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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Oct 06. 2023

노웨딩 결혼,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타임 테이블 : 결혼 당일 기획하기

최초의 생각은 무(無) 또는 공(空)이었다. 아예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게 내가 그리는 결혼식이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해서 뭔가를 한다면, 새로 식구가 된 사람들이 식당에서 밥 한 끼 하는 것정도. 그걸로 갈음하려고 했었다.


그러던 게 약간 바꼈다. 투 두 리스트.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둘이나 부모님 등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초안과는 달리 하다못해 케익에 초 꽂고 불이라도 붙이는 걸로 얘기가 됐다. 디테일한 과정이나 상세한 이유 같은 건 앞에서 이미 길게 설명했으니 여기에선 생략하자.


결정해야 했다. 결혼 당일에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할 건지 말이다. 예컨대 정말로 케익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다면, 그 케익은 어디서 사올 건지, 초에 불은 누가 붙이고 누가 후 불 건지, 생파처럼 조명도 끄고 폭죽도 터트릴 건지 등등 말이다. 하객은 없지만 일종의 가족 행사였기 때문에 행사 기획이 필요했다.


이에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우리만의 원칙에 따라, 케익을 넘어선 행사 기획을 하게 된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다. ‘해야 하는 것’을 없앴다. ‘남들이 하니까’는 우리에게 결코 이유가 되지 못했다. 오직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로 했다. 그 결과, 우리가 하기로 한 건 다음과 같다.


고민의 흔적들. 언뜻 봐도 일반적인 결혼식과는 꽤 많이 다르다.


개식선언

'개식선언'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있어보이지만 실상은 '요이땅'하는 거다. '지금부터 두둘이랑 두팔이랑 결혼식 시작합니다!'라고 외치는 거다. 별 거 아니다.


그런데 이게 별 거 아니기는 했지만, 애매했다. 결혼을 하는 당사자들이 시작을 외치는 것도 이상했고, 그렇다고 누구네 엄마나 아빠한테 드리기에도 좀 어색한 역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부르기로 했다. 마침 기가 막힌 인연이 있었다. 두둘과 인맥이 겹치는 한 사람. 그 사람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이왕 부르는 거, 겸사겸사 사회까지 맡기면서 말이다. 사회자가 없었더라면 내가 다 해야했을 텐데, 휴, 큰 짐 하나 덜었다.


영상

가급적 이런 거 저런 거 다 하지 말고 최대한 심플하게 하자고 했었지만, 도저히 영상은 안 만들 수가 없었다. 부모님들께 우리의 지난 모습들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둘 다 부모님께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거나 살갑게 치대는 편이 못 되었다. 그러니까 내 아들이 예비 며느리와 또는 내 딸이 예비 사위와 데이트했던 에피소드들을 들으신 적도 없을 거고, 그런 모습을 보신 적은 더더욱 없으셨을 거다. 그래서 이번 행사를 기회 삼아서 그간 우리가 쌓아왔던 추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비록 우리가 사진을 즐겨찍는 타입은 아니라 보여드릴 게 그다지 많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영상 만드는 건 정말 쉬웠다. 원래는 어설프나마 직접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결혼안내장을 만드는 곳에서 영상도 무료로 만들어준다는 게 아닌가. 반신반의하며 사진들을 보냈는데, 오, 나름대로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 샘플 영상을 본 두둘도 한 번에 오케이. 아무런 문제 없이 준비되었다.


화촉점화 샌드 세레모니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일단 아빠들한테 소감 한 마디씩 할 시간을 드리기로 했다. 밥 먹는 자리에서 아들 딸들에게 결혼 축하한다는 말 정도 하는 거야 뭐. 그렇게 하고 보니 엄마들이 좀 애매했다. 아빠들처럼 엄마들까지 한 마디 하시면 너무 늘어질 것 같았다. 롤이 좀 겹치는 모양새기도 했고.


그래서 우리는 의미 있는 세레모니를 하나 드리기로 했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는 촛불일 거고, 우리가 몇 번이고 얘기했었지만 케익도 그럴 듯 했다. 어머님들이 케익을 자르는 모습은 결혼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니까.


