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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화 Dec 30. 2022

무낙이아재

-이진숙 소설 읽기

 가을 해는 허무하게 떨어져 바다로 흘러갔다. 설익은 가을을 둘러 삼킨 바다는 사흘이 멀다하고 눈발 섞인 바람을 섬으로 섬으로 보냈다. 우리집 사랑채에는 겨우내 화투판이 벌어졌다. 무낙이아재는 늘 구경꾼이었다. 화투꾼들 어깨너머로 화투장과 지전이 오가는 것을 보다가 사랑채 토방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바다를 보곤 했다. 사람들은 아재와 결혼한 여자를 무낙이각시라고 불렀다. 무낙이각시는 정말 할 줄 아는 게 실실 웃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아재는 마냥 좋은 지 덩달아 실실 웃고 다녔다.


  엄마는 그 집에 쌀과 채전거리를 가져다줬다. 아버지가 잡아온 새우와 생선이 든 바가지를 내게 들려서 보내기도 했다. 내가 생선바가지를 내밀면 무낙이각시는 비린내를 못 참겠다는 듯 코를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얼마 후 무낙이각시 배가 불러왔다. 아재는 마을사람들 놀림에 얼굴이 벌게지면서도 여전히 실실거렸다.


 꽃섬의 겨울은 장마보다 길고 지루했다. 눈 덮인 섬은 거대한 빙산이 되었고 바닷물은 물때에 맞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했다. 하루 한 번 뭍을 오가는 정기여객선은 태풍주의보로 뜨는 날보다 거르는 날이 더 많았다. 사랑채 화투판이 시들해지면 무낙이아재와 아버지 둘이 토방에 걸터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아버지가 바다에 나가 살그물을 털어오면 아재는 아버지와 머리를 맞대고 앉아 고기를 다듬었고 그날은 또 사랑채 토방에서 술잔이 오갔다.


 눈이 펑펑 내려 쌓인 날, 아버지가 뒷산 아래 저수지에다 싸이나를 박은 콩을 뿌렸다. 이튿날 아버지는 축 늘어진 꿩을 들고 와서 내장을 꺼내고 국을 끓였다. 꿩고기는 질겼지만 고추기름 벌겋게 뜬 국물은 얼큰하고 개운했다. 고기를 제외한 것들은 복숭나무 아래 묻었다. 설 묻은 것을 얼룩고양이가 파먹었다. 선새벽에 밥을 하러 부엌에 나간 엄마가 부뚜막에서 혀를 빼물고 뻣뻣하게 죽어있는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집이 무너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 아버지는 죽은 고양이를 들어다 또 복숭나무 아래 깊이 파서 묻었다. 겨울잠에 푹 빠진 복숭나무는 그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이 되면 파릇한 이파리를 피워냈다. 나는 복숭나무 이파리를 쳐다보면서 내 배 위에서 고개를 파묻고 가릉가릉 숨소리를 내며 잠자던 얼룩 고양이의 눈망울을 떠올렸다.


#2022 세종도서 선정

#단편집『1989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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