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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15. 2023

밥은 한 끼 먹어야지

투 두 리스트 : 노웨딩결혼 컨셉잡기

결혼계획서를 만드는 건 부모님 설득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하다보니 우리한테도 은근 큰 도움이 되었다. 머릿속에만 풍경처럼 막연히 있었던 모습을 문서화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하니까, 우리가 뭘 하고 뭘 하지 않을 건지를 차근차근 정해나갈 수 있었던 거다. 순식간에 결정한 것도 있고 몇 달씩 걸려 수정한 것도 있지만, 원칙은 하나였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하자.”


자세한 얘기는 차차 풀어나가기로 하고, 우선 무엇을 안 하고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그 대강의 목록부터 살펴보자.



안 할 거

하객 초대(친지 포함)

가장 중요한 꼭지였다. 이 대목에서 ‘결혼식’이냐 아니냐가 나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오는 순간, 그에 따라오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결혼식장 계약, 피로연, 주차장, 버스대절, 자리 배치, 답례품, 축의금 접수대 등 불가피하게 딸려오는 요소들이 셀 수 없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결단코 꺼려하는 전형적인 K-결혼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단호한 기준(참석자는 신랑 신부 기준으로 2촌 이내일 것)을 정해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우리는 하객이 0명인 결혼을 하게 된다.


청첩장 뿌리기

친지를 포함해서 모든 하객을 일체 초대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청첩장도 뿌리지 않기로 했다. 자리를 ‘청’하는 게 청첩장인데, 자리를 ‘청’하지 않으면서 청첩장만 드리는 것이 영 어색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청첩장 모임’이라고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나눠주며 밥을 사는 문화가 있는데, 이것도 자연스레 안 하게 되었다. 얼굴 한 번 안 보냐며 아쉬워하는 친친들은 결혼을 전후로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걸로 갈음했다.


보통의 결혼식에서 주민센터 민원 양식처럼 틀에 박힌 듯이 진행되는 일련의 단계들을 최대한 생략했다. 예를 들면, 아예 버진로드를 없앴다. 그래서 신랑 입장도 안 하고,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신부도 없다. 밥 한 끼 하는 거니까, 그냥 모두가 식탁 앞에 앉아있으면 된다. 당연히 주례도 안 하기로 했고, 오글거려서 축가도 뺐다. 신랑 신부 맞절, 부모님들께 큰절, 만세삼창, 부케 던지기 등등도 다 안 하기로 했다. 화환, 깃발 같은 것도 다 안 하는 걸로 했다. 남들이 하는 목록에서 하나씩 빼는 게 아니라, 제로 베이스 상태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나씩 올리는 느낌으로.


스튜디오 촬영

우리는 둘 다 사진 찍히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스튜디오 촬영 역시 이견 없이 생략했다. 나중에라도 사진이 찍고 싶어지면, 이색 데이트인 셈 치고 그 때 찍자고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참 공교로운 일이 있었다. 때마침 아파트 입주협에서 동네 사진관과 제휴를 맺으며 무료 촬영 이벤트를 한 거다. 액자도 딱 하나, 사진 셀렉도 딱 다섯 장이었지만, 어쨌든 비슷하게나마 스튜디오 촬영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또 일치한 우리의 의견. 우리 사진 정말 못 찍는다. 스튜디오 촬영 안 하길 잘 했다.


예복(드레스 및 드레스투어 포함)

다행스럽게 두둘이는 웨딩드레스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고, 나 역시 당일만 입고 못 입는 턱시도 따위에는 조금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신랑 신부 입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볼 사람도 아무도 없는걸! 따라서 신랑 신부가 입을 예복도 패스. 드레스 셀렉을 위해 이 샵 저 샵 돌아다니는 ‘드레스투어’ 역시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되었다. 신부의 드레스 시착 모습에 대한 신랑의 리액션 의무도 면제되었다. 다행이다.


예물예단

결혼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건 아니었지만, 예물과 예단도 하지 않기로 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예전에는 결혼을 하면 친척들에게 이불을 한 채씩 다 지어주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다고 하고, 자식을 결혼시킬 때 당신들도 마땅히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든든한 지지를 바탕으로 결혼한 우리. 친척들에게는 엄마 아빠가 알아서 할 테니 예물예단은 너희 뜻대로 생략하라는 얘기를 해주셨다. 허례허식 줄이는 건 엄마 아빠도 아주 좋게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할 거

안 할 거의 핵심이 무하객이었다면, 할 거의 핵심은 바로 밥이었다. 그래, 밥은 한 끼 먹어야지. 결혼이란 즉 새 식구가 생기는 건데, 식구(食口)가 뭔가. 밥 같이 먹는 사이라는 말 아닌가. 그러니까 새 식구가 되는 두 식구가 만나서 밥 한 끼 하는 것. 이게 우리가 그리는 노웨딩 결혼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결혼 안내장

비록 자리를 청하지는 못 하지만, 우리가 결혼을 한다는 안내장은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우리야 카톡으로 틱틱 얘기해도 그만인데, 부모님들은 실물 청첩장 쓸 데가 있으실 것 같았다. 친구나 친척이 멀리 있어서 못 만나는 경우, 하다못해 우편으로라도 보내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청첩장과는 내용이 좀 다르지만, 예를 들어 예식 시간도 없고 장소 안내도 없지만, 누구네 아들 두팔이와 누구네 딸 두둘이가 결혼한다는 내용이 담긴 결혼 안내장을 만들기로 했다. 이왕 만드는 거, 모바일도 같이.


