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설득 (2)
아빠 「술 한 잔 하자. 언제 시간 되니」
우웅- 메시지가 핸드폰을 울렸다. 또 결혼식 얘기를 하실 요량일 거다. 시기적으로, 이제 정말 결혼이 많이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짐작컨대 아마 노웨딩을 엎을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 마지노선으로 생각하셨을 거다.
평소 아빠와의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또 같은 얘기가 오가야하는 상황이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불손하지는 않되, 분명한 어조로 답을 했다.
두팔 「아빠와의 술자리는 언제나 즐겁지만, 혹여나 결혼식 하자는 얘기시면, 그게 아빠와의 즐거운 술자리를 해할까 두렵습니다. 그런 얘기를 안 하신다면 한 잔 하시죠.」
결혼 얘기할 거면, 술도 안 마시겠다는 얘기. 이토록 단호하게 군 건, 머리가 굵어지곤 처음이었다.
아빠 「ok」
술자리가 성사됐다.
동네 양꼬치집. 양꼬치와 꿔바로우에 더해, 날이 더운 탓에 목을 시원하게 적실 소맥을 주문했다.
그렇게 외식을 많이 했지만, 양꼬치집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양꼬치집이 처음이듯, 그 날의 대화도 처음 나누는 내용이었다.
아빠 : 뭐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
두팔 : 무슨 말씀이세요?
아빠 : 아니, 결혼식날, 결혼식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구나, 뭘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결혼한다는 날, 그 날 아빠랑 엄마는 뭐 어떡하면 되는 거냐? 그냥 밥만 먹으면 돼?
왜 이런 걸 물어보시지. 당연한 거 아닌가. 밥도 먹고, 결혼 축하도 하고, 소감도 얘기하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밥 얘기는 내가 안 한 것도 아니고.
두팔 : 저번에 이미 얘기한 거 같긴 한데요, 뭐 식사도 하시고, 한 말씀 하셔야죠.
아빠 : 아니 그러니까, 뭐 아무것도 없잖아.뭐 밥만 먹으면 되는 건지, 아니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뭐 옷은 어떻게 입어야 되는 건지. 뭐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엄마 아빠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거야.
두팔 : 네? 뭐가 없어요
자꾸 뭐가 없다는 아빠.
아빠 : 아빠 옷은 뭐 입냐. 양복 입으면 되는 거야? 아니면 예복을 맞춰야 하는 거냐
아? 그러고보니 드레스코드도 말씀을 안 드렸다?!
그랬다. 질문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당연한 걸 물어보시는 게 아니었다. 내 잘못이었다. 대화가 부족했다. 내 생각을 공유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거였다. 그간 엄마 아빠는 당연히 결혼식 있는 결혼을 생각해오셨을 거다. 몇 년 전에 아들이 노웨딩결혼을 선언하기는 했으나, 설마 그게 진짜로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셨겠지. 게다가 주변에서도 노웨딩결혼이라는 건 하는 걸 못 보셨을 거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며 하객을 줄인 스몰웨딩은 몇 보셨겠지만, 하객이 없는 노웨딩은 못 보셨을 거다.
그런 자리에서 본인들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신랑의 부모로서 롤이 무어고, 그 날의 결혼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무것도 아실 수 없었다. 짐작도 어려우셨을 거다.
아빠 : 그러니까 더 걱정도 되고.
비유컨대, 잘 써오던 지도와 나침반을 잃어버리고, 하여튼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대강 방향만 가리키는 아들 뒤를 쫓아가는 형국이랄까.
근심은 무지로부터 온다는데, 나는 스스로 스케치한 결혼의 모습을 부모님께 제대로 알려드리지 않았고, 부모님을 무지에 빠트려버린 것이었다. 노웨딩에만 꽂혀서 상세한 그림을 보여드리지도 않고, 하다못해 드레스코드조차 공유하지 않은 채, 나는 결혼식을 안 한다고 하는데 자꾸 부모님이 결혼식 얘기를 한다며 속앓이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 분들의 머릿속에는 결혼식 없는 결혼이 그려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는, 그 속앓이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생각은 못 하고 말이다.
두팔 : 계획은 다 있죠. 조만간 단톡방에 올릴게요.