허나,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상 그렇듯이 내가 또 까탈을 부렸지만, 어쨌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모토에 안 맞았다. 촛불은 너무 올드했다. 초가 다 탈 때까지 그 은근한 연기는 어쩔 것이며, 흘러내리는 촛농은 또 어쩔 거고, 분위기에 걸맞는 예쁜 촛대는 또 어쩔 건가 싶었다. 우리는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할 건데, 촛불이라는 게 그렇게 타이밍 맞게 꺼지나 싶기도 했다.


케익도 문제 투성이었다. 체인점에서 사온 그냥 케익도 아닐 텐데, 예쁜 거 하자며 힘을 잔뜩 준 커다란 케익일 텐데, 그거 남은 건 어떻게 처리하나 싶었다. 가뜩이나 한정식으로 음식이 한 상 가득 나올 거고, 날이 날인지라 다들 배불리 먹지도 못 할 건데, 그 와중에 케익은 또 어떻게 처리하나 싶었다. 가져가기도 애매하고 말이다. 어머니들이 케익을 뭉개듯이 자르면 모양도 이상해질 거고, 크림이 덕지덕지 묻은 칼도 고민스럽고.


우리는 어머니들께 맡길만한 역할을 찾기 위해 계속 손품을 팔았고, 꽤 괜찮은 걸 하나 발견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름도 생소한 '샌드 세레모니'가 그것이다. 색이 다른 두 모래를 하나의 통에 붇는 의식으로 서양에서는 이미 결혼식 때 많이들 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촛불처럼 연기나 촛농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고, 케익처럼 크림이 묻을 걱정, 케익칼을 치울 걱정 등을 안 해도 됐다


쉽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물론 촛불을 전화하거나 케익을 절단하는 게 그리 높은 수준의 고찰을 필요로하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건 통에 담긴 모래를 그대로 다른 통에 부으면 그만이어서 어머님들의 부담이 없었다.


의미를 부여하기도 좋았다. 서로 다른 모래가 섞여 하나를 이루는 것처럼 지금껏 달리 살아왔던 두 사람이 새로운 하나가 된다는 의미. 붙이면 꺼져버리는 촛불이나 원래 하나였던 것을 굳이 둘로 쪼개는 케익과 다르게 그 자체로 의미가 좋았다.


무엇보다 괜찮았던 건 뒷처리다. 점화식은 우리에게 남는 게 없고, 오히려 촛대를 치울 번거로움만 남는다. 케익은 산더미처럼 남을 테지만 그걸 어떻게 뭐 가져갈 수도 없다. 그런데 샌드 세레모니를 하면 색이 고운 모래가 반반씩 섞인 통을 그대로 집에 가져가 인테리어용으로 쓰면 된다. 예쁜 소품이었다.


샌드 세레모니를 하기로 결정하고, 우리는 일사천리로 준비를 시작했다. 각각의 모래를 담을 유리병과 모래가 합쳐질 유리병은 다이소에서 실물을 직접 보고 구매했고, 색이 입혀진 모래는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모니터로 보는 색과 실제로 보는 색이 다를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총 4가지 색상의 모래를 샀고, 배송이 완료된 후 색깔끼리의 케미를 맞춰본 뒤 최종적으로 당일에 사용할 모래들을 골랐다.


혼인서약-반지교환-성혼선언

부모님들도 각각 뭘 하시니까, 결혼의 주인공인 우리도 무언가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하기로 했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니까.


혼인서약서는 미리 써두었다. 앞으로 서로를 위해 이러이러하겠다는 약속을 양가 부모님들 앞에서 하는 의미였다. 부모님들이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우리가 결혼한다, 앞으로 우리도 부모님들처럼 예쁘게 잘 살아가보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어서 자연스럽게 서로한테 반지도 끼워주고.


성혼선언은 사회자에게 맡겼다. 시작!을 내가 외치는 게 이상했듯이, 이제 우리는 부부!를 외치는 것도 역시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래서 가족 행사에도 MC를 그렇게들 쓰나보다.


덕담 축사

덕담이라고 하기엔 좀 무거운 것 같고, 하여튼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씩을 양가 아버님들께 부탁드리기로 했다. 그냥 앉은 자리에서 소감 한 마디씩. 신랑도 신부도 개혼이었던지라 부모님들도 처음 겪는 자식결혼일 터. 분명히 뭐라도 하실 말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어머님도 계시고 할머니도 계셨지만, 아버님들이 가족을 대표해서 말씀하시는 걸로 하자고 얘기가 됐다. 모두가 한 말씀씩 하시면, 어휴 그건 명절날 친척 어르신들 잔소리 폭탄이지!


