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ing Bites 1. 자영업자를 위한 마케팅 119 (10)
그 남자는 꼭 밤이 늦어서야 그 식당을 찾는다. 시내 중심가도 아니고 허름한 상권 한편에 위치한 심야식당이다.
그곳에서 그가 시키는 음식도 화려한 것이 아니라, 그냥 흔한 가정식 백반 정도다. 간단한 것 하나 둘 시켜놓고 앉아서 맥주 한잔 들이키는 게 그 남자의 삶이다. 가운데 손님 모두를 보며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 겸 주인도, 그가 한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음식을 먹는 손님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남자는 아마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 식당을 찾을 것이다.
일본 드라마이자 영화인 <심야식당>의 한 풍경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하나. 바로 그 식당주인이 자신의 고객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고객이 뭘 원하는지, 그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는 주인이다. 그 고객에 대한 파악, 고객 페르소나의 구체적인 모습이 이번 에피소드의 주제다.
앞서 고객 페르소나는 ‘내 가게에 오는 고객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걸 구태여 설정하는 이유는 내 가게에 오는 고객을 하나의 인격체로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그에 맞는 서비스와 제품, 매장 인테리어 등을 갖추기 위해서다.
고객 페르소나의 첫 단계는 무엇보다 내 고객을 ‘그려보는’ 것이다. 위 드라마 <심야식당>의 손님들은 낮의 식당이나 번화가의 근사한 레스토랑이 아닌, 또 술집도 아닌 꼭 허름한 골목가의 ‘심야식당’을 찾는다.
왜일까? 당연히 배가 고프니까 식당을 찾을 것이다. 한마디로 허기를 채우고 싶어서다. 그 허기는 2가지다. 물리적인 배고픔과 정신적인 공허. 그 건장한 남자가 말 한마디 없이 찾은 것, 게이커플과 고독한 여자 회사원이 찾은 이유 모두 배와 정신의 허기를 함께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말한 ‘업의 본질’과 정확히 일치한다. 본질적으로 식당은 ‘허기’를 채워주는 산업이다. 보다 깊게 들어가면 인간의 3대 욕구 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 바로 식욕을 채워주는 산업이다. 즉, 식당은 인간의 생존, 위기에 처한 인간을 돕는 가장 근원적이고도 적나라한 욕구 산업이다.
허기를 채우는 게 고객의 니즈라면, 이 허기는 앞서 말한 것처럼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것도 있다. 시대가 발달되어 갈수록 사실 인간은 피곤하다. 유럽까지 10~12시간이면 날아가지만, 그 거리를 날아가는 인간은 그만큼 공허하다. 중세시대에는 고작 말 아니면 걸어서 움직여서 인간의 생활반경은 짧았지만 그만큼 인간의 교제의 폭은 좁았고 그 깊이는 더 깊었다. 이제는 폭은 넓어진 대신 깊이는 얇다. 저가 내게 도움이 될까, 이득이 될까가 대부분의 사회관계 주류를 이룬다. 인간은 편해지고 부유해진 대신 그 심장은 배고프고 가난해졌다.
‘심야식당’이란 이름은 밤늦게까지 깨어 있어야 하는 인간을 부르고, 그 안의 따스하고 소박한 가정식 메뉴는 잃어버린 집을 생각나게 한다. 엄마 생각이 날 수도 있다. 엄마의 요리는 화려하진 않지만, 내게는 영혼과 배를 동시에 채워준 ‘젖줄’이었다. 감히 그 사랑에 비견할 수는 없지만, 말없이 배와 공간을 채워주는 식당주인의 영업능력은 웬만한 자영업자가 따라올 수준은 아니다.
즉, 정확히 자신의 고객, 심야에 삐거덕거리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도시의 지친 고객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영혼과 배의 허기를 동시에 채울 수 있도록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소박하고 ‘원하는 건 뭐든지’ 요리해주겠다는 주방장의 자세를 첨가해 그 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게 고객을 단순 니즈로만 파악하면 불가능하다. ‘지갑’으로만 생각하면 한밤에도 근사한 요리, 저녁에 먹어도 부담 없는 요리와 동선으로 가게를 짜면 그만이다. 구태여 상처자국 보이는 50대는 족히 될 법한 주방장이 ‘뭐든 해준다’며 말없이 주방을 지키고 서 있을 필요도 없다.