아빠 : 그 날 뭐 해야하는지, 그런 것들 다 해서.
두팔 : 네네, 그러니까요. 풀로 다 말씀드릴 거에요.
짠-. 양꼬치를 앞에 두고 부자 간에 부딪히는 소맥잔은 썩 경쾌했다.
의미가 컸던 술자리였다. 그간의 내 태도를 반성할 수 있었고, 부모님을 설득(또는 안심)시킬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포인트는 단순했다. 공유였다. 대충 ‘결혼식을 안 한다’는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결혼식 없는 결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공유였다. 그래도 이 놈이 아무 생각 없이 결혼식이 싫다고 떼를 쓰는 것만은 아니구나, 뭘 할 생각이 다 있기는 있구나, 하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그러한 매개체를 드리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건 결혼계획서였다.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예상되는 당일의 모습들을 컴팩트하게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든 결혼계획서는 총 2차례에 걸쳐 부모님들께 보고되었다.
우선 계획서 이름에는 ‘가족 결혼식’이라는 말을 넣었다. ‘결혼식을 안 한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줄이고, ‘그래도 우리 할 거 다 해요!’를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이게 결혼식인가 하는 마음이 내심 있었지만(사실은 지금도 ‘결혼식’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하다고 생각하지만) 크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라서 전략적으로 넣은 워딩이다.
첫 번째로 보고되었던 계획서는 간략한 중간보고 컨셉이었다. 총 6쪽 분량. 앞으로 남은 기간, 결혼을 위해 어떠한 준비들이 언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향후 일정’이라는 목차로 대강이나마 적어두었다.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을 어떻게 알릴 것인지, 결혼안내장은 어떠한 형태인지, 제작은 언제 완료되는지 따위의 내용들을 담았다.
두 번째 계획서는 최종보고이자 행사 계획서였다. 총 12쪽 분량. 타임테이블이 핵심이었지만 그 밖에도 결혼 당일 두 가족의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 엄마들을 비롯한 가족들의 화장은 업체에서 하는 것인지, 각자의 드레스코드는 무엇인지, 식순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좌석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등을 상세히 담았다. 마치 회사의 고위 간부가 참석하는 행사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듯, 일을 하듯 만든 계획서였다.
효과는 충분했다. 비록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 아쉬움은 마음 한 켠에 담아두셨을지 모르겠지만, 결혼계획서를 공유드리고 난 뒤, 결혼식을 하자는 직간접적인 압박은 거의 없어졌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분명한 생각이 있구나, 하는 최소한의 믿음이 생기셨던 것 같다.
아닌가? 야, 이 고집은 못 꺾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일까?
어쨌거나 효과는 충분했다. 우리는 결혼식에 대한 압박을 덜고, 차곡차곡 남은 결혼 준비를 해나갈 수 있었다.
BEHIND : 두둘의 이야기
결혼을 준비하면서는 전혀 알 지 못했던 이야기에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두팔이가 자기는 부모님께 이미 오래 전부터 노웨딩 얘기를 해두어서 별 문제가 없다고 했었거든요. 이런 얘기는 진작 좀 해줬어야지!!!
그러고보니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 어머님께서 두팔이가 결혼식을 안 한다고 하는데 저도 같은 생각이냐고 물어보셨어요. 그 때는 당연히 제 의견만 물어보신 건 줄 알았는데, 이 얘기를 알고나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두팔이를 말리려고 하셨던 것 같기도 하네요. 못살아 정말. 그치만 저한테 잔소리를 하신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어요. 처음에 물어보셨던 거 외에는 결혼식에 대해서 저에게 말씀이 없으셨거든요.
두팔이가 아버님이랑 술도 안 먹겠다고 한 얘기는 상견례 자리에서 들었어요. 두팔이한테서가 아니라 아버님께요. 아버님이 저희 아빠에게 농담식으로 얘기하시더라고요. 얘가 결혼식 얘기 할 거면 같이 술도 안 마셔주겠다고 했다고요. 두팔이가 꼭 자기 같이 고집 센 자식을 만났으면 좋겠네요. 그 때 되면 ‘아 내가 엄마아빠 속을 많이 썩였구나’라고 깨닫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