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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Nov 09. 2023

멕시코를 혼자 가면 생기는 일

150일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멕시코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된 건 98 프랑스 월드컵 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벨기에, 멕시코, 네덜란드와 한 조로 거의 죽음의 조에 가까웠다.

초등학생이었던 난 다른 기억들은 나지 않지만 멕시코전 만큼은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다.


하석주 선수의 중거리 슛으로 1:0 선제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선제골을 넣은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당시 한국 축구는 약했다.

그런데 선제골을 그것도 멋진 중거리 슛으로 장식했으니 당시 기억은 또렷이 남아 있다.


기쁨도 잠시 하석주 선수의 백태클로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고 만다.

그렇게 선제골을 넣었지만 1:3으로 완패...


멕시코라는 나라는 그때 각인되었다.




태어나서 멕시코를 가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살다 보니 가게 되더라...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매번 뉴스에서만 접할 수밖에 없는 지구 반대편의 나라 멕시코,

그곳을 떠올리면 보통 사람들은 마약, 갱단, 타코 정도만 떠올리게 된다.

위험한 나라 정도로 인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나에겐 왜 그렇게 기억되지 않았을까? 왜 멕시코를 가는데 셀레였을까?(미쳤지...)

아마도 무서웠다면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두려움은 단지 처음 가는 나라이기에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뿐, 갱이니 마약이니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고, 무식하고 대책 없이 저질러 버린 것이다.

젊음을 무기 삼아...




미국을 떠나기 전, 일주일 간 함께 지냈던 모테는 나에게 말했다.


"제이(영어 이름), 너 다음 여행지는 어디야?"

"멕시코!!"

"WHAT?? Alone??"

"응 혼자지"

"미쳤네...! 안 위험하겠어?"

"뭐, 어떻게든 되겠지 ㅎㅎㅎ"

"ㅋㅋㅋ 미친놈,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돈 필요하면 무조건 연락하고!"

"말이라도 고맙다 bro!!"


모테는 미국에서 유학할 때 친했던 친구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적을 가진 돈도 많고 흥도 많고 정도 많은 너무나도 좋은 친구!

아마 모테의 돈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말은 정말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짜로 돈을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100불을 냉큼..

역시 기름부자...


그렇게 난 일주일간 지냈던 모테의 집을 떠나 필라델피아 30 스테이션에서 뉴욕 JFK공항으로 향한다.

너무너무 그러웠고, 간절히 오고 싶었던 필라델피아를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

미지의 세계인 중남미 멕시코로 떠난다는 설렘이 아쉬움을 덮어버렸다.




무사히 비행기까지 탑승을 완료한 나는 여기까진 아주 순조롭게 잘 흘러가 굉장히 만족했다.

미국 뉴욕에서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까지는 비행기로 약 4~5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도착시간이 밤 11시쯤이라 위험할 것을 대비하여 그날은 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로 결정한다.


드디어!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 도착을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입국 수속을 밟았다. 다행히 별 일없이 통과 완료!

16킬로짜리 오스프리 배당과 보조 백팩 그리고 침낭까지 챙긴 후 로비로 나왔다.

아직까지는 딱히 멕시코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만,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가 귓속으로 들어오는 게 영 거슬렸다.


하룻밤을 보낼 장소를 물색하다 꽤 넓은 공간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쪽 귀퉁이에 침낭을 깔고 자리를 잡는다.

말로만 듣던 공항 노숙을 처음 하게 되어 은근히 설레었다.(별게 다 설렌다...)


당시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찍어뒀던 사진을 모두 잃고 요고 한 장 남겼다.. 이건 고프로로 찍었기 때문에 살았다. ㅠ퓨ㅠㅠㅠ 


그때까지만 해도 신이 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1도 예상치 못한 채 말이다.

나름 조심한다고 여권과 지갑은 침낭 깊숙한 곳에 둔 채 잠에 들었다.


