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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Nov 13. 2023

멕시코 시티, 소매치기당하고 살아남는 법

150일간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가끔 발생할 때가 있다.

가령 출근하는데 지하철 시위로 인해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한다던가(실제로 있었음)

갑자기 친구와 약속이 취소된다던가(예상할 지도..)

이런 일상 속에서 작은 변수는 사실 크게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말도 안 되는 큰 변수가 앞에 다가오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사고를 당한다던지, 큰 병을 얻게 된다던지, 로또에 당첨된다던지(제발 그랬으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변수가 생긴다는 건 어쩌면 무미건조한 삶에 약간의 스릴을 더 하는 게 아닐까?

영화 장르가 드라마였다가 일순간 스릴러로 변하는 것은 사실 크게 기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 우리는 자신의 몰랐던 모습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다시 여기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내 앞에는 여전히 장총을 들고 있는 무장경찰이 서 있다.

그에게 마치 고요 속의 외침을 하듯 온몸으로 지갑과 핸드폰을 도둑맞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해도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경찰관의 핸드폰으로 구글 번역을 시도한다.

그럼에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경찰관은 대뜸 이렇게 말한다.


"인터네시오날 폴리시아"


응? 인터내셔널 폴리스라고?

그랬다.


스페인어는 영어와 비슷한 단어가 꽤 있다.

버스를 부스라고 하고, 호스텔을 호스따르라고 부른다.


그랬기에 난 단번에 인터내셔널 폴리스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말은 근처에 인터내셔널 폴리스 오피스가 있는데 거기로 이동해 보자! 였다.

그곳을 가면 당연히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있을 거로 생각해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경찰차를 탈 줄 알았건만 웃기게도 경찰 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뭐지;;)

대략 2~3 정거장 갔을까, 버스에서 내려 경찰서로 들어갔다.

멕시코 경찰서라니... 한국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경찰서를 멕시코에서 처음 가보게 되었다.


그렇게 책상에 앉아 있는 경찰관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당연히 영어로 말을 건네었던 난, 멀뚱멀뚱 나를 쳐다 보고 있는 그 경찰관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하... 이 새끼도 영어 못하네... 인터내셔널이라매 아... 조졌다."


그랬다. 그놈도 영어를 못했다. 스페인어를 쓰는 곳에 와서 스페인어를 못 쓰는 내가 죄인이지 뭐..

결국엔 다시 구글 번역기를 돌린다. 핸드폰에서 PC로 바뀐 것 이외엔 달라진 게 없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지하철역에서 잠깐 마주친 뉴질랜드 청년들이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5분 정도 담소를 나눴던 사이였는데 그들을 다시 경찰서에서 조우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둘 중 한 명이 나와 같이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나만 바보가 아니었어...)


그들을 보는 순간 영어로 미친 듯이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순간,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잘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사를 마치게 되고...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뉴질랜드 친구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나를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린 그래도 둘이라 다행인데... 넌 혼자라 어떡하냐?"


염장 지르는 건가? 조금 짜증 났다.

그래도 친절한 멕시코 경찰 아저씨가 나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숙소까지 대려다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대화가 안 되니 도와 달라는 말도 못 하겠더라..


그렇게 난 여기가 어딘지 1도 모른 채 경찰서 밖을 나와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일까 나에겐 고장 난 핸드폰이 하나 더 있었다.

말 그대로 '고장 난' 핸드폰이다.


액정이 박살 나 버린 폰이라 터치가 잘 안 된다.

그래도 그거라도 어떻게 작동을 시켜서 위치를 알아내려 했다.

인터넷이 안 되니 근처 스타벅스를 찾았다.


미국에 있을 때 가끔 데이터가 없으면 스타벅스 외벽에 기대어 와이파이를 잡곤 했다.

그 방법을 써보고자 시도했다. 근데 스타벅스가 어디 있지???

스벅 찾는 것도 일이었다.


종이에 별과 그 여자?? 그림을 그리고 영어로 스타벅스를 썼다. 그리고 길 가는 사람들 마다 물었다.

이거 어디 있냐고... 물어물어 겨우겨우 스벅을 찾는 데까지는 성공!!

하지만 외벽에 기대어 와이파이를 잡는 일은 성공하지 못했다.

