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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부부 Saai Jul 27. 2023

18. 미국 타주 이사 후반전 A

벌레 아파트 Savnnah -> Orlando

  

  황홀한 5일 호텔 숙식의 여정을 끝낼 무렵 우리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노동카드가 Savannah 집 우편함에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올랜도 아파트에 이사 들어가기 전에 카드를 찾아오고 싶어 Savannah로 향했다.


  이사 나온 아파트에 살고 있을 분들의 연락처를 받아왔기에 찾아갈 날짜를 미리 문자로 알렸고, 도넛을 한 박스 사들고 찾아갔다. 무사히 우편함에 배달된 노동카드를 찾고는 그분들을 찾아가 도넛을 건네며 감사 인사를 하고 서둘러 친구네 집으로 가서 맡겨 두었던 짐을 찾아 다시 올랜도로 향했다. Savannah에서 하루 자면 또 숙박비가 나가기 때문에 중간중간 휴게소에서 쉬며 가기로 하고 바로 서둘러 올랜도로 돌아왔다.


  그렇게 왕복 10시간 운전을 끝으로 노동카드, 승인서를 찾는 여정이 일단락이 되었다. 큰 산 넘었구나 하며 한숨 돌릴 때쯤 여지없이 또 다른 산이 나타났다. 무사히 노동카드 찾고 호텔 체크아웃도 하고 스토리지에 맡겨 두었던 짐을 빼서 이사 갈 집에 옮기면 타주 이사 대이동이 끝나는 대장정의 마지막.


  짐을 바리바리 차에 채워 들뜬 마음으로 새로 이사 갈 아파트 오피스에  도착했다. 항상 그렇듯 미국 아파트 오피스는 인테리어가 아주 잘 되어있다. 럭셔리의 끝판왕으로 모델하우스 마냥 사람들을 잘 홀리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야 아파트 계약을 하러 오피스에 들어온 사람들이 내가 살 집도 이렇게 아름다울 것이라 순간 착각에 빠지며 계약서 사인을 마칠 테니 말이다. 혹은 내 집은 이렇게 꾸밀 수 없어도 내가 이 오피스 공간을 일부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음에 홀딱 반해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멋들어진 오피스에서 키를 받고 대장정의 마지막이기에 행복하게 매니저와 인사를 나누고 계약한 우리 아파트로 향했다. 계약할 당시 우리가 들어갈 유닛이 리모델링을 할 거라 훨씬 깔끔하고 아름다울 거라는 꼬임수를 가득 들었었다. 덕분에 문 앞에 갈 때까지 우리의 기대는 점점 올라갔다.


  드디어 나무 계단을 올라 2층 우리가 계약한 아파트 앞에 섰다. 그 순간부터 불안감이 엄습했다. 물론 미국아파트가 다 나무집인 거 알지만 문틈이 생각보다 너무 벌어진 느낌이었다. '이 정도면 벌레님, 도둑님들 들어오세요 환영해요 수준인데...' 불안했다.


  키를 꽂고 문을 연순간 문틀에 있는 키 잠금 구멍 부분이 파일만큼 파여 제기능을 못하고 헐거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문틈이 생긴 것이었다. 고치면 되겠지… 그래 … 아파트 수리해 주는 기사가 있으니까 부르고 저거 바꿔달면 괜찮을 거야… 마음을 추스르며 집으로 들어가 내부 확인을 했다.


  카펫에 하얀 페인트가 뚝뚝 떨어져 굳어 붙어있는 곳이 구석구석 있었고, 거실 앞 테라스로 연결되는 문에 있는 방충망은 떨어져 있었다. 화가 머리꼭지를 뚫고 나와 심장이 벌렁 거릴 지경이었다. 어쩌지.. 일단 사진을 다 찍어 놓았고 우선 다른 방법이 없어 나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차에 있는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플로리다의 7월 날씨는 습하고 덥고 그야말로 최악의 날씨였기에 땀으로 샤워를 하며 짐을 옮겼다.