새벽 5시쯤,, 누군가 나를 깨운다. 알고 보니 앞에 있던 식당 영업을 시작해야 해서 깨웠던 것이다.

제대로 잤으려나? 거의 못 잔 상태로 일단 기상했다.


다행히 밤새 도둑맞은 흔적은 없어 보여 안심했다.

간단히 샌드위치로 요기를 마친 후 드디어 공항 밖으로 빠져나간다!

가기 전 숙소의 위치를 확인하고, 어떻게 갈지 머릿속으로 완벽히 계산을 마친 후

지하철이 있는 곳까지 단숨에 가기로 한다!


여차저차 지하철역까지 잘 왔다. 태어나서 처음 왔는데 이 정도면 선방한 거지!

내가 묵을 숙소까지 가려면 1번 환승을 해야 했다.


그렇게 약 30분쯤 지하철을 탔고, 환승지에 내렸다.

다음 환승 장소로 이동하는데 지하철에 사람이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알고 보니 출근 시간대에 딱 걸린 것이다. 시간은 오전 7시쯤


도저히 지하철을 탈 수가 없었다.

배낭도 커서 사람 두 명 치나 되는 부피였다.

그렇게 약 20분 정도 앉아서 사람이 좀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은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너무 지치고 배도 고파오고 일단 씻고 싶었다.

다행인 건 1 정거장만 가면 됐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몸을 욱여넣듯 겨우 탔다.

다음 정거장에 거의 떨어지다시피 내렸다.


휴,,, 드디어 숙소가 있는 역에 도착했다.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일단 지도를 보자!

핸드폰이 여기 있을 텐데.... 잠깐만...?? 어?? 내 폰...!!!!!!!!!!!!!!!


순간 발끝에서 소름이 쫙하고 끼쳤다.

분명히 지하철을 타기 전에 폰을 보고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다.

이 사실은 명백했고, 나의 믿음은 120% 확신이었다.

그런데 없다. 내 믿음이 잘 못 되길 바랐다.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내 믿음은 잘 못 되지 않았다.

그랬다. 지하철에 앉아 있던 그 20분 때문에 난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었고,

지하철을 타고 있던 그 1분 30초가량 시간 동안 핸드폰과 심지어 지갑까지 모조리 도둑맞고 말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mbti는 ENFP, F가 70% 이상인 내가 갑자기 T로 변신한다.

현실을 똑바로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순서대로 나열하기 시작한다.


지갑과 핸드폰이 없는 상황이란,


첫째 돈이 없다.

둘째 지도를 보지 못한다.

셋째 말이 안 통한다.

넷째 태어나서 여길 처음 왔다.

다섯째 여긴 멕시코다.


여섯째 난 이제 좆됐다...... ㅅㅂ

............ㅠㅠ




레알 좆됐음을 감지한 난, 일단 경찰부터 찾아야 했다.

역을 빠져나가니 경찰이 코 앞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방에 경찰이 깔려있었다..

그렇게 대화가 1도 안 통하는 스페이쉬를 구사하는 멕시코 경찰 앞에서

지갑과 핸드폰을 도둑맞았다는 것을 비언어로 표현해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레알 쌩 리얼 라이브 바뒤 랭귀지를 시전 한다.

몸으로 돈과 핸드폰을 이리저리 표현하며 도둑놈을 묘사한다.

그리고 훔치는 동작을 슉슉하고 표현한다.


이 정도면 가히 행위 예술 급이었다. 분명히 알아 들었을 거라 100% 짐작했다.

그런 내 앞에 커다란 장총을 들고 있는 멕시코 경찰은 눈만 끔뻑거렸다.(센스 없는 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그렇고 여기서 손짓 발짓하고 있는 내 모습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결국 난 실소를 토하고 하고 만다..(빌어먹을)


이제 내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난 살아서 이 난관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신의 손에 달렸다...


살려주세요 ㅠㅠ


젭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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