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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Nov 16. 2023

타인을 위한 희생 어디까지 가능한가?

150일간의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우리나라는 나와 타자와의 경계가 꽤나 높은 편이라 생각한다.

처음 미국을 갔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은 길을 가던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hi"


그냥 눈인사이기도 하고, 이렇게 말로 건네기도 하던 게 가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옆에 누가 지나가건 말건 상관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하게 된다.


"저 아세요?"


그러면서도 누군가 곤경에 쳐해 있으면 곧 잘 도와주는 게 우리나라 사람이다.

참 신기하다. 타인을 쉽게 신뢰하지 못해서일까 점점 타인을 경계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난 충분히 그를 경계해야만 했다.

나에게 아무리 호의를 베풀고 그가 한 행동과 말이 친절하다고 해서 덜컥 믿어서는 안 됐다.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의심하고 또 타인을 경계해야만 했다.


하지만 난 고작 타코 4개를 먹어서였을까? 아니면 그가 한 행동과 말 때문이었을까?

그가 한 제안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수락하게 된다.


사실 그때 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을 되려 의심했다간

도저히 이 난관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우린 타코를 다 먹은 후 멕시코 친구의 삼촌 집으로 향했다.


사실 영화 같은 걸 보면 여기서 무슨 사달이 나도 큰 사달이 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멕시코를 10년 동안 살다 온 분에게 내 이야기를 해줬더니 나에게 말했다.


"너 지금 살아서 여기 있는 게 진짜 행운이야. 그거 절대 따라가면 안 됐어."

그랬다. 난 결코 그 친구의 삼촌 집으로 따라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따라갔고, 지금 난 살아있다. 그 말은 그 친구의 말이 진심이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집은 꽤 가까운 편이었다. 걸어서 10분 정도 가니 삼촌네로 도착했다.

집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컸고, 집 안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알고 보니 가정부였다.

방이 3개 정도 있었고, 거실이 엄청 넓었으며 식탁도 엄청 컸다.


알고 보니 삼촌은 멕시코시티에 있는 대학 교수님이었고,

그 친구는 우리나라로 치면 연세대, 고려대쯤 되는 명문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었다.

한 마디로 멕시코에서도 부유한 편에 속했고,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올바른 청년이었다.


어쩐지 힘든 할머니를 도와주고 있던 모습이 그때서야 떠올랐다.

실제로 도움을 내가 먼저 청했기 때문에 큰 위험이 없었던 것 같다.

만약 정말 큰 위험이 생길 거였으면 아마 그 친구가 나에게 먼저 다가왔을 것이다.

어떤 속셈이 있었다면 말이다.




삼촌네에서 노트북으로 한국 대사관을 검색해 봤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한 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가야만 했다.

그곳까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약 40분간 이동하여 드디어 한국 대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그 친구가 대사관을 들어가니 엄청 반짝이는 눈으로 팸플릿 같은 것을 챙겼다.

그리곤 내일 학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해야겠다며 신나 했다..

지금까지 나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사람들을 도와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친구는 그냥 타인을 돕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아이였다.


대사관 영사님을 만나 면담을 가졌다.

영사님이 말씀하시길 오늘만 소매치기를 당해 찾아온 사람이 나를 포함해 5명이랬다.

그때가 약 오후 3시쯤이었으니 앞으로 더 올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당시 11월이었는데 12월이면 연말이라 아이들이 연말에 놀 때 필요한 돈을 모으는 차원에서 소매치기를 한다고 했다. 발상이 굉장히 특이하다. 놀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훔치는 거라니...


대사관을 통해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부모님이 영사님의 계좌로 30만 원을 입금하셨다.

그리고 영사님은 30만 원을 멕시코 페소로 바꾸어 나에게 주셨다.

그렇게 겨우 겨우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마련을 할 수 있었다.




자, 일단 돈은 생겼고 이제 남은 건 숙소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친구는 면담이 끝나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그냥 갔을까 봐 조금 걱정했는 데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묵을 숙소가 있는 지하철 역은 레볼루션역이었다.

다시 그곳으로 가려면 대략 50분이 걸렸다.


이번에도 지하철을 타고 갈 줄 알았는데 대뜸 친구는 경찰에게 사정을 설명했는지

경찰차를 타고 그곳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경찰서에 이어 경찰차까지 얻어 타는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겨우 소매치기를 당했던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까 나를 인터내셔널 폴리스 오피스로

안내했던 경찰 두 분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그 경찰들과 이야기를 하더니 내 숙소가 어디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내가 묵을 숙소는 그들이 머무르는 경찰서 바로 옆이었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 문 앞에 서니 두 다리에 힘이 쭉 하고 빠졌다. 이제 살았다..!!

하늘을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시간은 6시를 훌쩍 넘겨 7시로 향하고 있었다.

1시간 정도면 올 수 있는 거리를 돌고 돌아 12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 만난 시간이 오전 11시쯤이었는데 벌써 7시라니 이 친구는 나를 위해 하루 8시간을 쓴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던 순간 그를 보니 등 뒤에 천사의 날개가 보이며 후광으로 눈이 떠지지 않았다.


난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종교는 없지만, 만약 세상에 신이 있다면 넌 신이 나에게 보내 준 천사일 거야"

"you are my angel"


말하고 보니 뭔가 좀 어감이 이상하긴 한데 어쨌든 저건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 들어서 말했다.

어떤 누가 모르는 사람에게 하루 8시간을 쓰냐 이 말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는 나의 말을 듣더니 호쾌하게 웃으며 아니라고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난 그 친구에게 꼭 보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락처를 주고받고 우린 헤어졌다.




멕시코 시티에 약 2주 정도 머물렀다. 그 사이 난 30만 원으로 생활하느라 제대로 된 여행조차 할 수 없었다.

이유는 내가 분실한 카드와 은행은 호주 것이기 때문에 카드를 재 발급받는 일도 분실한 비밀번호를 찾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영어를 하긴 하지만 능숙하게는 못했던 난 호주 은행으로 전화를 걸어 블락당한 내 계좌를 풀고 다시 카드를 재발급받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블락이 된 계좌를 풀기 위해선 본인인증을 해야 하는데 외국인 신분이라 은행을 직접 찾아가야 했다.


또한 카드 재발급은 본인이 아니면 직계 가족만이 할 수 있음으로 부모님이 직접 호주를 가야 했다. 이게 말이 되나? 아무튼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2주 동안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그때마다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형들 그리고 누나들이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이런 와중에도 난 그 멕시코 친구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여러 번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급기야 나를 피한다는 느낌마저 받게 되었다.

2주 동안 머무르며 그 친구의 생일까지 중간에 끼어있어서 백화점에 가서 선물까지 샀었다.


하지만 난 그를 2주 동안 만나지 못했다.

도대체 왜?? 나를 만나주지 않는 걸까?


내가 여자도 아니고 남자한테 밀당당하고 차여야 하는 걸까? 그것도 멕시코 사람한테??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어 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나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난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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