친척 인사

우리는 결혼 당일에 친척들도 모시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왕이면 결혼 전에 미리 뵙고 인사드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부모님들께 얘기를 드렸고, 부모님들도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우리를 도와주겠노라 하셨다. 괜스레 송구했다. 보통은 당일날 예식장에서 사진 찍고, 피로연장에서 인사 하면 그만일 텐데, 구태여 더 일을 벌이는 신랑 신부덕에 부모님들이 안 해도 되는 수고까지 하게 되셨으니까.


여행 스냅샷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우리였지만, 여행은 아주 좋아라했다. 그래서 스튜디오 촬영은 하지 않는 대신, 여행을 가서 야외 촬영처럼 사진을 찍기로 했다. 단, 디테일한 의견은 차이가 있었다. 여행 기간 중에 사진사 한 명을 쭉 고용해서 파파라치샷을 줄창 찍자는 나와는 달리, 두둘이는 촬영만을 위한 날을 하루 잡아서 메이크업도 하고 옷도 빌려서 컨셉샷을 찍길 원했다. 그래야 나머지 날들에 마음 편히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맞춤양복

두둘의 강력한 주장으로 하게 된 아이템. 예비신랑이 워낙 스스로에게 소비를 잘 하지 않는 타입이라, 두둘은 지금이 아니면 오빠가 언제 또 옷을 맞추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더랬다. 부모님의 얘기도 흘려들었었으나, 차마 두둘이의 말까지 못 들은 척 할 수는 없어서 알겠노라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 결혼 당일에도 잘 입었지만, 회사 근무용으로도 계속 요긴히 잘 쓰였다. 문제는 지금, 살이 10kg쯤 쩌버려서 더 이상 맞춤이 맞춤이 아니라는 거.


선물

요식행위인 예물 예단은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으나, 우리가 결혼할 때까지 잘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는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을 포함해서 결혼 자리에 함께 해준 가족들에게 선물을 하기로 했다. 어머님들께는 마실용 가방을 드리고, 아버님들께는 양복을 해드리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우리의 의견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결혼 도와준 것도 없는데 무슨 빽이냐, 너희들 살림에 보태쓰기나 해라 하시며 한사코 선물을 거절하셨기 때문이다. 참 신기하게도, 마치 미리 입이라도 맞춰 놓은 듯이 두 집안이 똑같은 말을 하셨다. 역시 부모의 마음이란 다 같은 것일까.


반지

밥만큼이나 중요했던 반지. 반지는 웨딩에 대한 두둘의 유일한 로망이었기 때문에, 우리 결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손가락이 못나게 생겼는지라 반지를 대체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슬쩍씩 찔러보았으나, 이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반지와 관련된 모든 사항은 전적으로 두둘의 지휘 아래 진행되었다. 워낙 심성이 고운 사람인지라, 조금이라도 남편에게 어울리는 걸 골라야 한다며 정작 제 욕심은 맘대로 못 부리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셀레브레이팅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허례허식들을 걷어내는 대신, 결혼이라는 우리의 경사를 자축하기 위한 흥겨운 파티를 계획했다. 날이 날이니만큼 예쁘게 보내자는 욕심에 메이크업도 하기로 했고, 어머님들껜 한복을 빌려 입혀드리기로 했다. 아버님들의 소감 한 마디 코너도 넣었고, 당일의 기록을 위해 포토그래퍼도 섭외하기로 했다. 결혼 당일 밤은 서울에서 호텔을 잡아 하루 묵기로 했고, 결혼합니다!를 우리 입으로 하기는 좀 그래서 MC를 봐줄 사람도 부르기로 했다. 마침 적임자가 딱 있었다.



돌이켜보니 우리의 결혼은 마치 자취방 이사와 같았다. 내 방에는 짐이 정말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끽해야 두어 박스 정도 옮기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막상 이사짐을 싸기 시작하니 트럭에 하나 가득 쌓일 정도로 불어나는, 구석구석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내 물건들.


‘정말 아무것도 안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케익 하나는 놓을 수 있잖아‘는 걸 깨닫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에 이르게 되니, 의외로 이것 저것 많이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번거롭고 성가신 게 꽤나 많았다. 으레 웨딩플래너가 다 했을 일을, 또는 웨딩홀에서 다 해줬을 일을, 우리가 직접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밌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오롯이 우리였으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결혼(물론 그 사람의 짝은 나지만)을 신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다. 행복했다. 그 덕분에 끝까지 웃으면서 행사를 준비하고, 큰 탈 없이 잘 치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아내, 두둘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까지도 행복하고 있다.

웨딩링. 대문 밖을 나설 때면 늘 착용한다.


BEHIND : 두둘의 이야기

저희 결혼 준비는 정말 두팔이의 말처럼 자취방 이사와 비슷했던 것 같아요. 결혼식을 안 하니까 신경쓸 게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생각보다 신경써야할 것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한편으로는 ‘가족들과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신경 쓸 게 많은데, 남들처럼 결혼식을 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대문자 I형이어서, 특히 드레스투어라거나 스튜디오 촬영 같은 건 고역이었을 거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나만 보는 가운데서 신부 입장하고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겠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진 빠질 게 한둘이 아니었을 거에요. 준비하면 할수록 정말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렇다고 결혼준비가 괴로웠다는 건 아니에요! 생각보다 챙길 게 많았던 건 맞지만, 두팔이와 함께 알아보고 정하는 과정들이 재밌기도 했어요. 요즘도 서로 가끔 그 때 얘기를 하면서 웃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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