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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부부 Saai Aug 07. 2023

19. 미국 타주 이사 후반전 B

본격 싸움닭 모드 Savannah -> Orlando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계약서, 사진, 메모 모두 챙겨 아파트 오피스로 갔다. 눈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대학생 때 이후로 밤을 새본 적이 없는데 벌레 아파트는 자연스럽게 내가 밤을 새우게 만들었구나. 둘 다 눈도 충혈된 채로 오피스에 들어섰다.


“좋은 아침이야. 무슨 일로 왔니?”


좋은 아침은 개뿔, 당신 같으면 좋은 아침이겠니? 별의미 없는 단순한 모닝인사에 버럭질이 났다. 대충 대꾸를 하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어제 oo 유닛으로 이사 온 심부부야. 내가 어제 이메일 보낸 거 봤니?”

그제야 당황하며 표정이 어두워지는 오피스 매니저.

“아 봤어. 미안해. 아마 전에 살던 사람이 애완견을 길렀는데 청소를 잘하지 않았나 봐. 우리가 오늘 청소해 줄게.”


보통 입주 전에 오피스에서 해당 유닛을 다 청소해 주고 깨끗한 상태로 새로운 사람을 받게 마련인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인가 싶어 매니저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사 들어오기 전에 너희가 이전 사람들이 나가고 청소와 수리를 할 시간이 7-10일가량 있었던걸 알고 있어. 근데 너희는 그 시간에 너희가 해야 할 일을 안 한 거 아니니? 카펫이 더러우면 카펫을 교체했어야 하고. 그 카펫 교체 비용이며 청소 비용을 이전에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한테 너희가 청구해서 받는 것도 알고 있어. 기본적인걸 갖추지 않은 상태로 너희는 월세를 받은 거잖아. (계약서를 보여주며) 여기 이 조항을 보면 안전, 위생을 위협하는 상태라면 오피스에 알려주고 우리는 계약을 철회할 자격이 돼.”


계약 취소를 언급하니 매니저가 그제야 긴장하며 당황한 듯했다. 어리바리 영어도 안될 거 같은데 대충 넘어가면 될 줄 알았을까? 매니저는 자신들의 잘못을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 마지막으로 말을 했다.


“너희가 말한 문고리도 우리가 어제 기사를 보내서 고쳐 주었고, 카펫은 우리가 오늘 청소해 줄 수 있어. 그래도 너희가 계약을 취소하고 싶다면 오늘 바로 나가야 하고 월세는 돌려줄 수 있지만 보증금은 돌려줄 수 없어.”


나는 재차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매니저에게 결국 화가 머리꼭지를 뚫고 나와 목소리가 벌벌 떨리기 시작하며 미국에서 최초로 영어로 언성을 높이며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요청한 문고리 수리는 술에 취한 기사 아저씨가 와서 고쳐주지 않고 갔어. 그리고 고쳐도 완벽히 고쳐지지 않는 상태라고 말했어. (벌레 물린 사진을 보여주며) 그리고 이 사진을 봐. 이게 우리가 어제 카펫에 있는 벌레에 물린 사진이야. (청소기통에 가득한 벌레 사진을 보여주며) 그리고 이게 우리가 청소한 후 청소기 속 벌레 모습이야. 이거 말고도 문제가 많아. 우리가 어제 다 사진 찍어 두었어. 너희가 계약서에 명시된 아파트 상태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계약 자체를 너희가 위반한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는 보증금도 전부 돌려받아야 해. 이미 여기 이사 오면서 그리고 지금 이사 나가면 우리는 또 스토리지 비용, 숙박 비용이 들 거고 새로 아파트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해 너희 잘못 때문에. 그러니 그대로 다 돌려조”


매니저는 당황한 듯하며 결국 마지못해 자기 상사에 게 이야기를 해서 그렇게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하는 말,


“그럼 너희 오늘 바로 나가야 해.”

“알았어. 짐 다시 스토리지로 모두 옮겨야 하니까 오늘 오피스 닫기 전까지 다 다시 짐 빼고 키 주고 나갈게”


싸움닭 모드를 마치고는 오피스 문을 박차고 나와 오늘 당장 짐을 맡길 근처 스토리지를 계약하러 바로 출발했다. 그렇게 간신히 스토리지를 찾아 계약하고 다시 벌레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어이없는 현장을 포착하고 말았다.




열쇠로 집 문을 여는데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것이다.

이게 뭐지..

