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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C Jan 30. 2023

엘리베이터 같이 타고 있다고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파면 해임당한 나는 왜 '멋진' 교수인가?

첫 부당해고는 2007년 7월 17일에 있었다. 이미 기말고사 성적처리도 끝난 후다. 2학기가 시작하는 9월 1일 전까지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다른 대학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나의 경우 2학기 시간표는 통상 5월경에 교수들이 합의하여 작성했다. 조율이 안 되면 방학에, 그도 안 되면 신학기 시작 1주일 안으로 그렇게 했다.     


2007년 5월 경이다. 이때는 이미 내 사건이 학내에 알려졌다. 학교의 비리를 파헤친 총학생회장 징계를 내가 사직서를 내면서 반대했고, 이에 굴복한 교무처장이 내게 사직 철회를 요청해서 내가 사직을 철회했는데, 이사회가 나 몰래 사직을 2007년 7월 17일 자로 처리했다는 주요 내용이 알려졌다.


물론 학교 측은 교무처장이 사직 철회를 내게 요청한 적이 없다고 여기저기 깊은 연막을 쳤다. 그 효과는 상당히 먹혔다. 자기 월급 외에는 생각 없는 사람에게는.     


2007년 5월이었지만 며칠인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대략 셋째 주였던 것 같다. 요일은 화요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 대략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였다. 나는 문해 교육 자문을 위해 서초동에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학교 교수가 전화했다. 웬일인가 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2007년 2학기 시간표를 작성 중인데, 내 2학기 시간표를 모두 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웃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교수님. 저는 지금 학교 이사회와 부당해고 문제로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2007년 7월 17일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처럼 하고 있지만, 그건 부당해고입니다. 사실이 그렇건 아니건 일단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저에게 2학기 시간표를 빼겠다고 미리 말씀하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해는 합니다. 2학기 시간표가 걱정되시겠죠. 하지만 제가 설령 7월 17일에 학교에서 퇴출당한다고 하더라도, 9월까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안에 강사를 구해도 충분합니다. 근데 왜 미리 나서서 제 시간표를 없애고 다른 사람을 넣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

     

전화를 건 교수는 다른 교수들과 더 상의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웃었다. 저녁에 집에 와서 생각하니 차라리 뭔가 걷히는 느낌이었다. 아프지 않은 통증이 나를 깨우는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첫째, 내가 이 대학에서 인덕 혹은 인복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까 부당해고로 싸우고 있는 내게, 그들이 나서서 나의 2학기 시간표를 미리 없애겠다고 한 것이다. 인덕은 내가 만드는 것이니, 인덕 없는 것은 내 책임이다. 인복이 없다는 것은 내 탓도 있고, 아닌 것도 있으니 덜 자책해도 된다. 나는 내게 인덕이 없다고 생각했고, 인복은 그저 그랬다고 결정했다.

     

둘째, 그들은 비겁하다. 학교에 겁이 나서, 알아서 나의 2학기 시간표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비겁하지 않고 순진했을 수도 있다. 단지 2학기 시간표가 걱정되었을 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나 지위를 고려할 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너무, ‘유치한’ 순진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순진했다고 무수히 나를 세뇌했다.

      

셋째, 나는 그들에게 쓸모없는 인간이다. 혹은 불편한 인간이다. 내가 학교나 학과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 나 스스로 입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것이다. 그러니 동료애니, 의리니 이런 것을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나는 내가 어리석었다고, 못을 박듯 내 가슴에 새겼다.



    

엘리베이터 같이 타고 있다고 해서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그들은 그저 나와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 자기 몸이 불편하니 잠시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 움직임에 무슨 도리니, 의리니, 하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나는 덜 상처받고 더 행복하다. 가깝지 않은 사람을 가깝다고 혼자 착각하는 것을 많이 줄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계산적으로 하면 이기주의적인 사람으로 평가받기 쉽다. 하지만 인간관계만큼 철저하게 계산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계산을 어떻게 하는 가는 그 사람의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가깝지 않은 사람을 가깝다고 혼자 착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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