주방장은 식당 고객을 지갑이 아니라 인격체로 파악했다. 배고픈 건 인간이니까 느끼는 현상이지만, 단순 육체적 허기 뿐 아니라 정신적 허기까지 온전히 파악한 것이다. 즉, 자신의 고객을 정확히 그리고 인간으로서 접근한 마케팅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고객을 파악하는 건 단순 ‘니즈가 있는 지갑’으로서의 고객이 아니라 ‘뭔가 필요한 인간’으로서 접근할 때 더 풍부하게 파악할 수 있다. 거기서 고객의 구체적인 모습, 페르소나가 그려지는 건 물론이다.
한단계 더 들어가, 이제 내 가게에 맞는 고객 페르소나를 떠올려보자. 막연히 이야기하면 어려울 수 있으니, 여기서는 가상사례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이번에는 맥주집을 오픈하려는 철수의 경우다.
철수는 서울에서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이 주로 출퇴근하는 원룸촌에 살고 있다. 낮에는 동네가 텅 비는데 대신 저녁 무렵이면 퇴근해 오는 젊은 거주자들이 꽤 많다.
이들을 대상으로 집에 들어가기 전 간단히 피로를 풀 수 있는 ‘혼술 맥주집’을 차리려고 한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힘들었을 테니 들어가기 전에 혼자 마음껏 쉬다 갈 수 있도록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다.
언뜻 떠오른 생각대로 그의 가게를 방문할 만한 고객을 그려보자.
남자 A : 20대 후반. 젊은 영업사원인데 마시고 싶지도 않은 술을 마셔야 하고, 내가 이러려고 대학 다녔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루하루 회사를 때려 치고 다른 일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막상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마련도 쉽지 않다. 취업했다고 좋아하신 부모님을 보면 때려 치기란 정말 어렵다.
여자 B :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다행히 작은 홍보대행사에 바로 취업했다. 2년 정도 지나 어느 정도 업무 파악은 되었는데 아직도 제대로 해내기에는 한참 멀었다. 언제 대리 달고 과장될지 걱정도 되는데, 그보다는 아직은 먼 미래지만 이 직장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도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경력 관리도 의문이다. 일단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삶도 적당히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원룸촌에 살만한 직장인 A와 B를 설정해 보았다. 이중에 철수의 가게를 방문할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보기엔 없다. 남자 A는 영업사원이면 가뜩이나 저녁 자리 많고, 또한 20대 후반 남자라면 친구들을 만나 밖에서 한잔 걸치고 들어올 때가 많을 것이다. 이런 이들이 집 근처까지 와서 한잔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집에 들어올 무렵에는 만취해서 어서 자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 것이다.
여자 B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보다 나이는 젊지만, 구태여 동네에서 ‘아저씨들 갈만한’ 가게에 여자 혼자 앉아 술 마실 만한 이유는 없다. 다만 그녀는 남자 A보다는 현재 삶에 대해 ‘즐기고’ 싶은 니즈는 있다. 그럼 그 니즈를 다른 쪽으로 소화해 주어야 맞다. 그게 동네 혼술맥주집은 아니다.
고객 페르소나는 이렇게 잠재고객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모델링해보고, 그걸 자신이 하려는 업종에 비춰 맞는지 검증해볼 수 있다. A와 B의 경우처럼 자신의 고객이 누군지 분명하게 알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부족할 마케팅과 홍보 예산을 훨씬 줄여 알맞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여기서는 편의상 간단히 설정해 설명하고 있지만, 한번 설정하면 무조건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계속 모델링과 내 비즈니스에 맞는지 서로 엎치고 메치며 검증해봐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서는 때로는 철수의 경우처럼 장사 자체를 하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 위의 사례에서 철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동네 장사를 해야겠다면 고객 페르소나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그가 잡은 키워드를 살짝 틀어 보았다.