문을 열었는데 누군가 우리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는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우리 화장실에서 나오는 수리기사로 보이는 남미계열 아저씨에게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주인 없는 집에 왜 함부로 들어와서 화장실을 쓰세요? 우리 짐 다 있는데 이게 무슨 짓이에요? 경찰 부를 거예요.”

“진정해요. 오피스 매니저가 당신들이 오늘 나간다 해서 수리하러 들어왔어요. 오피스에 연락해 봐요.”

"우리 아직 안 나갔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집에 있지도 않았고 집에 들어오라고 권한을 준 적도 없어요"

아저씨가 나가고 바로 오피스에 전화했다.


“지금 어떤 기사가 문 열고 들어와서 우리 집 화장실을 쓰고 나갔다. 이게 무슨 일이니? 우리 오늘 오피스 클로징 전까지 나간다고 짐 옮긴다고 했는데 집에 아직 짐도 다 있는데 너희 수리하겠다고 고지도 없이 마음대로 문 따고 들어오는 게 말이 되니? 무얼 하던 우리 나가고 해!”


미국 아파트에 살면서 집 내부 수리를 요청했을 때 오피스에서 아파트 담당 수리 기사를 보내주고 집에 주인이 없는 시간에 방문해야 한다면, 먼저 고지를 하거나 양해를 구하거나 출입에 관련한 원하는 사항을 받게 마련이었다. 기사, 오피스가 아무 고지도 없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집에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한 경우였다. 물론 우리가 짧은 이틀 동안 겪은 이 일이 참 희귀한 상황이기도 했다.


통화로 싸움닭처럼 또 한 번 엄포를 놓고는 한시도 벌레 아파트에 있기 싫어 기계처럼 움직여 짐을 죄다 차에 꾹꾹 눌러 넣고 부리나케 예약해 둔 스토리지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는 또 짐을 창고에 다시 옮겨 넣어 두고 다른 아파트를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파트가 많지 않은 동네였던지라 전 하우스헌팅 때 봐두었던 옆동네에 있는 아주 깨끗한 아파트, 하지만 가격이 비싸 탈락시켰던 그 아파트를 1순위로 찾아갔다.



운명이었을까. 새 아파트 오피스에 들어서서 매니저에게

“원베드 아파트 있나요? 내일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요. 저희가 이러 이런 사정이 있었어요”


매니저는 밝게 웃으며 1개가 있다고 했고 바로 집을 보여 주었다. 해당 유닛 문이 열렸고 한눈에 환하게 들어오는 빛, 깨끗한 거실과 방, 넓은 창과 주방이 보였다. 여기다. 웃음이 절로 나며 바로 매니저에게 계약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매니저가

“그럼 너희는 보증금 security deposit은 받지 않을게. 단 오늘 중으로 바로 계약 진행해조.”

“OK!!!! 물론이지!! 고마워!”

드디어 희망적인 핑크빛 기운이 뿜뿜 나오는 기분이었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과도한 겉치레 없이 이성적으로 제 할 일을 하는 매니저와 밝고 깨끗한 아파트 유지 상태에 우리는 단방에 매료되었다. 오피스에서 구두 계약을 진행하고 나와 온라인으로 받은 아주 긴 계약서에 여러 번 사인을 한 뒤 우리는 다시 스토리지로 향했다. 다시 짐을 빼야 했다.


이틀 동안 짐만 최소 6번은 옮기고 있는 이 상황에 진이 빠지면서도 벌레아파트보다 150$ 월세가 비싸지만 기꺼이 다른 생활비에서 150$ 줄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행복하게 타주 이사 대장정의 마지막 짐을 3층짜리 새 아파트에 딸린 호사스러운 엘리베이터로 옮겨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두더지 잡기 하듯 하나를 막으면 하나가 튀어나오고 한 개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오는 아주 현란한 Georgia -> Florida 첫 타주 이사가 마무리되었다. 어찌나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었는지 최종 이사가게된 깨끗한 아파트에서 첫날 짐을 다 옮기고 꼬질꼬질한 채로 아파트 복도에서 찍은 우리 사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인다.


아무 걱정도 없이 행복한 얼굴이지만 정말 너무 힘들게 우리 나이를 체감하며 긴 이사여정을 마쳤기에, 그 어려운 걸 끝마쳤다는 상대적으로 더 꿀맛 같은 기쁨에 행복이 넘친 그 사진을 보면 저절로 나오는 말,

고생했다 우리! 수고했다 심부부!!



달콤 살벌 심부부 미국 유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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