사진촬영 식전 스냅사진, 식후 단체사진

본식보다 더 준비하고, 더 기대했던 게 사진이었다.


우리집은 가족사진이 없었다. 사진을 워낙 싫어하셨던 아버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생계에 허덕이느라 가족사진을 찍을 여력이 없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거다. 그냥 몇 명이서 사진 한 방 찍으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지만, 가족사진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퉁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다못해 옷이라도 갖춰 입고, 머리라도 하고, 얼굴에 분이라도 찍어발라야 할 텐데, 우리는 그렇게 입을 좋은 옷과 메이크업에 쓸 여건이 안 됐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건 굉장히 의미가 컸다. 메이크업도 본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위해서 하기로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뭐.


날이 밝을 때는 심청루의 푸릇푸릇한 정원과 고풍스러운 한옥 건물을 배경으로 실외 사진들을 찍고, 본식 이후에는 실내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로 했다. 식전에 찍는 사진은 독사진을 포함한 가족들 모습을 남기고, 식후에는 두 가족이 함께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로 했다.


작가님은 숨고를 통해 구했다. 사회자처럼 지인찬스를 쓸까 살짝 고민했지만, 혹여나 부담을 줄까, 트러블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생각을 접었다. 결혼 당일에는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은 열과 성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셨고, 이후 A/S까지 완벽하게 해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결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결혼 계획서> 최종본을 가족 단톡방에 공유했다. 계획서 첫 장에는 결혼 당일의 타임 스케줄을 실었고, 행사장 도면이나 좌석 위치, 동선도 함께 담았다.

최종 버전. <결혼 계획서>를 통해 가족들에게 안내되었다.

텍스트로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은 따로 설명을 드렸다. 아버지는 언제 무슨 컨셉으로 말씀을 하시면 되고, 어머니는 앞으로 나가셔서 모래를 또 어떻게 하시면 되고. 귀를 쫑긋하고 설명을 들으시던 두 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쩌면 결혼 당사자인 우리보다 부모님이 더 긴장하셨을지도.



동식 : 야, 너 할 건 다 했네. 사람만 안 불렀지.


누군가가 그랬다. 결혼식을 안 한다더니, 알고보니 할 건 다 한 거 아니냐고. 그게 결혼식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어찌보면 일종의 결혼식이다. 나는 노웨딩결혼을 했다고 할 게 아니라, 무하객결혼식을 했다고 해야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좀 특이한 결혼식을 한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는 이게 결혼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객도 없고, 친지도 없고, 신랑 신부 입장도 없는 걸 ‘결혼식’으로 부르기에는 좀 어색하다. 누군가의 눈에는 결혼식이겠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결혼이다.


우리가 우리의 결혼에 만족하는 건, ‘하고 싶은 걸 하자’는 모토에 지극히 충실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우리가 정말 즐거웠는지, 우리 가족들이 정말 행복했는지의 여부 아닐까.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COOKIE : 못 다 한 이야기

결혼 당일 플랜을 짜며 거의 유일하다시피 아쉬웠던 게 있다. 바로 동영상이다.

마지막까지 갈팡질팡 했었다. 할까 말까. 미니멀리즘 결혼을 추구하던 우리가 그렇게 고민했다는 건, 사실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다. 실내에 세 군데 포인트를 찍고, 여기는 이런 앵글로, 또 저기는 저런 각도로 카메라를 설치해두면 되겠다고 그리기도 했다. 마치 관찰형 예능의 거치 카메라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이루지는 못 했다.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업체를 끼고 하지 않으니까 내가 챙겨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버거웠다. 화환조차 미리 받을 짬이 없던 터라, 식 전에 카메라를 가져가고 미리 설치하는 게 어려웠다. 만약 현장 관리자 역할을 할 사람을 1명이라도 섭외했다면, 아마 끝까지 진행시켰을 것 같다.

영상을 찍었어도 몇 번이나 돌려봤을까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약간 아쉽다. 남겨두면 다 추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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