 

  그런데 짐을 옮겨서 카펫에 물건들을 내려놓을 때마다 발목정도에 검은 쥐 똥 만한 벌레가 튀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너무 작고 여러 번 목격을 하고는 내가 정신이 나가서 헛것이 보이나, 꼭지까지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청소기로 카펫을 청소한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투명하게 빨아들인 먼지가 다 보이는 우리 청소기 통에 검은 작은 벌레들이 수백 마리가 들어가 있었다.

 

“심 이거 봐. 이건 진짜 안 되겠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우리 발등과 발목에 빨갛게 벌레 물린 자국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물건 옮기는 걸 멈추고 옮겨놓은 물건들까지 다 카펫에 닿지 않게 선반 위로 올려놓고 일단 오피스 시간이 끝났기에 영업 후에 전화하는 긴급 연락처로 전화해 문고리를 고쳐 달라했다.


  한 시간 뒤쯤 술을 한 잔 하셨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기사 아저씨가 오셨다. 문고리를 보여주며 이거 헐거워서 문이 잠기지도 잘 열리지도 않으니 당장 고쳐 달라했더니 아저씨 왈 “아 지금 내가 밥 먹다가 술 한잔 하다 와서 내일 아침에 고쳐줄게. 근데 아마 이거 바꿔도 헐거울 수는 있어” 한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일단 알았다 하고 술 취한 기사 아저씨를 돌려보내고는 열받은 몸도 달래고 이 와중에도 배가 고파 쓰러지겠는 눈치 없는 뱃속 달래려 식당으로 갔다. 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며 아파트 계약서를 훑어보았다. 이 사태를 오피스에 어떻게 요목 조목 따질지 계획했다. 한국어로 해도 목소리 벌벌 떨리게 열받을 상황에 영어로 따지려니 또 영작을 해야 하고 그걸 또 외워야 하고, 그 많은걸 열 통 난 상태로 주저리주저리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은 뒤 근처 월마트에서 벌레 죽이는 스프레이 2통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머피의 법칙.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나무계단을 간신히 올라 문 앞에 섰는데 문이 안 열리는 것이었다. 열쇠를 아무리 돌려도 안 열리고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일단 문 여는 것이 우선이었다. 차분한 남편이 어두워진 밤에 복도 조명 하나에 의지해 문고리를 당겨 간신히 간신히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문 여는 걸 성공했다. 그렇게 힘들게 다시 벌레 카펫 집으로 들어섰다. 잠은 자야 했기에 벌벌 떨며 찝찝하게 샤워를 하고 유일하게 하나 펴놓은 에어매트리스에 몸을 누였다.


  당연히 울화통이 터져 잠이 오지 않았고 낼 아침에 지랄할 계획을 마저 짜기 위해 아파트 계약서를 다시 열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계약 조항에 분명히 안전을 위협하는 집 상태이면 우리는 입주 72시간 안에 알려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이 조항을 쓰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 유일하게 세입자 입장에서 써놓은 조항이었을 것이다. 이 조항에 딱 위반되는 우리 집 상태. 형광펜 쫙해놓고 준비 완료. 내일 아침 오피스 가서 열받아 말 버벅될 상황을 대비해 주저리주저리 써놓은 집상태 사진들, 문젯거리들, 위반 조항 등을 이메일로 먼저 보내 두었다.


  그렇게 싸움 준비를 끝내고 잠이 들려하는데 새벽 3시 아래층 사람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신음 소리 포함 오만가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네… 대단한데 이 아파트… 그렇게 뜬눈으로 날을 새고 기다리던 아침이 밝았다.


계약서, 사진, 메모 모두 챙겨 오피스로 갔다.

기록하는 중에도 기가 빨리는 사건이라 다음 편에 계속 적어 내려갑니다.



달콤 살벌 심부부 유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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