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을 쓸 마음이 나지 않았다. 삶에 뿌리에 대한 본질적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투쟁도피반응모드가 활성화된 상태에서 진득하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나 보다.
네이버 메인에 뜨는 뉴스 머리말을 볼 때마다 심장이 기분 나쁘게 쿵쿵 뛰었다. 기사가 모조리 영어로 뜨도록 바꿔 버렸다.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조금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제일 먼저 뜨는 한 줄짜리 헤드라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곳곳에 지뢰가 있었고, 내 눈은 기가 막히게 그것들을 캐치해서 기꺼이 밟아 터뜨리고야 말았다.
이런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아예 기사를 보지 말라고 한다. 소식을 듣지 말고, 현생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현재 내 삶에서 당장 처리해야 할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 개인이 신경을 써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이다.
만약 내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도 모두 내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일이다. 캘리포니아에 산불이 나서 주홍색으로 물든 뉴욕의 하늘, 어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강행하려는 듯한 오염수 방류 등의 뉴스 앞에서 평범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일구려는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내년에는 아이를 가져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이러한 재생산 욕구에 회의감마저 든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아이를 낳는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가는 이 세상을 물려받을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그 아이를 위한 일일까.
'기후우울증'이라는 말이 있다. 이상 기후에 관한 소식을 접하거나 체험한 이들이 겪는 불안감이나 만성적인 우울감을 뜻하는 말이다. 개인 노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니 코 앞에 닥친 일에나 집중하라는 말도 맞는 말이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도 살긴 살아야 하니까.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에 마저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세상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아야 한다. 모든 생물은 '나쁨'과 '좋음'에 관한 기준을 가지고 있고, 최대한 좋은 쪽을 자주 선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쁨'에 자주,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그 생물은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면서까지 자기 합리화하고 내로남불,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자기 합리화 기제가 적절히 작동하지 않는 인간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 쉽다. 현재 나는 고통스럽고, 그 고통을 어떻게 소화해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내 소망은 단순하다. 자식을 낳고 싶다는 욕망이 죄스럽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그러려면 고통스럽더라도 외면하지 말고 한 사람분의 노력을 보태야 할 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사람분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