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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Dec 14. 2021

기형아 검사를 기다리면서

지난번 병원에 가고 3주 후에 병원 예약이 잡혔다. 매번 1주 반~2주 정도의 텀을 두면서 병원에 갔었는데 3주로 늘어나니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시간이 더디게 가는 느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예약을 잡아 주시면서 궁금하면 언제든 오라고, 3주 전에 절대 오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라고 웃으며 말씀해주셨다. 아마 아기 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 하는 산모들을 많이 보셔서 마음을 다 꿰뚫고 있으신 것 같다. 


기다리는 시기에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다시 거리 두기가 조정되고, 백신 패스가 도입되는 등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러면서 손꼽아 기다리던 지인의 결혼식도 못 가게 되었고, 회사 동료들과도 마음의 거리가 벌어지게 되었다.




지인의 결혼식은 하필 처음으로 신규 변이가 발견된 지역에서 열렸다. 남편의 걱정 어린 조언에도 나는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힘들게 가졌으니까 더 조심해야지. 아니야?'라는 남편의 말을 들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별 말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그 말이 서러웠는지. 나도 이해가 안 되지만 눈물이 줄줄 났다. 아 임신하면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는 게 이런 말인가 싶을 정도로 나도 내 눈물과 서운한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몰래 울고 말도 못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더 화가 났고 나는 더 서러워져서 통곡을 했다. 


같이 사는 사이이니 결국 다시 정다워졌지만, 울고 있는 나에게 소리치고 화내는 남편의 모습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다음 날 진정이 된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았지만 남편도 전혀 나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인 것 같다고 느꼈다. 남편도 나를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주려는 마음은 없고 본인의 마음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해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서로 마주 보고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보는 방향으로 평행선만 달리는 것 같다고 느낄 때 참 외롭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10명 남짓한 우리 본부 사람들 중 주니어 2명은 이전부터 백신을 1차도 맞지 않은 상태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부작용이 우려되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더욱 몸조심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리자 그동안 못한 술자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신규 변이 발생과 확진자 급증으로 백신 패스가 생겨나자 '정말 거지 같다'는 말과 함께, 언론이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한다, 위드 코로나를 하면 원래 다른 나라들도 만 명씩 확진된다, 백신은 맞아봤자 효과가 없다 등등 코로나 대응 정책에 대한 적대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물론 위드 코로나로 인한 확진자 증가는 예견된 일이었지만 그로 인한 의료 시스템 붕괴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나같이 만에 하나 위급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사람에게는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그리고 백신을 맞아도 돌파 감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맞지만, 감염 위험이나 중증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에서는 효과가 있다고 검증되었다. 이러한 과학적인 사실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확실한 이득을 두고 불확실한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왜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하며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기적인 임산부인 건가 생각해봤다. 나도 백신을 못 맞는 주제에, 남들이 만들어주는 집단 면역 안에서 보호받고 싶어 하는 건가. 남에게 백신 맞으라!! 강요할 수 있는 건가. 그렇지만 나는 감염될까 두려워서 외출도 자제하고 최대한 숨죽이면서 살고 있는데.....


내가 나서서 모두들 백신을 맞으라 할 수도 없으니 다음 주부터는 임산부에게 허용된 재택근무를 시작하기로 맘먹었다. 임신 사실을 안 날부터 재택근무를 실시할 수 있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더 좋고 재택근무를 하면 너무 울적해져서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업무 스타일이나 정신건강을 따질 때가 아니라 질병 감염 위험을 낮추는 게 시급한 일인 것 같다.  




주말에는 연차를 내고 느긋하게 부모님 댁에 다녀올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엄마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면서 중기까지 장거리 이동은 절대 안 된다고 만류하셨다. 넓은 집에서 부모님 덕보며 호의호식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고 갑자기 화가 났다! 아빠 엄마가 연고도 없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지만 않았어도 자주 가서 편히 쉬고 맛있는 것도 얻어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있다가 불현듯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미쳤다...'라고 생각했다. 

톱스타병에 걸린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란 영란 언니처럼....


엄마 아빠의 덕(?)을 보지 않으며 신혼 생활을 꾸리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알게 모르게 작은 자부심이었다. 엄마가 멀리 이사 간다고 하자 '딸 살림은 안 봐줘??'라고 크게 놀라며 물어봤던 작은 이모를 웃기다고 생각하면서. 독립된 가정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자만심이 내게 있었다. 친정을 이사시키면서까지 자기 가족을 돌봐주도록 하는 작은 이모 딸을 경멸하면서. 친정 엄마가 해준 갈비찜에 '이거 한우야?' 묻는 딸보다는 혼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반찬을 해 먹거나 사 먹는 내가 더 신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심 나도 엄마가 임신한 나에게 맞춰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엄마라면 당연히!! 이런 생각. 내가 갖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들. 


그리고 아빠 엄마의 노년이 나의 뒤치다꺼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명심해야 하고, 사랑과 호의로 나와 가족을 돌봐주시는 것에 크게 감사해야 함을 잊지는 않을 것이지만, 가족의 기능을 어쩔 수 없이 친정이나 외부에 의탁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다는 것도 이제는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나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올 테니까. 왜 사촌 언니가 그렇게 얄미워 보였을까. 내 엄마가 고생하는 것도 아닌데. 언니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다녔다면, 생계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달라 보였을까?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다. 


임신으로 인해 이런저런 사건도 겪고 생각의 변화도 겪는가 보다. 뱃속 아기뿐만 아니라 나도 쑥쑥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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