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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화 Jan 11. 2022

숨은 집 채남정

산청 남사예담촌 채남정

산청에 들어온 첫해부터 빈집을 구하러 다녔다. 

마당과 텃밭이 있는 작은집에서 글 쓰며 조용조용 사는 게 꿈이었다. 마을에 빈집은 많았지만 선뜻 팔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다 팔겠다는 집을 찾아가보면 시골집 맞나싶게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집이라고 할 수 없는 다 쓰러져가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른 남사예담촌에서 빈집을 발견했다. 마을 끝자락에 붙은 아주 작은 집, 남사마을에서는 이 집을 <채남정>이라고 불렀다.        


대문 한 짝은 떨어져나갔고 무릎까지 허물어진 돌담을 칡덩굴이 휘감고 있었다. 마당에는 누가 심었는지 콩이파리가 무성하게 자랐다. 집 뒤쪽이 대나무숲이었다. 번식력 강한 대나무가 뒤뜰과 마당을 점령한 상태였다. 기둥과 마루와 서까래는 그나마 멀쩡했다. 내가 망설이자 소개한 이가 조금만 손질하면 제법 쓸 만한 곳이라고 부추겼다. 채남정은 남사마을 성주이씨 문중재각이라 매매는 어렵고 무상으로 원하는 기간 동안 빌려주겠다고 했다. 무상이라는 말에 혹해서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채남정을 처음 만났을 때 모습


이듬해 봄부터 집을 고쳤다. 먼저 집 주변에 올라온 대나무를 베어냈다. 베어낸 대나무는 임시울타리로 둘러쳤다. 방문을 막아놓은 합판을 다 뜯어내고 창호문을 주문제작해서 달았고, 방 두 개의 도배장판도 새로 했다. 황토시멘트를 물에 개어 아궁이를 만들고 솥을 걸어 불을 넣었더니 잘 들어갔다. 집을 고칠수록 손 댈 곳이 많이 보였다. 이 집에서 거주하기 위해서는 당장 생태화장실과 부엌, 세면시설이 필요했다. 최소견적을 내보니 4~5천만원이 나왔다. 내 집도 아닌데 큰돈을 들여 고치는 건 무리라고 주변에서 말렸다. 결국 거주를 포기하고 주말별장으로 쓰기로 했다.              


 

문짝 새로 달고 아궁이도 만들고 조금씩 고쳐가는 중~


주말이면 채남정에 간다. 봄부터 여름 동안은 풀을 뽑느라 바쁘다. 풀을 뽑고 일주일 뒤에 가보면 다시 풀이 무성했다. 대숲에 사는 모기와 정체 모를 벌레에 물리면 퉁퉁 부어올라 병원에 가야한다. 주사를 맞아야 빨리 가라앉고 가려움으로 고생을 하지 않는다. 벌에 쏘였을 땐 살점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팠다. 지네와 뱀은 눈에 잘 띄어 살짝 놀랄 뿐 서로 피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여름 풀을 매다 지치면 ‘내가 괜히 이 집을 욕심내어 생고생을 하는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 집에 눈독들인 이들이 더러 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이 집이 포기가 되지 않는다.          

     

숨은 집  채남정 주변 전경(여름)

집 앞으로 남사천이 휘돌아 흐르고 물길 따라서 조붓한 둘레길이 이어진다. 한여름 무성한 나뭇잎이 집을 가리면 기와지붕만 살짝 보인다. 멀리서보면 숨어있는 것처럼 보여서 ‘숨은 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숨은 집 채남정’에 들어서면 고향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한겨울에도 볕이 잘 들어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 인색한 겨울햇볕이 모조리 채남정 마당으로만 몰려든다는 상상을 한다.   

  

어제도 그 집에 다녀왔다. 마당에 쓰러진 마른 꽃대를 뽑아내는데 흙에서 봄내가 올라왔다. 돌담 옆 복숭아나무 꽃눈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린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이제 곧 풀, 풀, 온갖 풀들이 땅을 뚫고 나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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