남자 C : 30대 후반. 이 동네에서 태어나 자랐고 결혼까지 해 살고 있다.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으며 그와 비슷한 처지의 동네친구들과 조기축구회 활동도 하고 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한두 게임 뛰고 그 다음 함께 소주 한잔 하는 것으로 일주일의 피로를 푼다.
여자 D : 40대 초반. 결혼해 아이가 둘 있고, 하나는 중학생, 하나는 초등학생이다. 남편은 월급이 많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고정수입을 잘 불려 이 동네 3층 단독주택의 한 층을 매입해 이사해왔다. 요새 동네에서 한창 주택을 허물고 빌라나 원룸 건물을 지어 분양하고 있어 이에 관심이 많으며, 아이들 문제로 같이 어울리는 학부모 친구들이 여럿 있다.
앞서 잠재고객 A와 B에서 살짝 연령대와 관심사를 틀어보았다. 가장 큰 차이는? A와 B는 출퇴근 직장인으로 비교적 동네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외부 활동 시간이 많고, C와 D는 동네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 활동범위 또한 동네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뛰어난 상품과 서비스가 아니라면 가급적 자신이 ‘활동’하는 곳 주변에서 해결한다. A와 B는 생활 대부분이 외부에서 이뤄지므로 구태여 집 주변까지 와서 술마실 필요가 없다, 이들에게 집은 그냥 ‘쉬는’ 곳이다. C와 D는 아예 동네에서 가게도 하고 있고, 또한 주택 재개발과 아이들 교육문제까지 있어 이래저래 동네에 관심을 안 붙일래야 안 붙일 수가 없다.
고객 페르소나가 A와 B에서 C와 D 등 동네주민으로 바뀌다 보니 철수가 생각한 대전제, ‘동네, 맥주, 혼술’ 중에서 ‘혼술’이 깨졌다. 사실상 C와 D가 혼술을 즐길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동네에서 조기축구 유니폼 입고 혼자 술드시는 아저씨나 40대 초반의 아주머니 혼술족을 본 적 있는가? 그에 맞는 인테리어나 매장이 아니라면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래서 ‘혼술’은 A~D까지 모두 안 맞는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동네, 맥주’를 살짝 비틀어 살려 C가 조기축구회 멤버들과 주말 축구를 즐기고 한잔 하는 ‘소주’를 유치하던지, D가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오붓하게 만나 저녁을 함께 먹는다든지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꿔봐야 한다.
비즈니스 방향은 바꾸지만 하나는 건졌다. 당신의 고객,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 말이다. 그게 바로 고객 페르소나다.
여기까지 간단히 고객 페르소나를 살펴보았다. 사실 실무에서 고객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아주 간단하게는 그냥 우리 제품구매자 또는 경쟁제품 사용자, 무관심층 등으로 고객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에 따른 마케팅 전략과 홍보메시지도 달라질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고객 페르소나를 설정하는 이유는 고객의 민감한 ‘부분’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고객이 사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잠재고객’이라 할 만한 인격체를 만들어내어서 검증해 보는 것이다. 이 작업으로 실제 제품과 서비스의 마케팅 대상(타깃)을 보다 세밀하게 설정하고 그에 따른 효과적이고 살아있는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의 관점으로 고객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처럼, 브랜드 또한 브랜드 인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철수와 영희가 다르듯, 브랜드도 각자의 이름과 성향에 따라 매우 다른 인격을 보인다. 예를 들어 BMW와 벤츠가 다르고, 파파이스와 맥도날드가 다르며, 앤제리너스와 스타벅스가 주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뭐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같은 업종, 같은 제품과 서비스군이라 할지라도 분명 ‘이건 뭐야’ 하고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브랜드 인격’(브랜드 퍼스낼리티, Brand Personality)라 부르는 각 브랜드별 고유의 특성이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사람들에게 맞는 마케팅도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독특한 브랜드 인격을 설정해 두고 그에 맞는 사람들을 끌어 모이기도 한다. 양준일과 ‘밤과 음악사이’와 같이, 핵심 키워드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집합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이는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좋은 브랜드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고객 페르소나든 브랜드 인격이든 한번 어떤 ‘격’이라는 게 설정되면 그에 따른 서비스와 상품 변화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다음 편에선 고객 페르소나에 따른 제품과 서비스 구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