌데. 작은 거 탐하다가 큰 거 잃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회사용 결혼안내는 부모님과는 무관한, 완전하게 내 인간관계였기 때문에 이 부분은 큰 부담 없이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이다. 어쩌면 고압적인 통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때 결혼을 할 건데, 아 됐고, 아무도 오지 말고, 그냥 알려는 주는 거야, 그렇게 알아, 라고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규모 웨딩을 하고 싶어서 회사 사람들은 싹 배제하는 걸로 보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했다. 보통의 결혼식을 했다면 하지 않았을 걱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이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위트있게, 동시에 겸손하게 보이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우리 팀 서무님께 부탁드리지 않고 직접 올렸고, 중의적으로 읽히는 부분이 있을까 싶어 퇴고에 퇴고를 반복했다.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유머도 한 스푼 얹었다. 진심이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각고의 고뇌 끝에 만들어진 회사용 결혼안내글이다.
제목에서부터 ’무하객’과 ‘노웨딩’을 강조했다. 대개 <ㅇㅇ팀 ㅁㅁㅁ의 결혼 안내>의 꼴로 글이 올라왔었기 때문에, 분명히 임팩트 있는 제목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플로우를 위해 ‘친환경’이라는 말도 괜히 껴넣었다.
형식은 손편지를 택했다. 진심을 전하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의 모습이 담긴 여행 스냅샷을 활용해 사진 엽서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지독한 악필인지라 차마 진짜로 손글씨를 쓰지는 못 하고 손글씨 느낌이 나는 폰트를 썼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직접 쓴 줄 알더라는 후일담을 듣기도 했다.
손편지 밑으로 Q&A 방식의 글을 올렸다. 너저분하게 늘어지지 않으면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들을 명확히 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하객이 없고, 결혼식이 없으며, 청첩장도 없음을 힘 있게 안내할 수 있었다. 친척도 모시지 않는다는 것, 피로연도 없다는 것, 화환도 안 받는다는 것 등도 함께 껴넣어 안내했고, 글의 말미에는 신부에 대한 애정을 애교있게 표현하며 밝게 마무리하고자 했다.
잘 만들어졌을까. 글을 올릴 때까지, 그리고 글을 올린 후에도 오랫동안 콩닥거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우리의 결혼안내문은 기존 결혼안내문의 틀을 깬 파격적이고 유쾌한 글로 직원들 입에 오르내렸고, 다른 글에 비해 평균 3~4배 이상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안내글을 본 직원들이 ‘노웨딩 결혼’이라는 걸 분명하게 인식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글을 올리고 난 뒤, 예전에 모셨던 상사들께 찾아가서 인사도 드렸다. 칭찬과 축하를 함께 받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3주 뒤, 나는 결혼안내문을 다시 한 번 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