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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Jun 14. 2021

서른아홉살 마음사전

아직 서른아홉, 아늑하고 기분좋게

주말동안 콧물에 시달리다 퇴근길에 병원에 들렀다. "열은 없었죠? 기침은요?" 의사선생님의 질문 두 가지에 모두 '없었어요.' 하고 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코감기에요. 약을 좀 지어드릴게요. 드시다가 좀 나아지면 더 안드셔도 괜찮아요." 타닥타닥. 조제약으로 추정되는 기호가 자판 치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에 새겨지는 것을 보다가 우연히 모니터 한 켠 환자 정보를 보게 되었다. 내 이름 아래 씌어진 숫자. 내 나이였다.


만 39세. '아. 병원에서는 만으로 나이를 세지, 참.' 잠시 생각했다. 39라는 숫자를 좀 더 쳐다보는데 의사선생님께서 "나가보셔도 좋아요." 한다. 그 말이 마치 '39세에서 이만 나가보셔도 좋아요.' 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미 4로 시작하는 나이인데 39라는 숫자 앞에 잠시 좋아했던 것 같아서.


나이. 그게 무엇이길래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까? 한낱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숫자 하나에 이 일은 할 수 있고 저 일은 할 수 없다고 한계를 짓는다. 매년 딱 1씩 늘어나는 것 뿐인데 이제는 늦었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10개씩은 더 생긴다.



진료실을 나와 대기실 소파에 잠시 앉아 생각했다. 작년 말의 내 모습이 어땠더라? 40세가 된다고 유난히도 여러 감정들이 오갔더랬다. 휘몰아치고 가는 그 감정에는 이름붙일 수도 없는 기분들이 대부분이어서 감정 번역기라도 있었으면 했다. 40이 되니 이것만은 꼭 이루어야지, 40인데도 이 일을 못했네...다짐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것들을 여러 차례 겪고 있을 무렵 나랑 꼭 30살 차이가 나는 우리 딸이 책을 한 권 보여줬다. '아홉 살 마음사전'. 너무 재미있다고 벌써 세 번도 더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도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렇네. 열 살을 앞둔 아홉 살도 마음사전이 있는데 서른아홉은 왜 없나.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같은데. 서른아홉도 마음사전이 필요해.


"처방전 나왔습니다~!"


마음사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더니 처방전이 나왔다. 만 서른아홉. 39라는 숫자가 씌어있다. 40이지만 아직은 완전한 40이 아니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이. 뭐라도 해도 될 것만 같은 나이. '무엇이든 해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처방전을 손에 쥐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상쾌한 공기가 확 밀려든다. 서른아홉의 처방전은 '용기'라고 마음사전에 써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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