진심 와이파이 신호가 너무너무너무 약했다... 한국이 그리웠다...




더 이상 나에게 희망이 없어 보였다..

가방은 무겁고, 날은 덥고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공터 밴치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 여기 왜 왔지...? 진심 한국 가야 하나? 한국 가려면 비행기표 사야 하는데 돈도 카드도 없는데?

내가 이러려고 호주에서 1년 동안 그 개고생을 했던 건가? 나 한국은 갈 수 있을까? 국제미아 되는 건 아니겠지....?'


이런 불행회로를 돌리며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런 내 눈앞에 어떤 한 청년이 보였다. 그는 연로하신 할머니의 가방을 들어드리고 있었다.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착하네.. 나도 좀 도와주지..'


그 청년이 가는 걸 눈으로 보고만 있었다. 말을 걸 자신이 없었다.

혹시나 말을 걸었는데 또 영어를 못해 대화가 안 될까 봐 무서웠다.

이제 더는 좌절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5분 뒤...


아까 그 청년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이것은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다!

못 먹어도 고!! 이렇게 된 거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물어나 보자 싶었다.


그 청년 옆으로 슥- 다가가서 영어로 정중히 물었다.


"안녕, 혹시 여기 근처 지하철을 찾고 있는데 어디 있는지 아니?"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일단 지하철 찾는 척하고 물어봤다. 영어를 할 줄 아는지 테스트였던 셈이다.


"안녕, 나도 지하철로 가는 중이야. 괜찮다면 나를 따라올래?"

분명히 정확히 그리고 아주 깔끔한 퍼펙트 한 잉글리시였다!!!!!!!

내 살면서 영어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와 함께 역으로 걸어갔다.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통성명을 하고 멕시코에는 왜 왔는지 그리고 뭘 하는지 등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지하철 역에 도착한 우리는 이제 열차를 타야 했다.

하지만 난 돈이 없었기에 타지 못하고 개찰구 앞에서 멀뚱히 서 있으니 친구가 물었다.


"왜 안타???"


그제야 난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솔직히 울 뻔함 ㅠㅠㅠㅠ)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I'm sorry"


그랬다. 그 친구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왔던 말은 바로 미안하다였다.

멀리서 자기네 나라로 놀러 왔는데 안 좋은 일을 당하게 해서 대신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순간, 그 친구가 너무 멋있고 부처로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이 아이가 나를 구원해 줄 구원자인가?


친구는 나에게 선 듯 지하철 비를 내줬다.

멕시코 지하철 교통비는 당시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300원이었다..

그랬다. 난 단 돈 십원 한 장 없었다.


함께 지하철을 타면서 그는 나에게 말했다.

멕시코 현지인들도 지하철 탈 때는 지갑이나 귀중품을 꼭 안 주머니에 넣어.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또 무지했는지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멕시코는 그런 나라였다.




한 시름 놓았을까? 갑자기 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배고프지 않니??"


당연히 고팠다. 하지만 난 배고픔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빨리 숙소를 가야만 했다.

그래야 한국인을 만날 수 있고 나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난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면 뭐 마실 거라도 마실래?"

계속된 요구에 난 그럼, 물이라도 마신다고 했다.


그렇게 둘은 번화가가 있는 역에서 내리게 된다.

결국 물이 아닌 우린 타코를 먹으러 가게 되었다.

친구가 계속 뭐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어 그 와중에 또 타코가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진짜 미친 거 아니냐고...


우린 근처 타코 집으로 향했고, 타코를 무려 4개를 시켜서 먹었다.

타코를 먹으며 친구가 말했다.


"너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 대사관을 찾는 거야. 그런데 나도 어디 있는지 잘 모르거든?

그거 찾으려면 인터넷을 써야 하는데 너도 알다시피 여긴 밖에서 인터넷이 잘 안 터져.

그래서 말인데 여기 근처 우리 삼촌네가 있거든? 거기 가면 와이파이 쓸 수 있어서 거기서 찾아보고

대사관으로 가자!"


오늘 처음 본 사람 그리고 처음 온 나라 그의 말을 듣고 난 과연 그 친구가 말하는

삼촌네 집으로 가게 되었을까??? 과연 난 멕시코를 떠나 무사히 여행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모든 것은 검은 베일에 싸여있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변수들로 가득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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